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1권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 제1장 불교의 수용과 신앙의 시작
  • 5. 내세관과 미래불 미륵 신앙
  • 윤회전생 관념의 수용
김남윤

처음 전해진 불교의 교설은 인과화복의 설, 곧 업설이었다. 인간의 의지적 행위인 업에는 필연적으로 과보가 따른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관념은 숙세·현세·내세의 삼세(三世)에 걸치는 인연설로 전개된다. 곧 업보에 따라 육도85)육도는 천·인·수라·아귀·축생·지옥이며 뒤의 세 가지를 삼악도(三惡塗)라고 한다.를 전생(轉生)한다는 윤회설은 숙세의 인연에 따라 현세가 결정되고 현세의 업과 숙세의 인연에 따라 내세의 삶이 결정되며, 깨달음을 얻어야만 윤회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확대보기
오리 모양 토기
오리 모양 토기
팝업창 닫기

윤회전생 관념의 수용은 고대인의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에 큰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재래 무교 신앙에서 사후 세계의 관념은 현재와 같은 삶이 계속된다고 보는 계세적(繼世的) 내세관이었다. 불교의 인과응보설에 따른 윤회전생의 관념은 현세와 내세의 연계성을 인정하면서도 두 세계의 질적 차이를 강조한다.86)전호태,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 사계절, 2000 참조.

계세적 관념을 바탕으로 한 장례 의식에서는 사자(死者)를 떠나보낼 때 가무를 하고 영혼을 인도하는 동물 을 상정하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가무를 하며 장사하는 예는 고구려에 나타나며, 영혼 인도 동물로는 말, 개, 새 등이 나타난다. 천신과 관련된 천마(天馬) 관념은 박혁거세 설화에 보이듯87)『삼국유사』 권1, 기이 신라시조 혁거세왕(新羅始祖赫居世王). 신라에도 있었다.

확대보기
고구려 고분 벽화의 연꽃
고구려 고분 벽화의 연꽃
팝업창 닫기

장의에 관하여는 삼국 이전부터 후장(厚葬)의 풍습이 있었다고 전한다. 사자를 위하여 무덤을 정성스럽게 조성하고 부장품을 풍부하게 매장하는 것은 영혼의 불멸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순장(殉葬)까지 하고 무덤에 여러 가지 도구와 물품을 함께 묻었던 것 또한 사자의 영혼이 사는 사후 세계의 삶도 현세와 동일한 삶이 계속될 것이라고 여긴 때문이었다.

무덤을 사자가 사는 곳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고구려 고분 벽화이다. 고분 벽화의 다양한 내용은 무덤 주인공의 생전 생활 모습과 세계관 및 신앙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 불교를 수용한 이후로 고분 벽화에는 불교적 소재들이 섞여 나타나게 되어 연꽃 장식, 불상, 비천, 승려, 예불 행렬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특히, 5세기 중엽 이후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 지역 고분에 집중적으로 연꽃 장식 벽화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불교를 받아들이며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꽃은 빛과 생명의 상징이라는 인도의 전통적 관념이 불교에 들어와 부처의 깨달음의 빛을 연꽃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러한 연꽃은 정토(淨土)에만 존재한다고 하여 천상보련(天上寶蓮)이라고 하고, 정토의 모든 존재는 그 연꽃에서 난다고 하여 연꽃은 불보살의 대좌(臺座)로 쓰이게 되었다. 중국에서 연꽃은 천제나 태양의 상징으로 보는 기존의 ‘하늘 연꽃’ 관념에, 불교를 받아들여 여래에게서 나오는 빛 또는 정토 화생의 모체로 표현되며 성행하였다.

연꽃 장식은 불교의 정토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지 않은 단계에서 하늘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관념과 혼재되어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연꽃에 무덤 주인공의 얼굴을 그려 연화화생(蓮花化生)을 표현한 것은 정토에 환생하기를 바라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확대보기
연화화생부부도
연화화생부부도
팝업창 닫기

그러나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연꽃 장식은 6세기 이후가 되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불교적 소재의 비중도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시조 신화에 바탕을 둔 전통 신앙을 유지하면서 불교를 받아들였던 고구려의 종교 정책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불교적 내세관을 받아들였으나 전통 신앙과 계세적 관념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88)전호태, 앞의 책 참조. 고구려 말에 도교 신앙이 성행한 것도 도교가 불교보다 전통 무교 신앙과 가까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윤회전생을 보여 주는 사례로는 사복 설화에서 전생에 소였는데 불경을 싣고 다닌 공덕으로 인간에 태어났다고 한 사복의 어머니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대개는 하늘에 태어나기를 기원하고 하늘에 태어났다고 하는 예가 많다. 통일 이후의 기록이지만 김유신은 33천의 한 아들로서 세상에 내려와 대신이 되었다고 하고,89)『삼국유사』 권2, 기이 만파식적(萬波息笛). 신문왕이 신충(信忠)의 원한을 풀어 주기 위해 절을 지어 주니 ‘고(苦)에서 벗어나 하늘에 태어났다’고 하며, 의상은 제자인 진정(眞定)의 어머니를 위해 화엄을 강하였더니 그 어머니가 하늘에 태어났다고 전한다.

이러한 전생 설화는 전통 신앙의 천신 숭배와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천신의 자손인 삼국의 건국 시조들은 사후에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한다. 불교를 수용한 이후에도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은 하늘로 올라간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고구려 유물인 함경도 신포 절골터 출토의 금동판에 새겨진 명문에서는 탑을 만들고 “왕의 영령이 도솔천으로 올라가 미륵을 뵙고 천손이 함께 만나며 모든 생명이 경사스러움을 입게 되기”를 기원하였다.90)한국 고대 사회 연구소, 「신포시(新浦市) 절골터 금동판(金銅版) 명문(銘文)」, 『역주 한국 고대금 석문』 Ⅰ, 가락국 사적 개발 연구원, 1992, 143∼146쪽. 천손인 왕이 사후에 올라간다는 하늘이 도솔천으로 나타나 있다. 도솔천은 수미산 위에 있는 욕계 육천의 제4천으로 그 내원에 미륵보살이 있어 이 땅에 하생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곳이다.

확대보기
신포 절골터 출토 금동판
신포 절골터 출토 금동판
팝업창 닫기

불교 수용 이후 삼국인의 내세관은 윤회전생하게 되는 육도 가운데 가장 좋은 천(天)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관념이 주가 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전통의 하늘 관념에 도솔천 관념을 받아들여서 삼국에서 미륵 신앙이 성행하는 또 하나의 배경이 된 듯하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