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6장 동아시아의 명품, 우리 모피와 말
  • 5. 우리 문화 속의 말
  • 우리나라에서 말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
윤재운

사람이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한 것은 잡아먹기 위해서였다. 산야에서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무 열매를 채취한 것과 마찬가지로 야생 짐승을 수렵한 것은 고기를 먹어 영양을 섭취하고 가죽은 옷감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역사 이전의 시대에는 말고기를 즐겨 먹었다. 살이 많고 연해서 즐겨 먹어 영양 보충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말고기를 먹는 민족이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와 조선 초까지 말고기를 즐겨 먹은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다. 태종 초에 제주목에게 말고기 말린 것을 진상하지 말도록 명하였으며, 1425년(세종 7)에는 말고기를 매매하고 있었다. 연산군은 특히 병 없이 늙은 백마(白馬)가 양기를 돋우는 데 좋은 것이라 하여 즐겨 먹더니, 1503년(세종 9)에는 민가에서 함부로 색출해 오게까지 하였다. 1517년(중종 12)에는 사헌부에서 “의금부 등 아문에서 밀도살이 행해지고, 또 한성부·형조의 노자(奴子)들이 관권을 빙자하여 도살을 자행하고 있다.”고 하여 단속하였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말고기를 먹지 않는다. 예전에 신문에 말고기를 섞 어 속여서 판매한 상인이 구속된 기사가 실렸었다. 이 기사를 본 일본인이 말고기를 판매한 것이 왜 나쁘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말고기를 기피하는 한국인은 벌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말고기를 즐겨 먹는 일본인으로서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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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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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로는 말은 영마(靈馬), 신마(神馬)라 하여 신성하게 여긴 점을 들 수 있다. 위대하고 신성한 무당이 마상(馬像)을 모셔 놓고 굿을 하는 판에 그 고기를 먹을 수는 없다는 인식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말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신성관(神聖觀)이 전승되는 동안 더욱 정착되어 말고기는 마땅히 먹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 소담한 말고기를 폐기하여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생활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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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役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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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기를 먹지 않은 다른 이유로는 국내 수요의 부족을 들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기병이나 역마(役馬), 농업 경작, 갓, 가죽신 등에 많은 수요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정부는 말의 증산은 물론 그 수요를 막기 위한 법적인 조치를 마련하고 매매를 통제하였다. 태조는 고려 말의 금살도감(禁殺都監)을 그대로 두고 『경제육전(經濟六典)』을 제정하여 소와 말의 도살을 금지하였으며, 1411년(태종 11)에는 도살을 일삼는 백정을 색출하여 도성 30리 밖으로 추방하여 감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궁중·관청에서 수요가 계속 증가하자 정부는 말 명산지인 제주도에서 매년 말린 말고기를 공물로 바치게 하였고, 제주도민은 그러한 부담 때문에 말을 도살하는 풍조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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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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