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6장 동아시아의 명품, 우리 모피와 말
  • 4. 말의 기원과 변천
  • 한국 말의 대표 브랜드, 제주도의 조랑말
윤재운

제주도에서 산출된 말은 탐라마(耽羅馬), 제주말, 조랑말, 토마(土馬), 국마(國馬) 등 여러 이름으로 일컬어졌다. 제주도는 말을 사육하기에 자연 조건이 적합하여 청동기시대부터 이미 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부터는 조정에 말을 진상하여 왔는데, 고려 말에 이르러서는 원나라가 북방마(北方馬, 몽고말·서역마 등)를 전래하여 몽골식 목장을 설치함으로써 마정사상(馬政史上)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즉, 목장 관리 제도가 크게 발전하는 한편 마종(馬種)의 개량으로 양마(良馬)가 산출되고, 생산된 말은 원·명나라에까지 수출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군사·외교·산업 면에서 말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게 되자, 제주도에는 대규모의 국영(國營)·사영(私營)의 목장이 건설되었다. 따라서 국내 최대의 목장 조직이 갖추어지고 섬 전체가 목장화되어 국내외에 중요 말 공급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영조 같은 국왕은 제주도를 가리켜 ‘국마(國馬)의 부고(府庫)’라고 일컬었으며,288)『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25, 병고(兵考)17, 마정(馬政). 조신(朝臣)들 또한 “제주의 용종(龍種)은 임금의 마구간에 들어간다.”고 하거나, “기마(驥馬,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준마)는 대완(大宛, 지금의 중앙아시아 페르가나)의 말인 요요(騕褭)보다 우수하다.”고 하였다.289)『고려사』 권57, 지(志)11, 지리(地理)2, 탐라현(耽羅縣)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38, 제주목(濟州牧).

조선시대 제주도의 마종과 마산(馬産)의 문제점은 양마가 날로 감소해 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자연 퇴화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원나라에서 전래된 말이 세월이 흐르면서 과하마와 왜소한 말로 각각 퇴화하였다. 둘째, 나라의 기강이 무너짐에 따라 양마 번식 방법이 소홀해지고, 사람들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아 잡종을 좋은 품종과 바꾸어 감으로써 준마가 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290)『증보문헌비고』 권125, 병고17, 마정. 셋째, 1408년(태종 8) 제주도 안무사 조원(趙源)의 지적대로 제주도에 파견된 쇄마관(刷馬官)들이 명나라의 징마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먼 앞날을 내다보지 않고 제주마를 모조 리 징발하여 감으로써 좋은 말의 종자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이다.291)『태종실록』 권16, 태종 8년 12월 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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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선 정부의 개선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1910년 일제 강점으로 왜마(倭馬)와 양마(洋馬)가 전래되고 광복 후 한국 마사회 등에 의해 몽고말과 서역마 등을 들여왔으나 마종의 변화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제주말은 소형말이기는 하지만 성질이 온순하고 체질이 강하며 인내력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제주 조랑말은 암수 평균 체고가 116㎝로서 능력이 체력에 비해 매우 우수하여 105㎏를 부담하는데, 대개 하루에 32㎞씩 22일간 연일 행군을 하더라도 잘 견디며, 특히 굽이 치밀하고 견고한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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