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2장 천 년을 넘기는 한지
  • 1. 닥나무로 만든 한지
  • 독특한 종이 제조 기술
김덕진

우리나라 종이는 다른 나라 종이와 원료나 제조법이 달라 질적으로 우수한 편이어서 예로부터 누구나 탐을 냈다. 우선 색깔이 아름다워 보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표면이 매끄러워 먹을 잘 받았다. 더군다나 비단의 수명이 500년인 데 비하여 우리 종이는 1000년 이상을 견딜 만큼 질기어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고구려의 삼종이나 신라의 닥종이가 오늘날까지 전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종이 만드는 기술 수준이 상당히 높았던 듯하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제지술도 수준이 높았다. 몽골의 오르홍 골짜기 찬트에는 고려에서 원나라에 잡혀간 제지 기술자가 세운 종이 공장의 터가 있다.79)주채혁, 「몽골 오르홍 골짜기 찬트에 있는 고려 종이 공장터에 관하여」, 『창해 박병국 교수 정년 기념 사학 논총』, 1994. 고려의 종이는 중국인에게 명품으로 알려져 송·요·금·원나라에 보내졌다. 조선시대에도 명·청나라와 일본은 물론이고 멀리 유구(琉球, 오키나와)까지 종이가 명품으로 증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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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도(琉球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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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를 잘게 썰어 삶은 후 커다란 용기에서 접착제를 첨가하여 풀처럼 반죽한 뒤, 돗자리나 촘촘한 그물에 아주 얇게 떠서 말리면 종이가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칙적으로 모든 종이의 제조 과정은 이와 같다.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종이의 제조 방법도 기본적으로는 이와 비슷하며, 거의 1000년 이상을 내려온 전통적인 방법이다. 특히 한지에는 다소 독특한 제조 과정이 있었으며 많은 손질을 필요로 한다. 이에 99번의 손질을 거친 후 마지막 사용하는 사람이 100번째로 만진다 하여 우리 종이를 일백 백(百) 자를 써서 백지(百紙)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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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피 삶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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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는 우선 닥나무를 주원료로 한다. 일년생 닥나무를 11∼12월에 베는데, 이때 베어야 섬유질이 풍부하고 껍질을 벗기기가 수월하다. 베어 온 닥나무를 커다란 솥에 넣고 불을 피워 삶은 후 칼로 껍질을 깨끗하게 벗겨 흰 대만 말려 두었다가 이듬해 종이를 만든다. 껍질을 벗긴 닥나무를 흑피(黑皮)라고 한다. 작업 과정에서 닥나무에 다른 잡티가 없어야 깨끗한 종이를 만들 수 있다.

흑피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물에 하루 정도 불린 다음 솥에 잿물과 함께 물을 붓고 6∼7시간 동안 다시 푹 삶는다. 잿물은 보통 볏짚, 콩대, 고춧대, 메밀대, 목화대 등을 태운 재로 만들었다. 제조 과정에 불순물이 섞이면 좋은 종이를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래 가지도 않는데, 잿물로 삶는 것은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삶은 흑피를 흐르는 물에 반나절 정도 담가 두었다가 2∼3회 물을 갈아 주면서 잿물을 씻어 낸다. 그 다음 흑피를 바위 위에 널어 5일가량 햇볕을 쬐어 흰색을 띨 때까지 말린다. 이것을 백피(白皮)라고 한다. 맑은 물에 씻고 햇볕에 쬐는 과정은 잡색의 섬유질을 순백색으로 바꾸는 천연 표백법으로 섬유의 특성을 손상시키지 않고 표백하는 방법이다.

햇볕 쬐기를 마친 백피를 닥돌에 올려놓고 닥방망이로 40∼60분 정도 두들겨 찧는다. 뭉친 섬유질을 풀어 주기 위한 이 방법은 섬유질을 길게 하여 지질을 질기게 하는 것으로 한지만의 독특한 공정이다. 이와는 달리 중국은 재료를 절구통에 넣고 찧거나 물방아로 갈아서 섬유질을 잘게 자른 다. 그러므로 중국 종이는 질기지 않은 단점이 있다. 두들기기가 끝나면 그것을 통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 막대기로 잘 저어 섬유질이 골고루 충분히 풀어지도록 한다.

이때 섬유를 빨리 가라앉게 하고 종이의 질을 고르게 하기 위하여 닥풀(황촉규) 뿌리로 만든 초지용 점착제를 넣고 농도가 일정해지도록 골고루 잘 젓는다. 한지가 1000년 이상 보존될 수 있는 비결은 펄프에 점성을 가해 주는 이 닥풀에 있다고 한다. 닥풀을 첨가하지 않고 펄프만으로 만든 종이는 흡수성이 너무 좋아 먹물이 번지는 단점이 있다.

통에 죽이 된 닥과 닥풀을 섞어 물을 부은 다음 치밀하게 짠 대발을 이용하여 종이뜨기 작업에 착수한다. 전통적인 종이뜨기 방법으로는 외발뜨기가 있다. 외발뜨기란 직사각형 발의 가로 쪽을 줄로 천장에 매달은 외발을 이용하여 앞물을 떠서 뒤로 버리고 뒷물을 떠서 앞으로 버리는 앞물질과 다시 좌우로 흔들며 물을 버리는 옆물질을 하여 만드는 방법이다. 이렇게 앞물질과 옆물질을 한 까닭에 섬유 조직의 배열이 위아래와 옆으로 얼기설기 엮여서 종이의 강도가 좋아지고 섬유질이 고른 종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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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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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뜬 후 나무판 위에 500∼600장 정도를 한 장씩 올려놓고 물빼기를 한다. 종이마다 떼어 내기 쉽도록 베개를 넣은 후 무거운 돌이나 나무로 하룻밤 정도 누른다. 물기가 빠지면 한 장씩 온돌 바닥에 펴서 비로 쓸어 가면서 말리거나 벽에 붙여 말리기도 하지만, 넓은 바위 위에 펼쳐 놓고 햇볕으로 말리는 것이 전통적인 방법이다. 완전히 마른 종이를 여러 장 겹쳐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도침(搗砧) 또는 도련(搗鍊)이라 하여 방망이로 다듬이질을 하여 지면을 고르게 다듬는 마지막 작업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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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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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침 작업이 바로 한지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1123년(인종 1)에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徐兢)이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고려) 종이는 닥나무만을 써서 만들지 않고 등나무를 간간히 섞어 만들되, 다듬이질을 하여 다 매끈하며, 좋고 낮은 것의 몇 등급이 있다.”80)서긍(徐兢), 『고려도경(高麗圖經)』 권23, 잡속(雜俗)2, 토산(土産).고 한 것으로 보아 도침법은 일찍부터 사용한 우리 고유의 제지법인 듯싶다.

서유구가 『임원경제지』에서 소개한 조선의 추지법(搥紙法)에 따르면,81)서유구(徐有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이운지(怡雲志)4, 지(紙). “마른 종이 열 장에 젖은 종이 한 장을 겹쳐 100장 단위로 평평한 탁자 위에 올려놓고, 종이 위에 평면 판자를 놓고 큰 돌로 하룻밤 눌러 건기와 습기가 고르게 되면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떡매로 200∼300번 친다. 이 작업을 서너 차례 행하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빛이 나고 반질반질한 것이 기름종이와 같아진다.”고 하였다.

도침법은 무명옷에 풀을 먹여 다듬이질을 하거나 대장간에서 불에 달군 쇠를 담금질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도침 과정을 거치면 섬유질의 치밀성(緻密性)과 표면의 평활성(平闊性)이 향상되고, 흡수성(吸水性)이 커져 먹물이 잘 번지고 섬유질이 불규칙하여 보푸라기가 잘 일어나는 단점이 보 완되어 종이의 품질이 향상된다. 그리하여 인쇄할 때 번짐 현상이 줄어들고 광택이 나며, 반드럽고 빳빳하고 희고 윤이 나 보기에 좋다. 그뿐만 아니라 도침 과정을 거치면 지질(紙質)이 질기게 되어 오랫동안 썩지 않고 천 년 이상 보존될 수 있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가 금속 활자로 처음 찍은 성경은 발간한 지 550년 정도 되었지만 열람하면 지질 때문에 손상될 우려가 커서 암실에 보관하고 있는데, 이것과 비교해 보면 1000년을 가는 한지의 우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겠다.

이러한 점 때문에 우리 닥종이가 중국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관아나 왕실에서 책을 발간하거나 중요 문서를 작성할 때 상품의 닥종이를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이 자신의 문집인 『보만재집(保晩齋集)』에 “송나라 사람이 여러 나라 종이의 품질을 논하면서 반드시 고려 종이를 최고로 쳤다. …… 우리나라 종이는 매우 질긴데 방망이로 두드리는 작업을 거치면 더욱 고르고 매끄러워지고 다른 나라 종이는 그렇지 못하다.”82)서명응(徐命膺), 『보만재집총서(保晩齋叢書)』 권58,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10, 지품고하(紙品高下).라고 적은 그대로이다.

중국인은 다듬이질을 하여 비단처럼 곱다 하여 우리 종이를 견지(繭紙)라 하고 다듬이질을 한 백지라 하여 백추지(白硾紙)라 하였다. 또한 중국인이 경면지(鏡面紙), 즉 거울처럼 빛나는 종이라고 일컫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종이 품질이 떨어진 것은 도침 작업에 정성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업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으로 화목(火木), 넓은 바위, 맑은 물이 구비되어 있다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닥나무를 푹 삶기 위해서는 많은 땔나무가 필요하고, 종이를 제조하는 전 과정에서 맑은 물이 많이 소비되었다. 수성(水性)에 따라 종이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은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 “호남의 전주 종이 품질은 다듬어지지 않으나 부드럽고, 순창은 정결하나 약하고, 남평은 단단하나 어둡고, 남원은 색깔이 백설과 같고 부드러움이 기름덩이와 같고, 영 남은 거칠고 무거우며 빛깔이 고르지 않은 이유는 수질로 인하여 그러하다.”83)이유원(李裕元), 『임하필기(林下筆記)』 권32, 저산(楮産).고 하였다.

방망이질을 하거나 삶은 닥나무와 물 먹은 종이를 햇볕에 말릴 때에는 넓은 바위 위에서 작업을 하였다. 따라서 땔나무, 맑은 물, 넓은 바위가 잘 갖추어져 있어야 좋은 종이를 만들 수 있는데, 우리나라 산천은 너무나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어 뛰어난 종이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한지의 특징은 한마디로 깨끗하고 질기며 매끄럽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고려의 종이는 당시 중국 최고의 종이인 윈저우(溫州)의 견지(蠲紙)와 매우 비슷하다는 평을 받았다.84)이수광(李睟光), 『지봉유설(芝峰類說)』 권19, 복용부(服用部), 기용(器用). 이와 같은 호평을 받는 이유는 원료인 저를 갈지 않고 두들기고, 외발뜨기로 섬유질이 양 방향으로 퍼져 있고, 말린 종이를 그대로 출하하지 않고 두들기는 남다른 가공 기술에 있었다. 한말에 러시아 재무성에서 편찬한 『한국지』에서도 우리 종이는 질기어 찢어지지 않는다고 평하였다.85)제정 러시아, 『한국지(韓國誌)』, 1900.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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