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1장 여자여 외출하라
  • 5. 의무로서의 소비, 쾌락으로서의 소비
  • “여자여, 외출하라”
허영란

여성은 가족을 대신해서 각종 생활필수품을 소비하고, 개인적 소모품이나 사치품 등 다양한 상품의 소비에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상품 광고는 여성 소비자를 집중 공격하는 다양한 소비 전략을 만들어 낸다. 현대 여성의 생활 문화는 광고의 막강한 영향력 앞에 피할 길 없이 노출되어 있다.98)이영자, 앞의 책, 54∼55쪽. 여성의 공간으로 출발한 백화점은 유행과 문화의 발신 기지가 되었다. 그 신호음의 주요 수용자는 여성이다. 백화점은 이제 여성에게 삶의 ‘모든’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켜 주겠노라는 선전을 서슴지 않는다.

확대보기
“여자여, 외출하라”
“여자여, 외출하라”
팝업창 닫기

한국 소비자 보호원에서 1997년에 발표한 소비자의 소비 행위에 대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상품 선택에서 과시적 소비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68.2%나 되었다. 또 자아를 상징하는 선택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56.4%,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모방 소비는 52.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비 행위가 실용성·편리성·가격·품질도 고려하지만, 자기 과시적·자아 상징·품위 상징·모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보여 준다.99)김용자, 앞의 글.

범람하는 광고는 그러한 경향을 심화시킨다. 광고는 페미니즘의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하지만, 가부장적 여성 문화에 내포된 여성 억압적 요소,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 비하적인 요소를 다양하게 변형시키고, 때로는 상반된 이미지와 가치를 뒤섞어서 재현한다. 광고는 여성의 성 역할, 외모 지향적 성향, 성적 대상화를 부각시킬 뿐 아니라, 그것을 기꺼이 수용하고 스스로 즐기는 여성상을 제시한다. 특히 젊은 세대를 겨냥하여 여성성의 개성화와 변신, 비정체성, 자아도취적 감성에 몰입하는 소 비문화를 부추긴다. 이처럼 상업주의에 의해 다양하게 조합되는 여성의 이미지는 과거부터 내려온 여성의 ‘굴레’를 또다시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가 추구하는 저항과 해방을 곡해하거나 오도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그로 인해 “결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개선된 듯이 보이지만 여성의 의식이 더욱 식민화되고 있다.”100)김미숙, 「TV 광고에서 나타난 여성성의 변화와 지속─‘캐리어우먼’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화 여자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95, 77쪽, 85쪽.는 우려가 심화된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가정을 책임지는 강한 어머니의 이미지와는 별도로, 좋은 어머니의 개념에 특별한 전문성까지 부가되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프로 엄마’ 신화는 상업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어졌고, 중산층의 젊은 어머니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이미지는 유아용품의 판매 전략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가사, 육아, 재테크 등에 대한 전문 지식이 점점 더 상업화되고 있다. 과학적 지식 그 자체가 상업화되고 확산되었으며 상품 광고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101)이재경, 『가족의 이름으로 : 한국 근대 가족과 페미니즘』, 또 하나의 문화, 2003, 164∼167쪽. 페미니즘이나 환경 보호론, 유기 농산물에 대한 선호가 상품 광고에 흡수되어 상업화를 위해 이용되고 있는 현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광고는 상품 판매를 위한 수단이지만 대중문화와 대중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따라서 그러한 광고의 역할,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이념, 광고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대중의 사회화 과정, 특히 여성의 인식과 실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