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1권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 제2장 불교 사상의 확립과 일상의 신앙생활
  • 2. 신앙의 실천과 불교 대중화
  • 미타 신앙
정병삼

신라 중대의 가장 보편적인 신앙은 미타 신앙(彌陀信仰)이었다. 미타 신앙은 아미타불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한 원력에 의해 사람들이 아미타불을 지성으로 염송하면 사후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된다는 내세 신앙이다. 신라의 미타 신앙은 국가를 위한 전쟁에 동원되었지만 절을 짓거나 탑을 세우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없었던 일반민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녔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더불어 일반민과 직접 어울리며 포교하던 교화승의 활동에 따라 미타 신앙은 7세기에 점차 기반을 다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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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정토도
아미타정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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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의 낭도로도 활동한 혜숙(惠宿)은 기층민의 요구에 부응하여 지배층과 결합된 기존 교단을 비판하였다. 혜공(惠空)은 귀족의 집에서 고용 살던 이의 아들로, 술에 취하여 삼태기를 지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만년에는 항사사(오어사)에서 지냈는데, 원효가 글을 쓰다가 의심이 나면 혜공에게 가서 묻곤 하였다고 한다. 혜공은 영묘사에 화재가 날 것을 예견하고 미리 비법을 알려 주어 이를 구하기도 하였다. 대안(大安)은 시장거리에서 생활하면서 궁중의 초청도 외면하고 기층민과 어울려 지냈다. 대안은 『금강삼매경』이 처음으로 알려지자 흐트러진 내용의 차례를 혼자만이 알아낼 만큼 사상적인 깊이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교화승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기층민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불교가 점차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경향을 계승하여 원효는 치밀한 교학 이론을 바탕으로 정토 신앙을 대중 신앙으로 확립하였다. 원효는 범부도 왕생할 수 있다는 교학을 마련하고 스스로 파계한 뒤, 속인의 옷을 입고 기괴한 박을 도구로 만들어 무애가(無碍歌)를 세상에 유포시키고 천촌만락(千村萬落)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다. 이에 따라 나무꾼이나 장사치도 부처의 이름을 알고 귀의한다는 뜻인 ‘나무(南無)’의 칭호를 부르게 되었다.

원효는 사람은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불성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중생이 미혹하여 자신의 성불 가능성을 믿지 않으므로 불보살의 도움을 빌 어야 한다고 하였다. 정토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보리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미타불을 믿고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 왕생하여 성불할 수 있음을 강조하여 염불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원효 이후 신라 승려들은 미타 신앙의 기반인 『무량수경(無量壽經)』·『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아미타경(阿彌陀經)』의 미타삼부경에 많은 주석을 베풀었다. 원효에서 시작하여 법위·현일·의적으로 이어지는 신라 정토 교학은 중국 혜원의 학설을 계승 발전시킨 추세를 보였다. 이는 현장의 견해를 계승하여 이를 비판한 경흥·원측 등의 유식계 정토 교학과 대비되며 신라 정토 교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주된 관심은 『무량수경』의 내용 조직이라든가 왕생 방법, 왕생 인연의 제한, 미타와 미륵 정토의 우열 문제 등이었다.135)안계현, 『신라 정토 사상사 연구』, 현음사, 1987, 332∼366쪽.

왕생 방법에서는 십념(十念)의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경전에서 십념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원효·법위·경흥·의적 등 신라 정토 사상가들은 다소 견해 차이는 있지만, 십념을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칭명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지식 기반이 없는 범부들이 단지 명호를 부르는 것만으로 왕생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서, 중생의 평등성을 의식한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으로 일반민이 적극적으로 미타 신앙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왕생 인연 문제는 중생이 선천적으로 갖춘 자질에 따라 왕생할 수 없다고 하는 다섯 부류의 사람을 인정하는지 여부였다. 이에 대해 원효·현일·의적은 모두 참회에 중점을 두어,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 오역(五逆)이나 정법을 비방한 자도 참회할 줄 알면 왕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경흥은 유식의 전통적인 오성각별설을 따라 성불할 수 없는 다섯 부류의 사람을 인정하였다. 왕생할 수 있는 단계에 대해서도 신라 정토 사상가들은 중국 승려들보다 훨씬 낮게 설정함으로써 왕생자의 문을 크게 열어 놓았다.

미타정토와 미륵정토의 우열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원효는 미타 정토인 극락이 더 뛰어난 정토이고, 극락정토가 왕생하기도 더 쉽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경흥은 미륵정토인 도솔천도 극락처럼 쉽게 염불로 왕생할 수 있다고 하여 미륵정토가 미타정토에 못지않음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왕성한 교학을 바탕으로 미타 신앙은 평민이나 노비로부터 귀족에 이르기까지 신라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게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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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사 미륵보살 입상
감산사 미륵보살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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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사 아미타불 입상
감산사 아미타불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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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 신앙은 구체적인 불교 신앙 사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예를 보인다. 포천산에서 아미타불을 구하여 서방 왕생을 위해 염불 수행하던 다섯 비구는 모두 몸을 버리고 왕생하였다. 남산 기슭의 피리사에 머물던 승려는 아미타불을 크게 염불하여 온 성안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여서, 사람들이 이름을 아예 염불사라고 부르고 공경하였다. 이런 사례는 승려들이 미타 신앙을 주도하였음을 알게 한다. 이에 비해 포산의 관기(觀機)와 도성(道成)이라는 두 수도자는 산골에서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수행하다 왕생하였고, 이를 기려 고려 초에도 이곳에서 만일 염불 결사(萬日念佛結社)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는 일반민의 미타 신앙 모습을 알려 준다.

미타와 미륵의 복합 신앙도 보인다. 집사 시랑을 지낸 김지성(金志誠)은 성덕왕 때 돌아간 부모를 위하여 감산사(甘山寺)를 창건하고 미륵보살상(719)과 아미타불상(720)을 조성하였다. 김지성이 생전에 조성한 감산사 미륵보살은 돌아간 부모 외에 국왕과 개원 이찬 및 형제·자매·처·승려 등 생존자가 공양자의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사후에 조성한 아미타불은 국왕 과 개원 이찬 그리고 후처 이외에는 망부모·망제·망매·전처 등 사망자가 중심을 이루어 대조를 보인다. 이는 미타 신앙의 내세적인 성격을 잘 말해 준다.

신라 중대의 미타 신앙은 염세적인 데서 오는 내세적 기원보다 현실 긍정적인 경향이 강하였다. 신앙 내용이 사후의 극락왕생보다 현실에 극락정토를 구현하겠다는 내용이 많이 나타난다. 극락세계의 현실화에 대한 소망은 경덕왕대에는 미타가 신라 땅에서 현신 성불하였다는 신앙 내용으로 이어졌다. 경덕왕대에 수십 년에 해당하는 만일(萬日)을 기약하여 시행된 염불 결사는 본격적인 신앙 결사의 면모를 알려 준다. 귀족이 주도한 이 염불 결사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던 노비 욱면(郁面)은 그 정성이 인정되어 나중에야 참가가 허락되고, 귀족이나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현신 그대로 염불하던 법당 천장을 뚫고 왕생하였다는 설화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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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 약사여래 입상
금동 약사여래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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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계층을 가리지 않고 전 사회에 고루 수용된 미타 신앙은 국민의 일체감 조성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136)김영미, 「통일신라시대 아미타(阿彌陀) 신앙의 역사적 성격」, 『한국사연구』 50·51, 한국사연구회, 1985, 70∼71쪽. 통일기의 신라 사회는 전쟁을 치르고 난 뒤 그 과정에서 애쓰거나 희생된 사람을 위로하고 새롭게 확보한 영토에 살고 있던 고구려와 백제의 기층민도 포용해 들여야 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필요한 신앙으로서 미타 신앙은 더없이 적절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얻어진 일체감은 지역 간의 화해와 계층 간의 화합에 중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한편, 일찍이 불교 수용 단계부터 승려들의 치병 활동을 중심으로 환영받았던 약사 신앙(藥師信仰)은 중대에 들어 밀본과 혜통 등이 널리 시행하였다. 이들의 활동에 힘입어 주술을 이용한 치병 신앙이 유행하여 수많은 약사불상이 제작되었다. 약사 신앙은 사방불(四方佛) 중 동방의 부처로서 질병·기근 등 현세의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면서 생명까지 연장시켜 주는 현세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사후의 정토를 기원하는 정토 신앙을 보완해 주는 것이었다.137)김혜완, 「신라의 약사(藥師) 신앙」, 『천관우(千寬宇) 선생 환력 기념 한국사학 논총』, 논총 간행 위원회, 1985, 328∼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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