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2장 한 달 만의 외출
  • 6. 20세기 여성의 경제생활
이임하

“여자가 벌어야 얼마나 번다고…….”

“반찬값이라도 벌까.”

이 말은 여성의 경제 활동에 대해 이전에도 현재에도 흔히 주고받는 말이다. 워낙 일상적으로 들어 온 말이라 여성도 큰 불만 없이 곧장 수긍하곤 하였다. 이 표현은 여성의 위치에 대해 사실을 지적하는 동시에 여성사의 왜곡을 드러낸다. 사실 여성은 예나 지금이나 노동 시장의 하위에 위치해 있고 그 위치는 ‘반찬값이라도 벌면 다행’인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여성의 경제 활동은 ‘반찬값’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영업 자금을 마련하고 자녀를 교육시키고 부채를 갚고 가재도구나 집을 마련할 정도로 큰 몫을 차지하였다. ‘여가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정 경제의 상당 부분을 여성이 책임졌다. ‘반찬값’밖에 벌지 못하는 여성이 어떻게 가정 경제를 책임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계를 통해 가능하였다.

계는 조선 후기 동족 촌락이나 씨족 집단의 공동 작업, 친목, 상호 부조 등을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조직되었는데, 이 계를 구성하고 운영한 주체는 남성이었다. 반면 6·25 전쟁을 계기로 여성이 중심이 되어 주로 경제적 목 적으로 계가 조직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여성이 계를 조직하게 되었을까?

6·25 전쟁으로 남성은 전쟁에 동원되고 죽거나 부상당하고 징집을 피하려고 도피한 현실에서 여성은 남은 가족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었다. 배우자의 유무나 나이에 관계없이 농촌 여성은 가사 노동 이외에 들일을 하였고, 도시 여성은 자금을 융통하여 행상, 노점상 등의 소규모 상업 활동에 나섰다. 전쟁의 피폐함은 여성의 생활을 고단하고 힘겹게 하였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지는 경제 활동은 가정 내에서의 경제권을 장악하거나 자녀 교육을 책임지는 등으로 여성의 지위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의 지위 변화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여성이 주체가 되어 조직되었던 계였다.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여 6·25 전쟁 뒤부터 계를 부녀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렇게 조직된 부녀계를 통해 여성은 이전과 다른 경제적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여성이 계를 통해 얻은 경험이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여성은 계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부계 가족 중심의 인간관계를 벗어나 이웃, 동창, 동업자, 학교 등으로 관계망을 넓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관계는 집을 사들이고 살림살이를 하는 데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거나 나아가 자기 사업을 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사회는 ‘계와 유한마담 그리고 여성의 허영과 사치’라는 등식을 적용하여 20세기 여성의 경제 생활과 사회 생활의 중요한 고리인 계를 폄하하였다. 계에 대한 이미지는 주변에 있는 위 세대 여성의 삶을 조금만 둘러보아도 그것이 허상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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