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1권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 제1장 불교의 수용과 신앙의 시작
  • 4. 국가적 불사와 법회
  • 점찰법회
김남윤

점찰법회(占察法會)는 무교의 점복 행위와 유사한 방법으로 점을 쳐서 과보의 차별을 살피고 그에 따라 참회 수행하게 하는 법회였다.

점찰법회는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에 근거하는데, 이 경은 중국에서 지어진 위경(僞經)으로 여겨지고 있다. 『점찰경』 상권에서는 불멸 후 악세에서 출가·재가 중생이 세간과 출세간의 인과법에 대하여 확고한 신심을 내지 못하고 여러 가지 장애를 만나 의혹이 일어나거든 ‘목륜상법(木輪相法)’을 써서 선악의 숙세(宿世)의 업과 그 과보를 점찰하여 참회 수행할 것을 설하였다. 그 뒤에 목륜상법을 설명하였는데 목륜 열 개로 숙세에 지은 선악업의 차별을 점치는 법과 목륜 세 개로 지은 업의 원근과 강약·대소 차별을 살피는 법, 목륜 여섯 개의 각 3면에 1에서 18까지 숫자를 하나씩 써넣고 이것을 던져 나오는 수의 합인 1에서 189로 삼세 중 받을 과보의 차별을 점치는 법과 그 상(相)이 낱낱이 설명되어 있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무교에서는 신의 뜻에 좌우된다고 보고 그것을 점쳐서 살피고자 하였다면, 불교에서는 그것을 숙세의 과보로 보고 참회하고 선업을 지어 내세를 밝힐 것을 가르친 것이다. 점찰법은 업설에 입각하여 숙업에 대한 참회를 강조하였다. 『점찰경』 하권에서는 대승의 여래장 사상을 설하여 점찰법이 중생을 교화하여 이끄는 하나의 방편임을 명시하였다.

처음 점찰법으로 교화한 승려는 원광이었다. 그는 600년(진평왕 22) 수나라에서 귀국한 뒤 ‘귀계멸참(歸戒滅懺)’의 법으로 가서갑(嘉栖岬)에 점찰보(占察寶)를 두고 항규로 삼아 점찰법회를 설행하였다.83)『삼국유사』 권3, 흥법 원광서학. 원광은 삼기산에서 수행하던 중 신술(神術)을 행하는 신을 접하고 그의 권유로 중국에 구법하였으며 그의 부도도 삼기산에 있다고 전한다.84)『삼국유사』 권5, 감통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 원광은 무교 신앙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점찰법에 관심을 두고 교화 방법으로 삼았을 것이다. 또한, 왕의 질병에 밤마다 심오한 법을 말하고 계를 받게 하여 참회하게 했더니 왕이 크게 신봉하였고 드디어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것 역시 귀계멸참의 법을 설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안흥사의 비구니 지혜는 선도산 성모의 계시와 도움으로 불사를 이루었고, 또 봄가을에 각각 10일간 점찰법회의 설행을 항규로 삼았다고 전한다. 선도성모의 권유로 설행된 안흥사의 점찰법회도 원광의 점찰법을 따른 법회로 여겨진다. 또 사복이 연화장 세계로 들어간 뒤 사람들이 그를 위해 금강산 동남에 도량사(道場寺)를 세우고 매년 3월 14일에 점찰회를 열도록 하였다.

통일신라에서도 오대산 결사 가운데 남대 금강사(지장방)는 점찰예참을 하고 있으며, 흥륜사에서도 육륜회(六輪會)가 행해지고 있었다. 또 진표 (眞表)는 점찰법과 미륵 신앙으로 지방민을 널리 교화하였다.

점찰의 구체적 방법으로는 흥륜사 육륜회나 진표의 점찰법에 보이듯 주로 육륜상에 의한 점찰법이 채택되었던 듯하다. 여섯 개의 목륜으로 점쳐 앞으로 받을 과보의 차별을 살피려는 것인데 그 점상은 189가지가 된다. 진표의 189개 간자로 행하는 점찰법도 방법은 약간 다르지만 결과는 육륜상과 같다. 주로 육륜상을 행한 것은 현세의 참회 수행으로 미래를 밝히는데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또 참회 수행으로 미래를 밝히고자 하였기 때문에 지장보살보다 미륵을 주불로 신앙하게 되었던 듯하다. 그리고 재래의 점복과 유사한 방법으로 교화한 점에서 전통 신들도 점찰법에 귀의하게 되었고, 나아가 모든 중생을 위한 법회로 점찰회가 행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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