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4장 만병통치약, 인삼
  • 2. 만병통치약, 파낙스 진셍과 인삼
  • 인삼은 과연 불로장생의 영약인가
정성일

앞에서 소개한 두 설화의 내용을 현대 의학에서는 어떻게 평가할까? 병들어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을 극적으로 살려 낸 약초 뿌리, 즉 인삼을 의학적 관점에서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일 뿐 인삼의 성분이나 효능에 대해서는 별개의 문제로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인삼을 신비의 영약으로 생각하고 귀중하게 취급해 왔다는 문화적 전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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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포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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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동양에서는 불로불사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인삼이다. 인삼을 한약의 왕이라 일컫는 사람도 있다.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는 인삼의 약성에 대한 기술이 있다. “오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정신을 편안하게 하며, 혼백을 안정시켜 주고, 깜짝깜짝 놀라는 경기를 막아 주며, 나쁜 기운을 제거해 주고, 눈을 밝게 하며, 마음을 열어 주고, 머리를 좋게 하며, 오래 복용하면 몸을 가뿐하게 해주고, 수명을 연장시킨다.”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장기간 인삼을 복용하면 수명을 늘일 수 있다는 점이 과연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을 식민지화한 이후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 인 중에는 근대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사람이 많았으며, 그 가운데는 서양의 학문을 익힌 이른바 근대 지식인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가운데 조선의 인삼에 주목한 몇몇 사람은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동원하여 인삼의 의학적 효능을 밝히는 데 주력하였다.

인삼은 과연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영약인가? 이 물음에 답을 제시하기 위하여 실험이 이루어진 바 있다. 인삼의 성분 중에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약성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스기하라(杉原德行)의 연구실에서는 실험용 흰쥐를 대상으로 인삼을 먹인 쪽과 먹이지 않은 쪽의 연명 일수(延命日數)를 비교하였는데, 매우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나왔다. 한쪽 흰쥐에게는 좁쌀, 물과 함께 인삼을 4주 동안 먹인 다음 굶겨서 그 쥐가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관찰하는 간단한 실험이었다. 즉, 인삼을 먹여 기른 쥐와 그렇지 않은 쥐를 두 부류로 나누고, 각각의 쥐를 굶긴 다음 쥐가 먹지 않고 며칠을 버티는가를 비교 측정하는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인삼을 먹인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평균 이틀 정도 더 연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인삼을 먹인 흰쥐는 최장 13일, 최단 10일을 연명한 반면, 그렇지 않은 쥐는 최장 11일, 최단 7일을 연명하는 데 그쳤다. 이 실험을 통해 인삼을 오래 복용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1920년대 말 경성 제국 대학 교수를 지낸 일본인 의학 박사의 주장이었다.199)杉原德行, 앞의 책, 7쪽.

물론 현대 의학으로 보면 1920년대의 실험 방식이 갖는 허점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오랫동안 입으로 전해져 오던 인삼의 약성을 근대 의학의 지식을 동원하여 객관적 실험을 통해 밝히려 했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근대 의학의 최고봉에 있던 일본인 의학자가 실험 결과 드러난 사실을 통해 생명을 연장시킨다는 인삼의 효능에 신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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