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3장 우리 옷감과 염료의 멋과 아름다움
  • 2. 옷감의 멋과 아름다움
  • 우리 옷감의 종류
  • 마직물
김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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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麻)
삼베(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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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는 기후에 잘 적응하는 식물로 세계 각처에서 재배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길러 왔다. 마(麻)는 대마(大麻)와 저마(苧麻)로 구분되지만 우리의 고문헌에서는 마만 적어 구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이를 원료로 만든 직물도 대부분 포(布)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저마 직물이 대마 직물과 구별되어 문헌에 기록된 것은 통일신라시대부터인데, 672년(문무왕 12)에 40승포 여섯 필과 30승포 60필을,145)『삼국사기』 권7, 신라본기7, 문무왕 12년 9월. 869년(경문왕 9)에 30승 저삼단(紵衫段) 40필을 당나라로 예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146)『삼국사기』 권11, 신라본기11, 경문왕 9년 7월.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우리나라 북도에는 한 필 포가 밥그릇에 들어가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40승포”라고 하였는데,147)이익(李瀷), 『성호사설(星湖僿說)』 권6, 만물문(萬物門). 신라 때 공물로 보낸 40승포가 얼마나 고운 삼베인지 알 수 있다.

한편,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여자의 옷은 흰 모시(白紵) 노랑 치마인데, 위로는 왕가(王家)의 친척과 귀한 집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의 처첩에 이르기까지 같은 모양이어서 구별이 없다.”는 기록이 있다.148)서긍(徐兢), 『고려도경(高麗圖經)』 권20, 부인(婦人). 또한 “(왕이) 평상시 쉴 때에는 검은 건(巾)에 흰 모시 도포를 입어 백성과 다를 바가 없었다.”,149)서긍, 『고려도경』 권7, 관복(冠服), 왕색(王服). “농민은 빈부(貧富)할 것도 없이, 장사치는 원근(遠近)할 것 없이 다 백저포(白紵袍)를 만들고, 오건(烏巾)에 네 가닥 띠를 하는데, 다만 베의 곱고 거친 것으로 구별하였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150)서긍, 『고려도경』 권19, 민서(民庶), 농상(農商). 고려시대에 보통 사람은 주로 모시옷을 입었고 상류층만 고운 모시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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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의 마포 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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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숙종(재위 1095∼1105) 때 송나라 서장관(書狀官)으로 개성을 다녀간 손목(孫穆)이 당시 고려인들이 쓰던 언어를 추려 저술한 『계림유사(鷄林類事)』에 ‘마왈삼(麻曰三)’, ‘저왈모(紵曰毛)’, ‘저포왈모시배(紵布曰毛施背)’라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151)손목(孫穆), 『계림유사(鷄林類事)』 권3, 방언(方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모시라는 이름이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마포는 고려시대에 베라고 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일반적으로 베 또는 삼베라고 한다. 우리나라 베의 종류와 성능에 대해서는 이능화(李能和, 1869∼1943)가 『조선 여속고(朝鮮女俗考)』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평가가 참고된다.

조선에서 나는 베 중에 함경도 육진(六鎭)의 것이 가장 좋으니 북포(北布)라고 한다. 가장 가는 것은 한 필을 바리(鉢) 안에 넣을 수 있다. 그러므 로 속칭 발내포(鉢內布)라고도 한다. 경상도 각 곳에서도 베가 나니, 이름을 영포(嶺布)라고 한다. 안동에서 나는 것을 안동포라고 하니, 여름옷에 알맞은 감이다. 강원도에서 나는 것은 강포(江布) 또는 상포(常布)라고도 하여 바닥이 거칠고 값도 헐하여 상복(喪服)에 많이 쓰인다.152)이능화(李能和), 김상억 옮김, 『조선 여속고(朝鮮女俗考)』, 대양서적, 1978, 272쪽.

특히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대마의 인피(靭皮)는 품질이 좋아서 아주 섬세하게 쪼개지므로 극히 가는 실을 만들 수 있고, 그 위에 여인들의 섬세한 공력이 더해져 중국, 일본, 인도 등지보다 더 섬세한 마포를 제직할 수 있었다. 포는 정세(精細)한 정도를 가지고 품질을 따지는데, 정세도(精細度)는 포폭(布幅) 사이에 정경(整經)된 날실의 수로 가늠한다. 곧, 한 포폭 사이에 80올의 날실이 정경되었을 때를 1승(升)이라고 하며 승수(升數)가 커질수록 섬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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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도(耕織圖)
경직도(耕織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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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는 여름철 일상 옷감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직물이었다. 남자의 고의적삼이나 조끼감이 되었고, 여름철 욧잇·홑이불·베갯잇으로 썼으며, 옷을 마름질하고 남은 조각으로는 조각보를 만들었다. 베는 일상생활에서 옷감 외에 화폐로도 쓰였고, 고운 것은 교역품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의(壽衣)와 상복(喪服)도 만들었기 때문에 소비량이 상당히 많았다. 이렇게 보면 우리 민족에게 베는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에게 매우 요긴한 옷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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