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6장 동아시아의 명품, 우리 모피와 말
  • 1. 모피의 종류와 변천
  • 모피의 사용 시기와 방법
윤재운

모피(毛皮)는 인류가 옷을 만든 최초의 재료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동물의 다듬지 않은 모피로 처음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동양과 서양의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사랑을 받아 왔다. 아울러 모피 패션은 그 모드(mode)에 있어 풍요로움이나 우아함을 돋보이게 하며 착용자의 신분을 구별짓게 한다. 모피의 장점으로는 보온력, 내구성, 광택과 부드러운 감촉, 다양한 색상 등을 들 수가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모피를 ‘입는 보석’이라고도 하며, 현재도 명품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다음으로 말은 선사시대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승마용, 전투용, 수출품, 식용 등 다양한 용도로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신분제 사회였던 전통 사회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가축은 바로 말이었다. 가축 중에는 양과 같이 일부 특정 계층에게만 상징적 의미를 주는 동물이 있었다. 그러나 말은 일상생활에서 여러 모로 기능하면서도, 사회의 의식과 제도를 그대로 반영한 가축이었다. 아울러 전통 시대 최고의 교통수단이었다. 말은 당시 생활에 있어 사회를 장악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더 빠른 말, 더 많은 말은 소유주 의 능력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로 작용하였다. 또한 말은 전통 시대 전투에 있어 승리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으며, 재산 가치로도 계산되었다. 이렇게 인간은 말을 사용하면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였고, 여러 가지 상징을 낳게 되었다. 사람들이 네발 달린 포유류 가운데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동물은 말뿐이었다. 말은 인간의 생활 속에서 신성성이나 특정 사건의 조짐 등을 상징하기도 하였고, 모피와 마찬가지로 명품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았다.

이 장에서는 우리나라 역사 안에서 모피와 말이 지닌 의미와 교류의 실상, 나아가 우리 문화에 끼친 영향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모피의 사전적인 정의는 털(毛)이 붙은 채로 벗긴 짐승의 가죽(皮)이다. 원래 포유동물의 피부를 벗긴 그대로의 원료를 가리키나, 일반적으로는 털이 붙어 있는 채로 무두질하여 의복 등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말한다.

피복에 관한 문화가 발달하여 모피를 옷의 재료로 쓰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000년경 중국에서부터이다. 그로부터 약 200년 뒤에 모피가 유럽으로 건너갔는데, 그때도 모피는 인도에서 중동으로 들어가 점차 전 유럽으로 퍼졌다. 18세기에 중국은 모피 사용 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었고, 모피의 감식도 뛰어났다. 그러나 18세기 이후에는 모피가 유럽 전역에 보급되고 가공 기술도 발달하였으며, 미국이 흥성하면서부터는 그곳에서 산출되는 모피가 유럽에 대량 수출되어 서양 각국이 세계 모피 유행의 중심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이 모피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여 왔다. 그 가치는 선사시대부터 인정되어 왔으며, 모피로 만든 의류는 착용자의 부(富)를 상징하였다. 모피를 쟁취하기 위한 모험과 투쟁으로 민족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황금과 향료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대항해 시대(大航海時代)에 남미를 정복한 스페인은 여기에서 발견한 친칠라(chinchilla:칠 레 남부, 볼리비아 북쪽 안데스 산맥의 산악 지대에 사는 다람쥣과의 동물로 털실쥐라고도 함) 모피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또한 북미로 진출한 영국과 프랑스 사람들은 북서로의 항해에서 신대륙을 발견하였고, 이곳에서 해리(海狸, beaver)를 비롯한 각종 야생 모피를 손에 넣게 되었다. 이 당시의 모피 교역자들은 하천이나 호수를 따라 카누를 타고 다니면서 원주민들과 모피를 교역하였다.

3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허드슨 베이(Hudson’s Bay) 회사는 지금도 현지인들로부터 원피(原皮)를 수집하여 런던, 몬트리올, 뉴욕 등의 시장에서 경매를 붙인다. 러시아인들은 모피를 ‘부드러운 황금’이라고 부르면서 담비를 쫓아 시베리아로 동진(東進)해 갔으며, 부동항(不凍港)을 찾기 위해 남하하다가 베링 해협에서 해달 무리를 발견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물개 사냥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와 같은 각국의 수렵 경쟁은 야생 모피 수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귀중한 천연 모피 자원의 생태 균형을 잃지 않도록 관리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미국, 일본, 캐나다, 러시아는 야생 모피 동물 보호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근년에 와서 점차 자원이 회복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로 인해 모피 동물은 그들의 특수한 굴레를 벗어나게 되었지만, 남획과 자연환경의 파괴로 멸종에 가까운 종도 있다.

포획을 하지 않으면서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양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미국인들은 여우와 밍크의 양식 사업을 일으켰다. 특히 밍크는 자연산 밍크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우위성을 전부 만족시킬 수 있는 돌연변이 밍크를 탄생시켰다. 아울러 카라쿨(Karakul), 즉 양모피(羊毛皮)가 그것을 보완해서 패션에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최근 사람들의 관심이 급속히 높아지면서 모피는 다시 각광을 받게 되었다. 모피의 역사는 또 다른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다.

모피는 역사적 경과와 현대의 일반적 경향으로 보았을 때 크게 두 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 모피를 방한용(防寒用)으로만 쓰는 실용 모피와 장식용 으로만 쓰는 장식 모피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은 상대적으로 비교한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방한은 고려하지 않은 채 액세서리로만 쓰는 모피 귀고리, 브로치 같은 것은 장식 모피의 극단적인 예이다. 인도와 같은 더운 지방에서는 값비싼 모피 목도리 등을 단순히 장식으로 착용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장식과 방한을 겸해서 사용한다.

혹한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북극 지방 사람에게 모피보다 더 좋은 방한 재료는 없다. 주로 방한 효과가 크고 내구성이 좋은 개의 모피를 많이 사용하는데, 여기에도 원주민에게 잘 어울리는 독자적인 장식이 가미된다. 서양인에게 인기를 끄는 섬세한 고급 모피는 방한이 우선인 원주민에게는 가치가 적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애용하는 모피는 고급인 것이 많고, 값이 비싸고 양도 많아서 경제적 표준을 이루고, 유행에 큰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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