• 한국문화사
  • 11권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 제1장 불교의 수용과 신앙의 시작
  • 2. 삼국의 불교학
  • 백제의 불교학
김남윤

백제에서는 직접 인도에 가서 불경을 가져와 번역한 사실이 전한다. 미륵불광사사적(彌勒佛光寺事蹟)에 의하면 겸익(謙益)은 526년(성왕 4) 인도에서 배달다 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아비담(阿毘曇)과 오부율(五部律)을 가지고 귀국하였는데 성왕이 그들을 흥륜사에 있게 하였다. 겸익은 국내 명승 28명과 함께 율부 72권을 번역하였고, 담욱(曇旭)과 혜인(惠仁)은 이를 주석한 율소(律疏) 36권을 저술하였다. 또한, 성왕은 비담신율서(毘曇新律序)를 짓고 판각(版刻)까지 하려고 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고 한다.33)李能和, 『朝鮮佛敎通史』 上, 新文館, 1918, 33∼34쪽.

아비담은 소승의 논서를 말하며 오부율은 소승 20부파 중 설일체유부·법장부·대중부·화지부·음광부 등 5부에 전해지는 율전을 말한다. 백제에서 번역한 72권은 그 오부율 가운데 어느 한 부의 율장이었을 것이다.

백제 불교학이 이처럼 소승의 율학(律學)에서 시작된 것은 불교 공인 이후 교단의 형성과 계율을 확립하는 문제가 시급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율학의 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미륵 신앙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미륵 신앙은 특히 공주 지역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위덕왕 때 신라 승 진자(眞慈)가 미륵의 화신을 만나고자 하여 찾아온 곳이 웅진(熊津)의 수원사(水源寺)였다. 미륵 신앙이 성행하였던 사실로 보면 백제의 계율은 미륵이 설하였다고 하는 유가보살계(瑜伽菩薩戒)가 중심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34)김두진, 「백제의 미륵 신앙과 계율」, 『백제사의 비교 연구』,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993 참조.

법왕은 599년 영을 내려 살생을 금하였으며 민가에서 기르는 가축을 놓아 주게 하고 고기잡이와 사냥하는 도구 일체를 불사르게 하였다. 이듬해에 승려 30명을 도승(度僧)하고 사비성 남쪽에 왕흥사(王興寺)를 창건하고자 하였으나 사망하고 634년 무왕이 이 절을 낙성하여 미륵사(彌勒寺)라 하였다고 한다.35)『삼국유사』 권3, 흥법 법왕금살(法王禁殺). 따라서 미륵사는 법왕이 내린 엄격한 계율과 관련이 깊은 사찰로 보인다.

백제에서도 대승 경전의 습득과 불교학 연구가 이루어졌다. 성왕은 541년 양(梁)나라에 사신을 보내 “모시박사(毛詩博士)와 열반 등의 경의(經義) 및 공장(工匠), 화사(畵師) 등을 구하였다.”고 한다.36)『삼국사기』 권26, 성왕 19년. 당시 양나라에서는 『대반열반경집해』가 509년 완성되었고 이후 열반학이 성행하였다.

발정(發正)은 6세기 초에 양나라에 건너가 30여 년간 스승을 찾아 도를 배웠는데, 일찍이 월주(越州) 경계에 있는 산에 관세음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화엄경(華嚴經)』과 『법화경』을 독송하는 두 도인에게 배웠다고 한다.37)『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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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현광(玄光)은 진(陳)나라의 형산(衡山)에 들어가 남악 혜사(南岳慧思, 514∼577)에게 ‘법화안락행문(法華安樂行門)’을 배우고 수도하여 법화 삼매를 증득(證得)하였다. 570년경 백제로 돌아온 그는 웅주(熊州)에 절을 짓고 교화에 힘써 여러 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38)『송고승전(宋高僧傳)』 권18, 진신라현광전(陳新羅玄光傳). 현광이 수학한 남악 혜사는 천태 지의의 스승이기도 하며, 용수의 『지도론(智度論)』에 입각해서 반야와 법화, 두 경의 일치를 주장하였다. 현광이 배운 법화안락행문이란 혜사의 저술 『법화경안락행의(法華經安樂行義)』를 가리킨다.

혜현(惠現·慧顯, 570∼627)은 일찍이 출가한 뒤 오로지 『법화경』의 독송을 업으로 삼았는데 그 밖에 삼론도 공부하고 신비로운 행적이 많았다고 한다.39)『삼국유사』 권5, 피은(避隱) 혜현구정(惠現求靜) ; 『속고승전』 권28, 석혜현(釋惠現). 그리고 의영(義榮)은 『약사론소(藥師論疏)』와 『유가론소(喩伽論疏)』를 찬술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어40)이만, 「백제 의영(義榮)의 유식 사상(唯識思想)」, 『한국 불교학』 19, 한국불교학회, 1994. 백제에서 유식학(唯識學) 연구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백제는 552년(성왕 30) 일본에 금동석가불상과 불경 등을 보내 불교를 전하였다. 554년에도 담혜(曇慧) 등 아홉 명의 승려를 보내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불사리·경론·승니·장인 등을 보냈다. 또한, 일본에서도 고구려 승 혜편(惠便)에게 득도한 선신니(善信尼) 등이 588년(위덕왕 35) 백제에 건너와 율학을 배우고 돌아갔다. 602년(무왕 3) 일본으로 간 관륵(觀勒)은 태자의 스승이 된 후 계법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일본 초대 승정이 되었다.

이처럼 백제의 교학은 계율을 중심으로 천태·삼론·열반 등의 연구가 활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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