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4장 만병통치약, 인삼
  • 3. 해외로 뻗어 나간 인삼의 길
  • 우리나라 인삼의 수출 실태
  • 인삼의 최대 소비 시장은 중국
정성일

우리나라 인삼이 해외 시장으로 나간 수량을 정확하게 산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최대의 인삼 소비 시장은 중국이었다는 점이다. 다음 자료에서는 14세기 중국으로 건너가 인삼을 팔고 있는 고려 상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226)정광 역주·해제, 『역주 노걸대』, 김영사, 2004, 379∼384쪽.

(여관 주인이 몇 사람의 중국 상인을 데리고 와서 인삼 값을 매긴다.)

중국 상인: 이 인삼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삼을 가져오시오. 내가 한번 보리다.

고려 상인: 이 인삼은 신라삼227)여기에서 말하는 신라 인삼(또는 신라삼)은 소개하는 자료가 고려 말기에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신라시대에 생산된 인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신라삼이라는 명칭이 쓰이고 있지만 이 인삼은 고려 인삼, 즉 우리나라 인삼을 가리킨다. 본디 신라삼이라는 용어는 당나라 때 붙여진 이름이지만, 신라 멸망 이후에도 계속 사용된다. 백제삼·고려삼(고구려 인삼)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문헌에 따라서는 나삼(羅蔘)이라는 용어가 근대까지도 보이는데, 이것은 경상·전라 지역에서 산출된 인삼을 가리킨다. 이마무라는 이 지역이 신라의 중심 지역이어서 신라삼의 약칭으로 나삼이라는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였다(今村鞆, 『人蔘史』 7, 285∼288쪽_.이외다.

중국 상인: 그저 그런 정도인데.

고려 상인: 당신 무슨 말씀을 하시오? 이 인삼은 제일 좋은 것이오. 뭐가 그저 그렇다고 하시는 거요.

(중개인이 말한다.)

중개인: 당신들 두 분이 좋고 나쁨을 놓고 말다툼할 필요가 없소. 지금 시가는 한 근에 25냥이니 흥정할 여지도 없소이다.

중국 상인: 당신의 이 인삼들은 무게가 얼마이오?

고려 상인: 내 이 인삼은 모두 110근입니다. 당신이 달아보면 어떻겠소?

중국 상인: 내 저울에는 관아의 공인(公印)이 제대로 찍혀 있소이다. 누가 엉터리 저울을 쓴단 말이오?

고려 상인: 값은 이미 정해졌으나 나는 상등(上等)으로 쓸 수 있는 새 지폐로 받고 싶소. 현금으로 내야지 외상은 안 됩니다.

중국 상인: 무슨 말씀을 하시오? 보초(寶劓, 원나라 지폐)는 좋은 지폐를 주 겠지만, 상품을 사는데 바로 지불하는 법이 어디 있소? 며칠은 기다리시오.

중개인: 둘 다 말다툼은 그만두시오. 열흘 이내에 돈을 주면 되지요.

고려 상인: 그렇다면 중개인 말대로 합시다.

중개인: 이 인삼을 달아보니 딱 100근이외다. 당신이 110근이라고 하였는데, 나머지 10근은 어디에 있습니까?

고려 상인: 내가 달았을 때에는 110근이었소. 당신의 저울은 크니까 그래서 10근이 줄었나 봅니다.

중국 상인: 이 저울이 크다고? 저 인삼은 당신이 달았을 때에는 물기가 있었던 것이고, 지금은 말라서 10근이 준 것이오.

중개인: 이 인삼을 다섯으로 나누어서 한 사람당 20근씩 가집시다. 한 근이 25냥이니까 20근이면 500냥이 되고 보초로 10정(定)이니 모두 합해서 50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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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걸대신석(老乞大新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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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상인은 110근의 인삼을 중국으로 가져가 팔고 있는데 꽤 많은 수량임이 틀림없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에 가서 무게를 달아보니 10근이 줄어든 100근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중국 상인이 가지고 온 저울을 의심하는 고려 상인을 향해 중국 상인은 수분이 증발하여 무게가 덜 나가게 된 것이라며 일축해 버린다. 중개인을 사이에 두고 값을 흥정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고려 상인과 중국 상인 사이에 가격 교섭이 매끄럽지 못하자 중개인이 나서서 시가를 들먹이며 값을 제시한다. 인삼 대금을 즉시 갚지 않고 열흘 뒤에 변제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미리 인삼 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현물을 먼저 가져가고 대금을 나중에 지불하는 중국 상인의 상술이 놀랍다. 고려 상인은 그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는 듯하였으나, 인삼 대금을 헌 돈이 아닌 새 돈으로 받기를 원하고 있다. 위조지폐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이 엿보인다. 이렇듯 고려시대에 이미 인삼은 국제 상품의 지위를 확보하여 인삼의 최대 소비 시장인 중국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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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인삼 시장
개성 인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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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28년 12월 말 현재 우리나라 인삼의 해외 수출 현황 통계를 보더라도 중국이 인삼 최대의 소비 시장이었다. 당시 인삼 수출액이 해마다 300만 원 정도였다는 사실은 인삼 수출의 호조를 말해 주는 것이다. 인삼의 수출 총량과 금액을 국가별로 비교해 보면 중국으로 수출한 인삼이 약 6만 근에 대금이 200만 원이 넘어 단연 으뜸이다. 수량 기준으로는 전체의 57%, 금액으로는 전체의 73%를 중국 수출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다음이 일본인데 수량으로는 4만 근, 금액으로는 37만 원 정도였다. 이 두 국가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 수출된 인삼의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특히 유럽 지역 수출은 극히 미미하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고려 인삼에 대한 유럽인의 관심이 매우 저조하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미국에는 120근이 수출되어 5,000원가량의 수출고를 달성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인삼이 자체 생산되고 있었는데도 수출된 것을 보면, 우리나라 인삼이 미국삼보다 품질이 우수하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표> 우리나라 인삼의 해외 수출 실태
1928년 12월 말 현재 조사
국별 수량(근)
A
금액(円)
B
단가(円)*
B/A
일본 39,251 374,260 9.54
중국 59,817 2,017,019 33.72
홍콩 227 13,278 58.50
교지(交趾, 베트남) 472 33,488 70.95
섬라(暹羅, 타이) 947 61,909 65.37
면전(緬甸, 미얀마) 260 17,920 68.92
해협 식민지 2,777 173,003 62.30
필리핀 277 21,735 78.47
네덜란드령 동인도 1,051 61,435 58.45
포와(布哇, 하와이) 94 1,272 13.53
미국 120 4,942 41.18
캐나다 7 97 13.86
멕시코 5 47 9.4
독일 3 30 10
러시아 1 5 5
105,306** 2,780,410*** 26.40
✽杉原德行, 『朝鮮人蔘禮讚』, 朝鮮總督府 專賣局, 1929, 54쪽.
✽ 한 근당 평균 가격은 필자가 계산한 참고 수치임.
✽✽ 필자 계산으로는 105,309근임.
✽✽✽ 필자 계산으로는 2,780,440원임.

인삼의 수출 단가를 살펴보기 위하여 한 근당 인삼 가격을 계산해 보았다. 이것은 수출 금액을 수출량으로 나눈 단순 평균값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것만으로는 수출 인삼의 품질이나 가격을 판정하기 쉽지 않다. 다만 참고 수치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수량을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중국이나 일본 시장에 수출된 인삼의 비중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월등히 높았는데, 수출된 인삼의 평균 단가는 오히려 낮은 편이었다. 평균 수출 단가가 가장 높은 것이 필리핀으로 수출된 인삼(277근, 21,735원)으로 78.47원이었다. 일본(9.54원)과 중국(33.72원)에 수출된 인삼의 평균 단가와 최고치를 기록한 필리핀의 경우(78.47원)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홍콩(58.50원)과 미국(41.18원)에 수출된 인삼의 평균 단가보다도 중국·일본의 경우가 더 낮았다. 따라서 일본이나 중국에는 값이 비싼 고가 인삼보다는 중저가의 인삼이 다량으로 수출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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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말에 이르면 고려 인삼이 중국·일본·홍콩 등 아시아 시장은 물론 미국과 캐나다 등 미주 지역과 독일·러시아 등 유럽 지역으로까지 수출 범위를 넓혀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이전 특히 조선시대에는 중국과 일본에 한정되어 수출하던 인삼이 국제 상품으로서 전 세계 시장으로 힘차게 뻗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의학이 발달해 온 아시아 지역에서는 인삼이 귀중한 약재의 하나로 취급되어 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에서 인삼이 널리 활용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화, 즉 서양화에 뒤진 중국이라는 이미지와 인삼의 약효가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는 측면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서양의 근대 의학이 발달한 미주 지역이나 아시아에서 근대화에 가장 앞선 일본에서는 인삼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아직도 많은 사람의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러했을까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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