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1권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 제2장 불교 사상의 확립과 일상의 신앙생활
  • 3. 선종의 수용과 신앙의 변화
  • 신라 선 사상
정병삼

신라 선종의 선 사상은 입당 구법승들이 신라로 돌아와 선 수행의 터전인 선문을 개창하여, 당시 당나라에서 널리 유행하던 조사선의 선풍을 수용하면서 전개되었다. 그 대표적인 선 사상을 도의와 무염, 그리고 범일과 순지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선종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일체의 상대성과 차별심을 초월한 바로 지금의 경지에서 자기의 본래심으로 어떤 것에도 걸림 없이 자재롭게 살아감을 말한다.

중국 남종선을 정착시킨 마조가 “모양이 본래 공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동시에 생겨나지 않은 것이다.”라고 설한 것은 반야공 사상에 근거를 둔 실천 사상이다. 조사선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진실된 삶을 전개하는 일상성의 종교를 설한다. 곧 모든 일이 본래심을 잃지 않고 상황에 맞게 전개된다면 매사가 모두 그대로 진실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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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조사선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이 도의이다. 도의가 선을 수용하여 귀국할 당시의 신라 불교는 경전의 권위와 교학 중심의 전통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생겨나고 없어지는 조작된 작위성이 없고(無爲) 자유로운(任運)’143)「보림사 보조국사비문(寶林寺普照禪師碑文)」, 『한국 고대 금석문』 Ⅲ, 가락국 사적 개발 연구원, 1992, 51쪽. 선법의 종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하였다. 이러한 선 수용 초기의 기반 확보 어려움은 고려에 들어서 도의가 교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지원(智遠) 승통과 문답을 주고받으며 선의 우월한 면모를 주장하는 것으로 바뀌어 전승되게 된다.

지원 승통이 물었다. “화엄의 사종법계(四種法界) 이외에 다시 어떤 법계가 있으며, 55선지식의 항포(行布) 법문 이외에 다시 어떤 법문이 있습니까?” 도의가 대답하였다. “선종의 조사문에서는 이치를 곧바로 들어 일체의 바른 이치를 녹여 없애버리므로 손바닥 안의 법계의 모양도 얻을 수 없고, 실천과 지혜가 본래 없는 조사선 가운데는 문수나 보현의 모양도 볼 수 없으니, 55선지식의 항포 법문은 진실로 물속의 거품과 같은 것입니다.”144)『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권중, 『한국 불교 전서』 6─478하∼479상.

사종법계는 화엄 교학의 근간을 이루는 중심 교학이며, 55선지식은 화엄 실천행의 중심인 입법계품의 선재동자 구법의 대상이다. 선종에서는 이런 화엄 교학과 실천행의 중점을 한낱 물거품과 같다고 부정한다. 그리고 경전을 열심히 읽는 것으로 조사가 마음으로 전한 법을 증득하려 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음을 덧붙인다.

이 문답은 교종을 대표하는 지원 승통이 『화엄경』에 입각하여 불교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전통적인 교학 불교의 입장에서 질문하고, 선을 대표하는 도의가 경전의 교설을 전부 부정하는 철저한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입장에서 도의 본성을 곧바로 드러내는(直指人心) 조사선의 정신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것이다.

교학의 최고 경지라 말하는 화엄의 법계연기설이나 구도적인 법문과 같이 문자로 개념화한 가르침을 따라 불교의 참된 정신을 이해하려는 것을 부정한다. 대신 그러한 교설이 나오기 이전의 부처의 근원적인 마음으로 돌아가, 문자화되고 개념화되기 이전인 본래의 우리들 마음에서 진실을 체득할 것을 강조한다. 모든 경전은 중생의 일심을 밝히기 위해 부처가 설한 것인데, 그런 근본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경전의 문자나 교설에 사로잡혀 본말이 전도되어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선 실행의 근본 의미는 닦고 수행해서 그 무엇을 얻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경계에서 물들지 않는, 곧 일체의 상황을 대할 때 분별이나 집착이 없고 본래의 자성청정심 (自性淸淨心)으로 자기를 살아가는 무념(無念)의 입장임을 제시한다.145)정성본, 『신라 선종의 연구』, 1995, 민족사, 149∼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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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염은 마조 도일의 제자인 마곡 보철의 선법을 받아 845년(문성왕 7)에 귀국하여 847년에 충청남도 보령에 성주사를 창건하고 손꼽히는 대찰인 성주산문을 개창하였다.

무염은 무설토(無舌土)와 유설토(有舌土)라는, 선과 교를 판별한 선법을 남겼다.

무염에게 법을 배우고자 온 사람이 두 가지 땅에 대해 물었다. 무염은 앙산 혜적(仰山慧寂)의 말을 들어 대답하였다.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한결같이 혀가 없다(兩口一無舌). 이것이 나의 종지이다.”

학인이 다시 물었다.

“한 조사에게 두 가지 땅이 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선법을 바르게 전하는 근기는 법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스승 역시 가르칠 필요가 없으니 이것이 무설토인 것이요, 사실에 응하여 법을 구하는 사람은 언설을 빌려서 설명하므로 유설토라고 한다.”146)『조당집(祖堂集)』 권17, 숭암산성주사고양조국사전(崇巖山聖住寺故兩朝國師傳). 그런데 『선문보장록』에서는 무설토를 선종, 유설토를 교종으로 대비시켜 선종의 우위를 강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선문보장록』 권상, 『한국 불교 전서』 6-473중∼474상).

본래 이 두 가지 땅의 비유는 앙산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무염은 앙산이 입적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긴 유훈을 그대로 전하고 나서 그 뜻을 풀어 말했다.

혀가 있다는 유설은 언어와 말이 있다는 뜻이고, 혀가 없다는 무설은 말이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를 말한다. 유설토란 언어나 문자 등 고정화된 개념과 이름을 빌려서 어떤 사물이나 진실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 달하는 현상의 세계를 의미하며, 무설토란 일체의 언설이 끊어지고 사물이 이름 지어지고 개념화되기 이전의 근원적인 본래의 세계를 상징한다.

선법을 바르게 전하는 뛰어난 근기를 갖춘 사람은 스스로 탐구하고 연마하여 진실을 자각하므로 따로 다른 데서 법을 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승 또한 그에게 어떤 법이나 가르침을 줄 필요가 없다. 스승과 제자 간에 서로 정법의 안목을 가지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할(以心傳心) 뿐이다. 그래서 무설토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실에 따라 법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이름이나 말을 빌려 말해 주어야 하므로 이런 교화 수단을 유설토라고 한다. 무설토는 깨달음의 세계이고, 유설토는 교화의 세계이다.

그런데 한 조사는 이 무설토와 유설토의 두 가지 기능을 다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언어 문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깨달음의 입장과 중생 교화를 위한 수단과 방편으로 필요한 언어 문자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방향 제시의 입장, 이 두 가지를 갖추어야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는 뛰어난 조사라는 것이다.

이처럼 무설토는 일체의 언어나 문자의 매개가 끊어진 근원적인 본래의 세계, 진실의 세계를 말하며, 각자가 수행과 깨달음의 체험으로 그러한 진실의 세계를 체득하여 자내증(自內證) 경지를 구현하도록 제시한다. 또 그러한 깨달음의 경지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중생을 위해 그들의 근기에 알맞게 언어나 문자의 방편을 빌려 그들을 진실의 세계로 인도하는 중생 구제의 보살도를 전개하는 것이 유설토이다.

그런 관점을 가졌기에 무염은 교와 선의 가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염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말하였다.

“저 사람이 마신 물이 내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저 사람이 먹은 음식이 내 굶주림을 채워주지 못한다. 어찌 힘써 스스로 마시고 먹으려 하지 않느냐. 어떤 사람은 교와 선이 같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그 다른 종지를 보 지 못하였다. 말은 본래 많은 것이라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대개 나와 같다고 해서 옳은 것만은 아니고,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른 것만도 아니다. 편안히 앉아 산란한 마음을 쉬는 것이 수행하는 사람에 가깝지 않겠느냐.”147)「성주사 낭혜화상비문(聖住寺朗慧和尙碑文)」, 『한국 고대 금석문』 Ⅲ, 1992, 118∼119쪽.

선과 교는 사람들의 분별에서 생긴 것일 뿐, 묵묵히 불법을 실천하는 수행자에게는 시비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수행자의 기본 정신에 서서, 교와 선이라는 차별적인 견해의 대립을 근본으로 되돌려 실천적인 차원에서 수용하는 무염의 자세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염의 무설토유설토론은 고려에 들어와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에서 보는 것처럼 교종에 대한 선종 우위의 견해를 강조하는 쪽으로 변질되어 계승되었다.148)정성본, 앞의 책, 161∼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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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산사지 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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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일은 마조의 제자인 염관 제안(鹽官齊安)의 법을 받아 847년(문성왕 9)에 귀국하여 성주산문과 함께 신라 선종을 대표하는 사굴산문을 개창한 조사이다. 범일은 제안의 문하에서 조사선의 정신을 바로 계승하였다. 범일이 제안에게 어떻게 해야 성불할 수 있느냐고 묻자, 제안은 도는 닦을 필요가 없고 물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평상심이 곧 도라고 대답하였다. 범일은 이 말을 듣고 깨달아 6년 동안 정성껏 스승을 받들어 모셨다.149)『조당집』 권17, 명주굴산고통효대사전(溟州堀山故通曉大師傳). 범일은 조사선의 대성자인 마조가 처음 주장한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는 조사선의 정신을 계승 전수한 것이다. 그런데 고려에 들어서 범일이 진귀 조사설(眞歸祖師說)을 말하였다는 전승이 생겨났다.

진성여왕이 선과 교에 대해 묻자, 범일은 대답하였다.

“우리 본사인 석가모니불이 탄생하여 일곱 걸음을 걷고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하셨습니다. 후에 성을 넘어 출가하여 설산 속에서 별을 보고 도를 깨달으셨지만, 그 깨달은 법 이 아직 극치에 이르지 못했음을 느끼고 수십 개월을 돌아다닌 끝에 조사 진귀 대사를 방문하여 비로소 깊고 지극한 종지를 전해 받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교외별전입니다.”150)『선문보장록』 권상, 『한국 불교 전서』 6─474상.

이 전승은 조사선에서 강조하는 교외별전이란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미진하여 다시 진귀 조사를 찾아 조사의 종지를 전해 받은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 선종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신라에만 있는 이야기이다.

무염과 범일은 신라 선종의 양대 산문인 성주산문과 사굴산문의 개창자이다. 이들의 권위에 붙여 아마도 고려시대에 무설토유설토설이 바꿔 전승되고 진귀 조사설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두 견해는 모두 교에 대한 선의 우위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이는 치열한 선과 교의 대립 상황에서 선종이 자신의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이처럼 무리한 주장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진정한 교외별전의 내용인 조사가 마음으로 전한 정법의 경지는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신라 말에 순지는 앙산 혜적의 법을 전해와 오관산문(五冠山門)을 개창하였다. 기록상으로 순지는 신라 선사 중 가장 체계적인 선풍을 남겼다. 순지의 선 사상은 동그라미 모양을 그려 법을 설하는 표현상법(表現相法)과 삼편성불론(三遍成佛論)이다.151)『조당집』 권20, 오관산서운사화상전(五冠山瑞雲寺和尙傳). 불자(拂子), 주먹, 주장자(拄杖子, 지팡이) 등을 들어 보이거나, 땅이나 허공에 원을 그려 보이는 구상적인 선문답은 조사선 시대에 일반화되었다. 특히, 선종 오가(五家) 중의 위앙종(潙仰宗)에서는 불법의 근원적인 깨달음의 세계를 원으로 그려 보임으로써 수행자를 인도하는 종풍을 크게 드날렸다. 위앙종의 조사인 앙산에게 배운 순지가 이를 계승하여 배우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증득하는 데 빠르고 더딤이 있음을 그림을 통해 가르친 것이 표현상법이다.

순지의 표현상법에는 ‘사대팔상’, ‘양대사상’, ‘사대오상’ 등이 있었 다. 원과 깨달음의 비유에 자주 쓰이는 소 또는 卍 자를 서로 조합하여 상징화함으로써, 불성과 깨달음의 세계, 그리고 일체가 모두 공이라는 불법의 이치를 중생의 근기에 따라 깨닫도록 제시한 것이 사대팔상이다. 나머지는 원을 가지고 허상을 떨쳐 버리고 실상을 깨닫도록 하거나, 바탕이 뛰어난 사람이 단번에 깨달을 수 있도록 보여 준 형상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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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의 순지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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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편성불론은 자기 마음의 근원의 이치를 단번에 깨달아 성불하고, 널리 보살도를 수행하여 지혜와 자비가 원만해지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성불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세 가지를 말한다. 이를 더 구체화하여 깨달음의 방법과 교화의 실천을 단번에 이루어내는지 점차 단계적으로 해내는지로 나누어 세 가지 설명이 뒤따른다.152)정성본, 앞의 책, 215∼243쪽.

순지의 선 사상은 원의 모습과 활용 방법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교학의 성불론과 다를 바 없는 이론을 조직하고 있다. 이는 교외별전을 표방하며 교학적 권위와 구조를 모두 부정하는 선의 충격이 신라 사회에서 완충적인 기반을 갖기 위해 채택한 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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