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6장 동아시아의 명품, 우리 모피와 말
  • 4. 말의 기원과 변천
  • 인류는 언제부터 말을 탔을까
윤재운

말은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으로 보아 약 5800만 년 전의 에오히푸스(Eohippus)에서 차츰 진화된 것이라고 한다. 에오히푸스는 북미 대륙에 살았으며 키가 30∼50㎝ 정도이고 발가락은 네 개인 조그만 동물에 불과하였다. 이것이 진화하면서 제3기에 베링 해협을 건너와 발가락이 세 개인 말로 구대륙에 퍼지기 시작하였으며, 현생종인 에쿠스(Equus)는 홍적세에 지구상에 출현하였다. 이 말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상원 검은모루 동굴 출토품으로 보아 제4기 홍적세인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에서는 제3기 지층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좀 더 이른 시기일 수도 있다.

말이 아시아 대륙에 정착한 후 진화를 거듭하면서 재래종 말이 되었고 인류는 이 재래종 말을 자신들의 용도에 맞도록 개량하여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약 180여 종이 있게 되었다. 현재의 말은 크기에 따라 포니, 온혈종 말, 냉혈종 말로 나눌 수 있다. 포니는 체고(體高) 150㎝ 이하의 작은 것이고, 온혈종은 온난한 곳에서 자란 날씬한 말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냉혈종은 추운 곳에서 자라 몸이 비대하고 털이 많은 것으로 주로 화물 수송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말은 구석기시대부터 인간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은 동물 중의 하나이다. 인류가 말을 이용한 목적은 처음에는 식용(食用)으로, 다음에는 사냥의 수단으로, 그 다음에는 말의 기민함을 이용한 전쟁의 수단으로 변해 왔으며, 교통과 운수의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 말기가 되면서 인간은 말을 사육하게 되었다. 말은 양, 돼지, 소 등에 비해서 가축화가 힘들었던지 이들보다는 3000∼4000년이 늦은 기원전 4000∼5000년경에야 사육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흑해와 카프카스 산맥 북부 우크라이나 지방의 데레이브카 촌락에서 발굴된 말 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말 뼈들은 대부분 식용으로 생각되나, 제사와 관련된 유적에서 나온 말의 이빨에서는 말을 제어하는 데 쓰는 재갈의 흔적이 발견되어 말이 승마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알려 준다.

기원전 3500년경에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이 처음으로 메소포타미아 평원에서 나타나자 말은 수레를 끄는 동물로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운송과 전차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말을 본격적으로 사육한 시기는 기원전 3000∼2500년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기마술(騎馬術)은 기원전 3000년경에 목축에 이용하기 위해 유라시아에서 성행하였고, 오리엔트에는 기원전 2000년경에 보급되어 기원전 1500년 정도에는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유라시아에서는 기원전 1500년 무렵에 금속으로 만든 재갈을 쓰기 시작하여 기마술이 발달하자 말을 타고 넓은 초원 지대를 이동하며 목축하는 기마 민족이 등장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2000년기 전반경으로 추정되는 내몽골의 오란찰포(烏蘭察布) 암각화에 묘사된 마차가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로, 유라시아 목축 문화의 접변 지역인 중국의 북부·동북부·서북부 지방에서 말의 사육이 시작되어 확산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상(商)나라 후기인 기원전 1300년경에 조성된, 은허(殷墟)를 중심으로 분포된 무덤이나 건물지의 차마광 (車馬壙)에서 말 뼈와 마차가 다량 출토되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에서는 고대 오리엔트에서 기원하였던 전차를 기본형으로 한 유라시아의 초원형 마차가 성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주나라 때에는 복마(服馬)와 참마(驂馬), 즉 두 마리는 수레를 끌고 두 마리는 좌우에서 함께 달리는 2인승 또는 3인승의 사두입마차(四頭立馬車)인 사모차(四牡車)가 출현하여 정착되었다.

중국에서 말을 타는 행위는 안양의 한 상나라 무덤에서 남자의 인골과 함께 무기류, 말의 장신구, 말의 유골 등이 출토되어 이때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록에서 기마병(騎馬兵)은 마차가 전차로 사용된 훨씬 이후에 출현하였다. 『사기(史記)』 「조세가(趙世家)」에 조나라 무령왕이 기원전 307년 북방 유목민과의 전투에서 오랑캐 복장을 한 기마 궁수(弓手)를 사용한 것이 처음이다. 이것이 점차 퍼지게 되었고 기마병이 마차 부대 대신 전쟁터의 주력이 되었다. 그 후 한나라 때에 이르면 마차를 전쟁에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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