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2장 한 달 만의 외출
  • 4. 부녀계와 여성 유대
  • ‘계 오야’로 집도 사고 자식도 가르치고
이임하

여성이 계에 가입하는 목적은 대부분 목돈 마련이었다. 목돈의 용도는 전세 대금, 집 마련, 살림살이 마련, 자식의 결혼 비용이나 학자금, 부채 상환, 장사 밑천, 저축 등 다양하였다.

1963년 조사에 따르면 계 가입의 목적은 결혼 비용과 학자금 조달 19.8%, 영업 자금 조달 16.5%, 부채 청산 11.0%, 저축 12.0%, 용돈 마련 10.7%, 집 구입 또는 수리 7.7%, 상호 부조 6.4%, 양복·시계·반지 따위의 구입 5.4%, 돈을 늘이기 위해 3.1%였다. 또한 어떤 목적이든 목돈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계에 들었다고 답한 사람은 67.9%였다. 특히 학자금이나 결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계에 든 사람들 가운데 목돈을 쓸 수 있어 계를 좋아한다는 비율이 78.3%였다. 이는 여성이 막연하게 저축을 위해서 계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향은 1970년대에도 여전해 목돈 마련을 위해 계에 가입한 비율이 1971년 65%, 1973년 65.3%, 1976년 54.4%, 1979년 65.4%로 나타났다.155)고대선, 「계사기 사례로 본 윤리 고찰」, 『장안 논총』 1, 장안 대학교, 1981, 46쪽. 다만 1986년 조사에서는 목돈 마련(36.5%)보다 저축을 위해(47.6%) 계에 가입한다는 비율이 높았다. 이는 목돈 마련이 한두 가지의 뚜렷한 목적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용도로 쓸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계에 가입하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곗돈으로 탄 목돈은 어디에 썼을까? 1963년 조사에 따르면 교육비 18.4%, 생활비(먹고사는 데) 13.9%, 기업 자금 12.1%, 부채 청산 11.6%, 가구 구입 10.3%, 관혼상제 9.4%, 주택 구입 5.6%, 딴 사람에게 꾸어 준 경우 5.1%,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 5.1% 등으로 나타나 계를 통해 마련한 목돈의 절반 이상(교육비, 생활비, 관혼상제비, 가구 구입 등 52%)이 소비에 사용되었다. 1986년 조사에서도 곗돈의 사용처는 교육비가 21.4%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는 주택 구입 16.0%, 생활비 14.1%, 생업 자금 10.0%, 관혼상제 8.6%, 부채 청산 7.6%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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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화한 계 풍자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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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과는 계 가입자의 대부분이 처음 목적한 대로 곗돈을 사용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계 가입의 목적이 주기적으로 목돈이 필요한 자녀 교육비와 결혼 비용 등을 마련하고 영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찬거리 값을 절약하고 아이들의 군것질 값을 절약하고 옷 입는 것도 절약하고 이모저모로 절약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156)이동욱, 「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전망』 창간호, 1955, 65쪽. 것처럼 소비를 절제하고, 잠을 줄여 바느질을 해서 곗돈을 마련하였다. 그렇게 모인 곗돈은 전세 대금으로, 자녀 교육비로, 주택 구입으로, 가정 경제를 꾸리는 데 쓰였다. 다음의 사례는 한 여성이 계주가 되어 계를 조직해서 집을 장만하고 빚을 갚거나 생활한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돈을 벌어가 이 빚을 갚으랴 하는 생각에 (궁리를) 하다가 일수놀이를 몇 년 했는거라. …… 빚도 어느 정도 추리다(갚다) 보니까네 (또 다시 돈 벌 궁리가 생각나는거라). 아, 내가 오야(계주)를 해 가지고 또 빚을 갚아야 되겠다 허는 생각이…… 계 오야를 20년 했어요. …… 인자 일반계가 있으니까 계를 들고, (돈이) 나오면은 (또) 계를 들고 (했는 거라). 푼돈 이거 목돈 해 가지고. 인자 오야계면 (내가) 오야가 되고. 두 번을 타 가지고 이자 계산을 해 가지고 (나머지 곗)돈을 푼돈으로 갚으니까 내가 살 길이 안 생기겠나 하고 인자 되나 안 되나 들었는거라. (계를 묶는 데마다) 들어 가지고, (그 곗돈 내느라) 물질을 내가 두 목(두 사람 몫), 세 목(세 사람 몫)을 했어요. 물에질(물질)은 악이 올라 가지고 파도가 치든 뭐 하든, 폭풍주의보가 내려도 배로 몬 가면 걸어서도 가고 혼자 노저엉, 곗돈 때문에. 내가 (그렇게 악착같이) 안 하면 다 굶어죽는데 빚 갚고 할라니까네 뭐 안 할 수는 없지요. 그러니까 그게 (계기가 되어서) 인자 그게 (돈을) 벌었다꼬 봐야지. (돈을 벌만큼 많이) 벌었으니까 그 빚 갚고. …… 그래서 계 하나를 타 가지고 인자 집 하나 저 밑에 팔 거 있다 해 가지고 그때 1,800만 원인가 주고 샀는데 1,000만 원 담보를 내고 800백만 원 계를 타 가지고 거 집 하나 해가.157)구술 김만수·채록 고승한·한림화, 『구술로 만나는 제주 여성의 삶 그리고 역사』, 제주도 여성 특별 위원회, 2004, 328∼329쪽.

그래 내가 오야 해 가지고…… 딸 시집보내고, 월세 살다가 전세 올리고, 그래 살았지 뭐. 딸 시집보내는 데 돈 들어야지.158)구술 정영기·면담 이임하, 2006년 1월 16일(한성 대학교 전쟁과 평화 연구소 소장).

계는 주택을 구입하는 데에도 한몫을 단단히 하였다. 1979년 주택은행이 은행 융자를 받아 단독 주택에 입주한 2,000세대를 대상으로 저축 방법을 조사한 결과 은행 저축 37.2%, 신탁·보험·증권 같은 비은행 저축 8.9%, 기타 53.9%였는데 기타는 주로 계나 사채를 뜻하였다.159)편집부, 「계, 안전한가」, 『신동아』 1980년 12월호, 382쪽. 그만큼 계는 1970년대에 이르러서도 서민 가정의 주요한 저축 수단이었다.

물론 부녀계가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계돈을 돌려 이 계를 막고 저 계에 넣고 있는 가정부인들 또는 딸라 장사와 결합하고 각종의 투기사업과 관련되어 밀무역은 물론이요 사생활 면의 융통으로부터 선거 소동이란 정치 면에 이르기까지”160)김삼수, 앞의 글, 68쪽. 부녀계는 온갖 부정과 연관된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기특한 점은 성행하는 계의 경험도 쌓고 자신력이 있는 여성은 남성으로서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사업을 담당하여 자신 있게 해 나가게 된 경향이다. 물론 사변이 낳은 불가피한 생활욕에서 활동일 지나 그때도 여성들이 자기 기업을 갖고 남성 이상으로 경영난을 박차고 나가는 데는 숭배할 점도 많다.”는161)권혁정, 「계는 어떻게 상가와 가정에 반영되는가」, 『여성계』 1955년 9월호, 83쪽. 지적처럼 부녀계는 여성에게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갖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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