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4장 만병통치약, 인삼
  • 3. 해외로 뻗어 나간 인삼의 길
  • 조선의 인삼과 일본의 은
  • 인삼 결제용 은화의 특별 주조
정성일

일본 정부의 정책을 바꾸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과의 무역에 운명을 걸고 있던 대마도 역시 쉽게 물러설 수도 없었다. 그래서 대마도에서는 사람을 보내 일본 정부의 관리를 상대로 집요한 로비와 설득을 벌였다. 정부의 담당자 집으로 매일같이 찾아가 대마도의 처지를 호소하였다. 그것만으로는 안 될 일임을 간파한 대마도는 그때마다 조선에서 가져간 진품, 그 중에서도 최고급 인삼을 지참하고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뇌물을 주고자 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최근 여러 해 동안 대마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 양질의 인삼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으며, 게다가 가격도 크게 올라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도의 인삼 판매소에서도 가격 상승이 심하여 서민들이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인삼은 사람 목숨을 구제하는 매우 중요한 약종(藥種)입니다. 은은 그 귀중한 인삼을 조선에서 사 오기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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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대왕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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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대마도가 일본 정부에 대하여 내세운 주장이었다. 요컨대 대마도에서 은을 조선에 수출하는 것은 사람 목숨과 관련된 인삼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니, 의약 행정 측면에서 보더라도 특별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대마도의 논리였다. 실제로 그 무렵 에도에서는 인삼 열풍이 불고 있었다. 대마도 직영 인삼 판매소에는 인삼을 사려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매일같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1700년에 인삼 한 근이 은으로 쳐서 680문(금으로 11냥 정도) 하던 것이 840문, 1,080문 등으로 오르고 있었다. 1707년에는 1,440문(금으로 24냥)까지 치솟았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아무리 높은 값을 주더라도 인삼을 구입하려 하였으나 구입 자체가 쉽지 않았다.

결국 1710년 9월 일본 정부는 대마도의 요구를 수용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특수한 무역 은화를 가리켜 일본에서는 ‘인삼대왕고은(人參代往古銀)’이라고 부른다. 옛날(往古)의 경장은과 똑같은 순도의 은이라는 것과, 주조 목적이 일본의 조선 인삼 수입 촉진에 있었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하는 명칭이다. 그런데 인삼의 수입 대금으로 지불할 이 은화는 극히 일부의 일본 정부 각료와 은좌의 담당자만 알고 있었을 뿐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오로지 조선과의 무역용으로 대마도에만 전달되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은 조선에서 인삼을 수입해 가기 위하여 일본 국내에서 통용되고 있던 화폐보다도 순도가 더 높은 양질의 은화를 만들어서 무역 시장에 유통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의 귀중한 약재인 인삼과 일본의 질 좋은 은화가 18세기 중반까지도 동아시아 국제 무역 시장을 주도해 가고 있었다. 일본이 조선에서 수입해 가는 인삼이 많아질수록 그 대가로 지불되는 일본 은화의 조선 유입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의 위정자들이 인삼의 수입 대금으로 빠져나가는 일본 은화의 대량 유출을 염려할 정도로 조선 인삼에 대한 일본인의 수요는 많았다. 일본 정부의 정책 당국자들이 인삼의 국산화, 즉 수입 대체 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18세기 초반 일본의 사회와 경제에서 수입 인삼의 문제는 심각하였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일본인의 인삼에 대한 관심은 쉽게 시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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