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3장 무식하면 짐승과 같습니다
  • 1. 학교에 간 여성
  •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나
김정화

일제 강점기 때 여학교의 하루는 보통 8시 등교, 교직원 회의와 학급 조례 뒤 1교시가 8시 30분부터 시작되었고, 40분 수업으로 진행되었으며, 일과 시작 전과 점심시간 뒤에 연합 체조 시간이 있었고, 청소를 마치면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교실과 복도는 나무 바닥이었기 때문에 콩이나 피마자기름으로 닦아야 했다.

학교에서 가르친 지식은 학문적인 호기심과는 동떨어진 것이었으며 위계적 질서와 규율에 대한 순종, 그리고 기초적인 학습과 바느질을 배우면 그만이었다. 여학교의 교과는 일본화를 위한 내용과 읽기·쓰기·셈하기 등 기본 학습, 바느질과 재봉이 주요한 구성 요소였다.

여학생은 남학생이 받는 것과는 가능한 구별되는 내용의 교육을 받았다. 여학교에서는 재봉, 수예, 가사 등 가사 노동 위주의 교육을 강조하였다. 30시간 수업 가운데 1·2·3·4학년 모두 재봉이 4시간씩 차지하였고, 더하여 3·4학년에는 가사 시간이 배정되었다. 가사는 ‘가사 정리상 필요한 지식 기능을 가르치며, 근면·절검·질서·주밀(周密)·청결을 존중하는 자세를 기르는 것을 요지’로 실습할 것을 규정하였다. 가정 관련 교과목은 어진 아내, 현명한 어머니일 것과 더불어 근검절약하는 주부로서의 삶을 가르치고 있어서, 소녀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 돌아갈 곳이 ‘가정’이라는 전제를 잘 보여 준다.

<표> 4년제 여자 고등 보통학교의 교과목과 수업 시간
과목
학년
수신 국어 조선어 외국어 역사 지리 수학 이과 도화 가사 재봉 음악 체조
1학년 1 6 3 3 3 2 2 1   4 2 3 30
2학년 1 6 3 3 3 2 2 1   4 2 3 30
3학년 1 5 2 3 2 3 3 1 2 4 1 3 30
4학년 1 5 2 3 2 3 3   4 4   3 30
✽여자 고등 보통학교 규정(女子高等普通學校規程), 1922년 2월 17일 : 현경미, 「식민지 여성 교육 사례 연구」, 서울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98, 175쪽 재인용.

가사 시간 같은 때에 신여성과 전통적인 어머니와의 차이를 말하자면 옛날 어머니들은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중요시하고 그랬던 데 비하면, 교육받은 여성들은 남편 잘 받들어 모셔야 하고 아이 키우고…… 가사 시간 외에 보통 시간에도 가정생활 관련한 지식을 많이 가르쳤다. 이를테면 하다못해 집 안에 액자 보관하는 법, 청소하는 법, 사시사철 옷은 어떻게 바람을 쏘여야 한다던가 등 살림하는 법을 중요시하는 소위 양처 교육은 철저 히 시켰다고 생각한다.193)구술 조영희(조은·윤택림, 「일제하 ‘신여성’과 가부장제」, 『광복 50주년 기념 논문집』 8, 한국 학술 진흥 재단, 1995, 192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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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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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이 받았던 중등 교육은 남학생에 비해 시간도 짧았을 뿐 아니라 과목 수도 더 적었다. 동일한 교과라 하더라도 성에 따라 다른 교과서로 배웠고, 교과목에 따라서는 시간도 차이가 있었다. 국어(여 6시간, 남 8시간), 외국어(여 3시간, 남 7시간), 수학(여 2시간, 남 4시간) 등 일반 교과가 남학교에서 훨씬 비중이 컸다.194)현경미, 「식민지 여성 교육 사례 연구」, 서울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98, 58쪽.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배우는 내용뿐 아니라 교과목의 차이, 교과에 배당된 시간의 차이는 여성 교육과 남성 교육 사이 의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 냈다.

일제 당국의 의도와는 별도로 여학생은 더 많은 교육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컸다. 교육은 사회적 지위 상승을 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을 뿐 아니라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가사 노동 위주의 실습 교육보다도 글쓰기 같은 사고력과 비판 의식을 키울 수 있는 과목의 비중이 늘어나기를 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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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희망과는 다르게 여전히 여성이 좋은 어머니 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존재하였다.

녀자 교육는 모성 심의 교육이라야 한다. 녀자의 인생에 대한 의무의 심은 남의 어머니 되는 데 잇다. …… 조흔 어머니가 되며 조흔 아희를 길너 내는 것이 오즉 녀자의 인류에 대한 의무요 국가에 대한 의무요 사회에 대한 의무요…… 한 나라에서 조흔 국민을 만히 나게 하려면 먼저 조흔 어머니를 만히 만드러 노아야만 한다. …… “너희들은 조흔 어머니가 되여라. 조선은 새 국민이 필요하다. 새 국민을 만들고 아니 만들기는 너희 손에 잇다.” 하는 가르침을 바더보지 못하엿슬 것이다. …… 오늘날 우리 조선 녀자에게는 모성 중심의 교육을 깁히 깁히 너허 주지 아니하면 녀자를 교육식힌다는 것이 아모 의미가 업는 줄 안다.195)이광수(李光洙), 「모성(母性) 중심의 여자 교육」, 『신여성』 제3권 제1호, 1925, 14∼16쪽.

가사를 잘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현모양처가 되도록 지도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목표였으므로 학생들이 직접 가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였다. 1920년대 들어서면서 각종 요리와 바느질 솜씨, 예절 바른 생활 태도 등 여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학교 실습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가사 실습실을 학교 안에 만들기 시작하였다. 실습실에서는 한국 음식과 서양 음식으로 나누어 밥 짓기·반찬 만들기·장 만들기·김장하기는 물론 빨래와 청소도 하고 마름질·바느질·다림질까지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숭의 여고보의 경우도 1921년 미화 6,000불의 시설비를 들여 건물을 개조하고 취사도구와 각종 요리 기구, 재봉 기구 등을 구입해 가사 실습실을 만들었다.196)숭의 90년사 편찬 위원회 편, 『숭의 90년사』, 숭의 학원, 1993,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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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실습 제도는 가사와 관련된 것뿐 아니라 학교에서 배운 예법을 일상생활에서 몸에 체화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다. 1927년 숙명 여고보 기록에 따르면 졸업반 학생은 하루씩 당번이 되어 교무실에서 평소 예법 시간에 배운 내용에 따라 학교에 찾아오는 내빈이나 학부형을 안내하고 접대하는 일에서부터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는 실습 제도도 있었다.197)숙명 여자 중고등학교 편, 『숙명 70년사』, 숙명 여자 중고등학교, 1976, 189쪽.

현모양처 제일주의로 정숙한 여성상을 강조하는 일제와 학교의 분위기 속에서 학생은 “수예부에서 귀주머니, 수젓집, 상보, 베개 모서리, 수방석 등 결혼 때 필요한 자수물은 거의 다 준비”198)경북 여자 고등학교 편, 『경북 여고 70년사』, 경북 여자 고등학교, 1999, 225쪽.하였을 정도로 수예나 재봉 같은 쪽으로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많은 자수 전시회가 열렸다. 한 여학교는 1935년부터 1938년 겨울까지 집단 작품으로 공작을 수놓은 병풍 여섯 폭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학교의 교보(校寶)로 자랑거리였다.199)『동아일보』 1939년 2월 17일자. 여학생들은 높이 7척 길이 7척 여의 병풍 ‘등꽃 아래의 공작’을 선생님의 지도 아래 매년 40∼50명이 달려들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더위와 싸워 가며 실 한 오라기, 바늘 한 땀에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 냈다. 이것은 바느질과 같은 기예를 배우는 과정일 뿐 아니라 여성에게 요구되는 참을성과 인내심을 기르는 교육 과정이기도 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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