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1장 여자여 외출하라
  • 3. 근대의 무지개 아래, 소비하는 식민지 여성
  • 신여성 또는 모던 걸
허영란

‘신여성’은 근대 교육을 받고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는 지식 여성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뿐 아니라, 새로 등장한 ‘여성 직업’의 종사자, 심지어는 여학생을 모방하는 기생이나 은근짜까지 신여성의 범주에 들어가기도 한다. 교양이나 지식, 신념의 유무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스타일, 곧 외양이 점차 판별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기생하면서 유행만을 뒤쫓는 모던 걸도 문화적 의미의 신여성에 포함될 수 있다.

근대적 산업 시설이 증가하고 자본주의적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직업이 나타났으며, 남성과 여성의 성적 구분에 따라 분화되었다. 그 결과 여성이라는 성적 특수성을 활용하는 다양한 여성 직업이 등장하였다. 전화 교환수,48)1900년 대한제국 전환국(典局)에 채용되어 지폐 제조에 종사한 15명의 여공이 근대적 여공의 효시이다(이화 여자 대학교 한국 여성사 편찬 위원회, 『한국 여성사』 Ⅱ, 1972, 70쪽). 미용사, 백화점 점원, 극장에서 표를 파는 티켓 걸, 버스 걸, 엘리베이터 걸, 바에서 일하는 바 걸, 카페의 여급, 가이드 걸 같은 것이 좋은 사례이다.

이들과 더불어 과시적인 소비를 주도하는 배우나 기생, 심지어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한 막스 걸, 엥겔스 레이디 등으로 신여성의 범위가 확대되 었다.49)한국 여성 연구소 여성사 연구실, 앞의 책, 314∼317쪽 ; 김진송, 『서울에 딴스홀을 허(許)하라』, 1999, 현실 문화 연구, 202∼223쪽. 보는 각도에 따라 신여성의 이미지는 천차만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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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직업의 등장
여성 직업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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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남존여비의 강고한 울타리를 벗어나고자 하였다. 비록 몰지각한 ‘장신 운동’의 주역으로 비웃음을 사기도 하였지만, 새로 형성되기 시작한 도시의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쾌락으로서의 소비를 실행하였다. 단발머리나 굽 높은 구두, 시계나 목도리, 양산 등 외모와 의복, 장신구의 소비는 그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화장품, 맥주, 커피와 같은 상징적 상품의 소비는 그들의 문화적 추구를 실현하는 ‘고귀한’ 행위였다.

외모와 패션에 대한 그들의 추구에는 봉건적 구속에서 벗어난 몸과 자아를 재발견하려는, 그것을 통해 자신이 속한 현실을 바꾸려는, 해방에 대한 여성의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 그들에게 사치와 상징의 소비는 자아를 표출하기 위한 일종의 실천인 셈이었다. 유행의 본성상 기생과 여학생, 여염집 여자와 직업여성이 서로를 모방함으로써 봉건적인 신분과 사회적인 계층의 구분이 약화되었다는 것 또한 소비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이었다.50)임옥희, 「복장의 정치학과 식민지 여성의 소비 공간」, 『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여성 공간』, 여성 문화 이론 연구소, 2004, 255∼261쪽.

그러나 비록 해방을 향한 몸부림이라 하더라도 외모와 이미지에 종속된 여성의 몸은 보이기 위한 몸이 된다. 과시적 소비가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자아는 연기하는 자아가 되고, 주체성의 추구 대신 외모와 이미지의 관리에 치중하게 된다.51)피터 코리건, 앞의 책, 272∼275쪽. 일제 강점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대중문화와 유행을 주도한 (신)여성이 끊임없이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된 것도, 그러한 자본주의 소비 문화에 포박되어 버렸다는 근본적 한계와 관련되어 있다. 그들이 지속적으로 조롱과 비하, 비웃음과 비판에 노출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회의 공적 담 론을 지배하는 지식계가 남성 및 남성 중심의 신념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해방을 향한 여성의 욕구가 자본주의적 과시형 소비와 결합하면서 결국 주체성의 소멸로, 그리하여 주체의 몰개성화와 소외로 이어지고 마는 것도 또한 엄연한 현실이었다. 해방의 가능성 이면에 소외의 함정이 시퍼렇게 도사리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적 소비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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