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3장 우리 옷감과 염료의 멋과 아름다움
  • 3. 염료의 멋과 아름다움
  • 오방색의 사상과 전통
김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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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명절이 되면 아이들에게 색동저고리를 입혔다. 색동저고리에서 ‘색동’의 ‘색’은 색깔을 나타내며, ‘동’은 저고리 소매에 이어 대는 동강의 조각을 의미한다. 즉, 색동이란 오색 천 조각을 잇대어 만든 저고리 소맷감을 가리키는 말이고, 색동저고리란 이런 색동을 사용하여 소매를 만든 저고리를 뜻한다. 색동에 주로 쓴 색은 적ㆍ청ㆍ황ㆍ백의 네 가지 정색(正色)이었으며,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 간색(間色)이 추가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였다. 색동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무당의 옷이기도 한데, 오방색(五方色)의 상징성을 활용하여 무당의 주술 능력을 가시화하는 기능을 하였다. 돌이나 명절에 오색 천을 이어서 만든 색동저고리를 어린아이에게 입히는 것은 오행을 갖추어 나쁜 기운을 막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뜻이었다. 이는 잔칫상에 오르는 국수가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하는 음식이며, 국수 위에 올리는 오색 고명도 오행에 순응하는 복을 비는 의미를 갖는 것과 뜻이 통한다.

동양에서 의복ㆍ건축ㆍ종교ㆍ제사 등 모든 분야의 색채 문화는 오방 색, 즉 적ㆍ청ㆍ백ㆍ흑ㆍ황색과 태일(太一) 사상에 의하여 대두된 자색(紫色)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 사상에 의해 도입된 색은 실제 그 색이 가지는 미적 가치보다는 상징성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고, 일컫는 색의 이름은 실제의 색이라기보다는 오행인 불(火)ㆍ나무(木)ㆍ쇠(金)ㆍ물(水)ㆍ흙(土) 등 자연물에 입각하여 형성된 관념적인 색이었다. 또한 처음에 오행에서 형성된 관념색은 시대가 바뀌면서 오행 이외의 다른 상징적 의미가 더해지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색은 분화되어 갔고, 종류도 풍부해졌다.

우리나라의 전통 복색도 음양 오행 사상에서 나온 오방색에 바탕을 두고 있는 까닭에 청ㆍ황ㆍ홍ㆍ백ㆍ흑색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이 다섯 가지 색상은 적ㆍ황ㆍ청 기본 삼원색과 흑ㆍ백의 무채색으로 모든 색의 근본을 이루는 색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색동저고리의 색동은 오방색에 근거한 우리 민족의 전통색인데, 오방색에 사용한 색의 종류는 노란색 계통인 황색ㆍ은행나무색ㆍ치자색ㆍ송화색, 붉은색 계통인 자적색ㆍ다홍색ㆍ비색ㆍ분홍색, 푸른색 계통인 남색ㆍ벽색ㆍ아청색ㆍ청현색ㆍ청담색ㆍ유록색ㆍ연두색, 검은색 계통인 흑색ㆍ내현색을 들 수 있다.

우선 오방색 중 적색은 방위로는 남쪽을 의미하고, 만물이 무성하여 양생(養生)의 기가 왕성한 곳이며, 계절로는 여름, 오행으로는 불을 의미한다. 적색이 갖는 일반 감정은 불ㆍ태양ㆍ정열ㆍ사랑ㆍ피ㆍ혁명 등이고, 나아가 정복ㆍ폭력ㆍ저주 그리고 악귀와 병마에 대한 신의 원력과 같은 주술적 의미도 있다. 이 중 불이나 태양의 의미는 국운(國運)으로 상징화되어 적색은 왕의 복색으로 사용되었고, 정열과 사랑이라는 의미는 부부애로 발전하여 다산을 위한 여자들의 치마 색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강렬한 적색은 오히려 무사들의 혈기를 왕성하게 해주어 무사 복장의 색으로 애용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적색 계통은 짙을수록 좋았다. 특히 왕의 의복에 쓰는 것은 강청색(鋼靑色)이나 대홍색(帶紅色)이었다.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녹의홍상(綠衣紅裳)이나 황의홍상(黃衣紅裳)을 많이 입었다. 아울러 경제적인 측면에서 홍색은 매우 고가품이었는데, 조선시대에 짙은 홍색 옷 한 벌을 염색하는 데 필요한 홍람(紅藍)을 심는 데는 네 식구가 한 달 동안 먹을 곡식이 나는 밭이 소용되었고, 대홍색으로 물들인 직물은 값이 백색포의 네 배 이상이었으므로, 일반인은 감히 짙은 홍색을 사용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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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금모행의 별감
야금모행의 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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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청색은 방위로는 동쪽, 계절로는 봄, 오행으로는 나무를 의미한다. 청색은 쪽색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청색이 대부분 쪽으로 염색되기 때문이다. 청색이 주는 상징적 의미는 다양한 편인데, 정경부인(貞敬夫人)의 옥색 저고리 남색 치마는 모두 청색 계통으로 불로상청(不老常靑)의 의미가 있고, 저고리의 소맷부리에 단 남색 끝동은 아들을 낳은 여인의 자랑이기도 하였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중국의 동쪽에 위치한 까닭에 예로부터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색이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에 보면, 삼한시대의 변한 지역에서 청색 옷을 빈번하게 착용하여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오방 사상에 입각하여 청색 옷 착용에 대한 강한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아울러 일찍부터 청색을 숭상하고 일반인의 사용을 금지할 만큼 청색은 지배 계층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1275년(충렬왕 1)에 “대사국(大司局)에서 제기하기를 ‘우리 동방은 목위(木位)에 해당하므로 푸른 색깔을 숭상하여야 하며 흰 것은 금빛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융복(戎服, 군복)을 입게 된 때로부터 흔히 흰 모시옷(白紵衣)을 입으니 이는 나무가 쇠에 눌리는 상징입니다. 청컨대 흰옷 입는 것을 금지하십시오.’라고 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는 기록으로 보아 색깔에 대한 고유한 정서와 금기 조항이 어느 정도 심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159)『고려사』 권85, 지39, 형법2, 금령.

한편, 백색은 방위로는 서쪽, 계절로는 가을이며, 오행으로는 쇠를 의 미한다. 우리 민족의 기질과 풍토 환경에 순응하는 색상으로 우리 조상들이 일찍부터 선호해 온 색이다. 오방색을 비롯한 유채색(有彩色)이 상류층에서 즐겨 사용한 색이었다면 백색은 일반 서민이 많이 쓴 색이었다. 흰 모시 치마저고리의 청초하고 단아한 모습과 하얀 도포 자락이 나부끼는 모습, 그리고 서민용 평상복에서 백의가 가지는 순수하고 여유로운 느낌은 한복의 복식미를 대표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백색은 크게 천연 소재 그대로의 색인 소색(素色)과 잿물에 삶아 표백시킨 백색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질박하고 소박한 느낌의 소색은 일반 용도의 의복이나 상복의 색으로 흔히 사용되었고, 표백한 흰색의 청량감은 양반의 의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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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광정연회도(練光亭宴會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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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백의를 숭상해 온 이유에 대해서는 유교 사상에 입각한 상복습속설(喪服習俗說), 염료 및 염색 기술 부족설, 태양 숭배 사상 기인설, 우주 공간 표현설, 계급 의식과 복식 금제에 의한 설, 민족성 연관설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우리 민족의 백의 선호 풍속은 종교적인 영향과 민족성, 그리고 염료의 부족과 염색 기술의 미비 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 은 백의 선호는 고대 문화의 근원인 알타이 민족의 습속과 무관하지 않은데, 이는 단군 신화를 비롯한 건국 신화에서 흰빛(고주몽), 흰말(박혁거세), 흰닭(김알지), 흰까치(석탈해) 등의 영웅 탄생 설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웅의 탄생과 흰빛은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상징하며, 태양 숭배 신앙을 기본으로 하면서 천손(天孫) 신앙, 강림(降臨) 신앙, 수목(樹木) 신앙이 다양하게 결합된 결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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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어진
고종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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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황색은 방위로는 중앙, 계절로는 늦여름, 오행으로는 흙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이후 황제의 옷을 황포(黃袍)라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고려 말 이후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왕까지도 황색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는 복식에 있어서 중국의 관리 체제에 대해 우리나라의 관리 체제를 2등급 낮게 책정한다는 ‘이등 체강의 원칙’을 고수하였기 때문으로 중국에 대한 지나친 사대 사상의 발로였다. 따라서 조선의 국왕은 홍색포를 착용하였는데, 대한제국 선포 후에 비로소 황색포를 착용하게 되었다. 다만 여자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황색을 쓸 수 있었는데, 대비나 왕비의 옷으로 황의가 있었고, 조정의 내ㆍ외명부를 비롯하여 사대부의 정경부인들은 황색이라는 이름 대신에 송화색ㆍ두루색ㆍ치자색 등으로 명명하면서 어린 여자 아이나 젊은 여자의 저고리에 많이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흑색은 방위로는 북쪽, 계절로는 겨울, 오행으로는 물을 의미한다. 고대 사회에서 크게 선호된 색은 아니었지만, 중세 이후 점차 귀한 색으로 부상되었다. 복색에서 흑색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승려의 복색이 중심이 되는 묵색계(墨色系) 또는 짙은 회색계이고, 다른 하나는 자색이나 청색이 짙어져서 흑색화된 것이다. 전자는 먹이나 진흙으로 염색하든지 도토리 열매로 염색하여 철 매염(媒染)을 한 것인데, 대표적인 색이 묵색ㆍ조색(皁色)ㆍ회색 등이다. 조색은 고려시대 전기부터 관리의 복색으로 사용하였는데, 대체로 하급 관리에게 해당되었다. 이것은 ‘조(皁)’라는 글자 속에 검은빛, 하인, 천한 사람, 도토리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조삼(皁衫)이나 조의(皁衣)는 상류층의 옷이라기보다는 하인이나 천인의 옷이었다. 일반적으로 조색이 왕의 복색으로 사용된 예는 없으며, 혹 상층 관리에게 사용되었을 때에는 자신을 겸허하게 낮추고자 하는 마음 자세가 표현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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