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4장 만병통치약, 인삼
  • 1. 인간과 죽음, 그리고 질병과 약
  • 인간의 질병과 약
정성일

병들지 않고 오래 살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려 한 진나라 시황제(始皇帝)의 일화에서 보듯이 권력이 있고 부유하다고 해도 죽지 않을 수는 없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하지 않았던가. 아니 죽어야 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만일 모든 생명체에 죽음이 없었더라면 과연 지구가 버텨 낼 수 있었을까?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반복되었기에 인간 세계는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병들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을 구해 준 명약(名藥)에 관한 설화 두 편을 살펴보자.

최 모씨가 중병에 걸려 좋다는 약은 이것저것 써 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백약(百藥)이 무효라! 이제는 황천길 가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그의 처가 매일같이 바위 밑에서 신선에게 남편의 병이 완치되게 해달라고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꿈속에서 수염이 하얀 신선이 선녀와 함께 나타나 약초 하나를 꺼내서 보여 주었다. 빨간 열매가 달려 있고 뿌리는 사람 모양과 흡사한 약초를 가리키면서 “모후산(母后山) 동북쪽 산기슭에 이와 같은 영약(靈藥)이 있으니, 남편의 병을 치료하도록 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 소리가 마치 생시와도 같이 선명하고 또렷하게 귓가에 들려왔다. 너무나도 신기하고 감사하여 그것을 받으려는 순간, 신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참으로 허망한 꿈이었다. 그러나 그 부인은 희망을 가지고 초조한 마음으로 날이 밝기를 기다려 동북쪽 산기슭을 헤매던 중, 신기하게도 꿈에서 본 약초를 발견하였다. 조심스럽게 뿌리를 캐고 종자를 잘 간직하여 집으로 돌아온 부인이 뿌리를 정성껏 달여 남편에게 먹이자 신기하게도 병이 완치되었다. 그 뒤 종 자를 땅에 심고 재배하여 이를 점차 확장한 결과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189)今村鞆, 『人蔘史』 6·人蔘雜記篇, 朝鮮總督府 專賣局, 1939, 76쪽.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성이 지극한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살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이 들어 자리에 눕자 세상에 좋다는 모든 약을 구해서 어머니께 드렸으나 효과는 없고 병은 날로 악화되었다. 그러자 그는 진악산 관음굴에서 모친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올렸다. 그러던 중 산신령이 꿈에 나타나 “관음굴 아래 암벽에 가면 빨간 열매 세 개가 달린 풀이 있을 터이니 그것을 어머니에게 달여 드리면 병이 곧 나을 것이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 계시를 받고 그곳에 가니 정말로 그 풀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집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그 풀을 정성스레 달여서 드시게 하니 거짓말처럼 어머니의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그 뒤 강씨 총각은 그 풀의 씨앗을 받아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것을 밭에다 재배하니 몇 년 동안 그 풀이 자라면서 뿌리가 굵어지는데 그것으로 모든 병을 고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풀뿌리의 모양이 사람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인삼(人蔘)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190)今村鞆, 『人蔘史』 6, 47∼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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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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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설화의 무대는 전남 화순군 동복면 유천리이다. 고려시대부터 구전으로 전해져 온 이 설화에서 열매는 빨갛고 뿌리는 사람 모양과 흡사한 약초가 죽어 가던 사람의 목숨을 구한 영약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삼 재배 사례로도 유명하다. 두 번째 설화는 약 1500년 전 지금의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가 무대이다. 여기에서도 빨 간 열매가 달린 뿌리 식물이 죽어 가는 사람을 구한 신비의 약으로 묘사되어 있다. 두 설화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삼은 산신령이 내린 선물, 즉 증여(贈與)이다. 그 증여의 덕택으로 남편과 어머니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냈다. 그런데 신비의 영약을 구하기 이전에 처나 아들의 지극한 정성이 있었다. 이것이 사실은 첫 번째 증여인 셈이다. 그리고 처나 아들 모두 선물로 받은 인삼을 동네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또 다른 증여가 이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남편이나 부모에 대한 정성→산신령이 내린 인삼 종자→동네 사람들에게 인삼 전파라고 하는 이야기의 전개가 두 설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즉, 효행이라고 하는 덕목과 함께 신비의 영약에 대한 욕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이 두 가지 문제를 인삼이 말끔하게 처리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이야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병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하여 몸을 팔면서까지 조선의 인삼을 구하려 한 소녀의 이야기가 일본의 에도(江戶) 시대부터 실제 민담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191)다시로 가즈이, 정성일 옮김, 『왜관』, 논형, 2005. 이처럼 근대 이전까지 인삼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만병통치약’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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