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2장 한 달 만의 외출
  • 2. 전근대 시기와 일제 강점기의 계
  • 조선시대의 계
이임하

계(契)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보통 두레, 향도(香徒), 가배(嘉俳) 등에서 유래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계는 종교적·사회적·경제적 조직체로서 함께 제사 지내고, 서로 돕고, 노동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많은 연구자는 계를 자연 발생적인 민족 고유의 창조물 또는 민주적인 자치 기구로 평가하였다.

이러한 모습의 계가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조선 후기였다. 당시 계는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으로 조직되었다.

우선 동족 촌락이나 씨족 집단의 질서 유지, 공공사업, 친목, 상호 부조를 위한 계가 있었다. 대표적 사례로는 향약계(鄕約契), 동계(洞契), 이중계(里中契), 송계(松契), 호포계(戶布契) 등이 있었다. 향약계는 보통 한 개의 군(郡)을 구역으로 향약에 가입된 유림으로 구성되어 문묘의 제사나 향교의 유지, 경영 따위를 목적으로 하였다. 향약계의 특징은 계원의 자격이 개인이 아니라 향약에 가입한 가문을 단위로 하고 각 가문의 일족은 당연히 계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동계와 이중계는 마을이나 지역 단위의 공공사 업, 곧 도로·교량·제방의 건설과 수리, 서당의 건립, 조세 징수의 보조, 농기구의 공동 구입과 사용, 산림의 공동 관리, 동리의 제전과 기우제의 거행 따위를 목적으로 하였다. 이 밖에 송계는 마을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산림의 보호와 이용을 목적으로 하였고, 호포계는 계를 운영하여 얻은 수익으로 세금을 납부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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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계첩(壽甲稧帖)
수갑계첩(壽甲稧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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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유형으로는 농민이나 어민이 공동 구매와 공동 생산을 위해 조직한 계로 농계(農契), 우계(牛契), 농구계(農具契), 어선계(漁船契), 어망계(漁網契) 등이 있었다. 농계는 촌락에 있는 장정이 모두 참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보통 20∼30명의 계원이 모내기나 김매기 같은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였다. 우계는 소를 갖지 못한 농민들이 매월 일정 금액의 곗돈을 모아 소를 구입하고 추첨을 통해 계원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계는 전 계원이 소를 갖게 되면 자연히 해산되었다. 어민이 조직한 어선계와 어망계도 마찬가지로 공동 구입, 공동 생산을 위한 협동 조직이었다.

또한 사교와 도덕적 기능을 목적으로 한 계도 조직되었는데, 여기에는 충효계, 친족계, 종중계, 소학계(小學契), 종친계, 사계(射契), 노인계, 동년계(同年契), 사마계(司馬契) 등이 있었다. 종중계나 종친계 등은 조상이 같은 혈족이 모여 조상의 제사나 상호 부조를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사계 또는 사향계(射享契)는 계원의 친목이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계원은 사교의 수단으로 궁술을 연습하였다. 이 밖에도 노인계는 노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술을 마시며 교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과거에 같이 급제한 사람들끼리 모인 동년계, 진사와 그 자손들이 동류의식을 기르기 위해 조직한 사마계 등이 있었다.

다음으로는 관혼상제에 대해 상호 부조를 목적으로 하는 상포계(喪布契)와 혼표계(婚表契) 등이 있었다. 상포계는 조합원의 가족 가운데 사망하는 사람이 생기면 상례를 비롯하여 소요되는 비용 모두를 지불하였다.

이 밖에도 식리계(殖利契), 산통계(算筒契), 작파계(作罷契)처럼 계원으로부터 돈을 모아 운영한 다음 발생한 수익을 계원에게 분배하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계도 있었다.

조선시대의 계는 촌락의 질서 유지, 친목, 공동 경작과 상호 부조, 식리(殖利) 등 다양한 목적으로 조직되었으며, 그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처럼 설립 목적은 달라도 계는 대부분 촌락 또는 혈족을 중심으로 조직된 임의 단체였다. 예를 들어 동계나 송계는 촌락 안의 각 호마다 대표 한 명을 계원으로 하여 몇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을 단위로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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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모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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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의 운영은 대체로 계원 가운데 선출된 임원이 중심이 되어 정기적으로 계회를 열고 중요 사항을 협의하였다.110)김용락, 『한국 계의 이론과 실제』, 청자서원, 1967, 20쪽. 임원으로는 도령위(都領位), 좌수(座首), 대방(大房), 반수(班首) 등으로 불리는 계장 (契長)이 있었고 그 아래 유사(有司) 또는 도가(都家), 장재(掌財), 서기(書記) 따위를 두었다. 계장은 계의 발기인이나 연장자 또는 명망가 가운데 선출하였으며 일정한 임기와 보수가 없는 명예직이었다. 유사는 계의 실무를 책임지는 자로 임기는 1∼2년이었고 약간의 보수를 받았다.

이렇게 다양한 목적에 따라 조직된 조선시대의 계는 대부분 씨족 안의 가부장이나 종가(宗家) 또는 가장, 곧 남성을 계원으로 하였다. 이는 조선시대의 계가 씨족이나 촌락 공동체를 범위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 조선시대의 계는 남성의 사회 활동 공간으로, 여기에는 가부장제 사회 구조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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