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6장 동아시아의 명품, 우리 모피와 말
  • 5. 우리 문화 속의 말
  • 제사 대상으로서의 말
윤재운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말을 제의용(祭儀用)으로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강릉 강문동 유적이나 경산 임당 유적, 부산 낙민동 유적과 같은 삼국시대 초기 저습지나 패총에서 말 뼈가 출토되고, 또 말 뼈, 복골, 소형 토기와 같은 제사 유물들이 함께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제의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삼국시대 고분 유적에서는 마구와 함께 다량의 말 뼈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매우 보편적으로 말을 제의에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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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죽막동 제사 유적 전경
부안 죽막동 제사 유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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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죽막동 제사 유적 토제마
부안 죽막동 제사 유적 토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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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장송(葬送) 의례를 중심으로 말을 제의에 이용하는 현상은 6세기 이후가 되면 그 수가 차츰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정은 불교의 도입에 따라 사상적으로 동물 희생이 금지되고, 사회적으로도 우경의 보급으로 동물의 효용 가치가 증대되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실제 장송 의례 시 말을 매납(埋納)하는 대신에 토제마(土製馬)나 토용(土俑) 등을 부장(副葬)하는 양상을 가져왔다.

특히 토제마, 즉 토마(土馬)는 각종 제사 유적에서 출토된 예가 많다. 경남 김해 부원동, 부산 동래 낙민동 패총, 전라북도 부안 죽막동 제사 유적, 영암 월출산 제사 유적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토마는 쇠로 만든 철마(鐵馬)와 같이 출토되기도 한다. 토마와 철마 모두 항해의 안전이나 산신에 대한 공헌물(供獻物)로서 이용되었다.

한편, 말은 사람에게 공헌하는 정도가 높고 생활의 여러 측면에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신격화되어 마신(馬神)이 설정되었다. 마신이 국가에서 집행하는 제례(祭禮)에서도 채택되어 조선시대에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기록되어 제도화되었는데, 소사(小祀)로 마조(馬祖)·선목(先牧)·마사(馬社)·마보(馬步)가 들어 있다. 여기서 소사란 삼사(三祀) 중 대사(大祀), 중사(中祀) 다음으로 나라에서 지내던 소규모 제사이다. 마조는 왕의 말을 맡 은 신이다. 선목은 사람에게 처음으로 말을 기르는 방법을 가르쳐 준 신으로 양마신(養馬神)이라 할 수 있다. 마사는 승마의 신으로 처음 말을 탔던 사람이 신이 되었다고 하니 기마술(騎馬術)이 뛰어난 신이다. 마보는 말에게 재해를 주는 신으로 말에 병이 없도록 하기 위해 도와야 하는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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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외마장원전도(東大門外馬場院全圖)
동대문외마장원전도(東大門外馬場院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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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 선목, 마보에 대한 제례는 고려 의종 때에도 실시한 기록이 『문헌비고(文獻備考)』에 있어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고, 마신제(馬神祭)는 국비를 들여 국가 의식으로 거행하였다. 이를 통하여 마신은 나라에서 위할 만큼 중요한 신으로 인식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말은 타고 다니고 무거운 짐을 운반하고 농경에서도 활용되었다. 또 지체 높은 사람들이 승용하였으며, 군마(軍馬)로서 국가 방위에서도 큰 구실을 하였기 때문에 마신에게 제례를 올려 적극적으로 이득이 되기를 바랐으며, 마보처럼 재해를 주는 신에게도 제물을 바치고 의례를 올려 그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한 것이다.

마신이 설정되고 마신을 위하는 과정에서 무당이 제의를 진행하였다. 무당이 제의의 진행을 맡았기 때문에 신과 사람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담당하여 사람의 소원을 신에게 전달하고 신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하여 신과 사람이 교섭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고려 이후 궁중의 승여마필(乘輿馬匹) 목장을 관장하는 관아로 태복시(太僕寺)가 있었고 1308년(충렬왕 34)에 사복시(司僕寺)로 고쳤다. 정3품의 판사가 장이 되고 마협 열 명, 안기, 이기, 보기 각 한 명과 그 밖의 관원이 있어 마정을 담당하였다. 이렇게 나라에서 사복시를 둔 것은 말이 국가 의례, 군사, 왕의 나들이 등에 필수이기에 관서에서 마정을 관장하도록 한 것으로 이해된다.

무격(巫覡)들은 민간에서도 마신을 모셔 왔다. 무당집에 가면 토제·도제·석제·철제의 마상(馬像)이 제단에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길이 15㎝에 높이 9㎝ 정도의 작은 마상이다. 정교하지 않고 거칠고 소박하며 10여 개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마신 신앙이 보편적이었고 민간에서도 사신의 어마로서의 말에 대한 인식이 있어 무속에까지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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