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3장 무식하면 짐승과 같습니다
  • 2. 규율과 훈육 그리고 정체성 찾기
  • 집을 떠난 소녀들에 대한 두려움
김정화

남성은 일자리를 찾거나 상급 학교에 진학할 목적으로 고향과 집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여성은 결혼할 때를 제외한 다른 이유로 가정을 떠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집 근처에 있는 보통학교를 마친 소녀들은 대개 상급 학교로 진학하기를 바랐다. “계집애가 보통학교도 과하지 서울 유학이 다 무어야 건방지게만 되지 서울 보냇다가는 또 바람날 것”이라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공부하러 가는 것이 기뻐 어머니와 떨어지는 것도 섭섭한 줄도 모르고 소녀들은 도시로 올라왔다. 그러나 소녀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는 그다지 많지 않았으므로 입학난이 초래될 수밖에 없었다.

입학난! 이것은 조선 사람이 금방 당하는 큰 설움이지만 그 중에도 여자의 입학난 이것은 정말 심하다. …… 우리 여자가 비록 배우고저 한덜 엇지 할 수가 잇스며 또는 배와 주려 한덜 할 수가 잇슬가. 그리고 목하 당장에 답답한 것은 여자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난 그 여학생들이 여자 고등학 교에 들 수가 업는 그것이며 여자 고보를 졸업한 그 학생들이 그 이상 학교를 공부할 수가 업는 그것이다.200)김기전(金起瀍), 「조선의 절똑바리 교육」, 『신여성』 1924년 4호, 4쪽.

조선인이 이처럼 절실하게 학교에 취학하기를 원하였던 이유는 일제의 학력주의적 지배 관행에서 연유하였다. 관리가 되거나 은행, 기업체에 취업하려면 일제가 인정하는 학교의 졸업장이 있어야 했다. 학력에 따라서 임금이 위계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상급 학교로 진학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곧 일제 강점기의 교육열은 좀 더 많은 사회적 보상을 얻고자 하는 사회적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욕구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었다.201)한국 교육 개발원 편, 『한국 근대 학교 교육 100년사 연구』 Ⅱ, 한국 교육 개발원, 1997, 111쪽. 조선인이 학교를 졸업한 뒤 취업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여성은 더 심하였다. 그러나 이미 가정 안에서 삼종지도를 따라야 하는 삶을 거부하던 많은 여성에게 교육은 그나마 탈출구 역할을 하였다.

사립학교 위주의 교육 환경과 지방의 학교 공급 부족 현상으로 배우고자 하는 학생은 서울로 올라왔다. 배우고 싶은 욕구에 차 있던 소녀들에게 진학의 기쁨은 “개성에서 가서 공부를 해라 하는 아버지의 명령이 내린 때부터 나는 한 십여 일 간 밥도 못 먹고 깃븜으로 양식을 삼엇다.”202)모윤숙, 「고향을 떠나든 그날의 추억」, 『신여성』 1933년 2월호, 68쪽.고 할 만큼 집을 떠난다는 두려움을 앞섰다.

이렇게 진학을 위해 도시로 올라오는 소녀들이 늘어나자 집을 떠난 소녀들에 대한 불안은 어린 소녀들을 어떻게 감독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연결되었다.

경성에 잇는 학생은 자긔 가뎡에서 부형이 즉접으로 감독을 하는 까닭에 여러 가지의 제재가 잇고 따라서 풍긔 문데가 비교적 적지만은 디방에서 온 학생은 학교의 긔숙 생활을 하거나 일가친척의 집에 류숙하는 학생을 제한 이외에는 대개가 영업하는 하숙옥에 잇기 때문에 특별한 감독자 도 업고 무슨 제재가 없서서 자긔 자유로 출입도 하고 교제도 하다가 잘못하면 필경 다른 사람에게 유혹이 되야 몸을 타락식히는 일이 종종 잇다.203)일기자(一記者), 「여성 평론─디방에서 온 학생은 엇더하게 감독할가─」, 『신여성』 제4권 제4호, 1926, 16쪽.

여성이란 존재는 불완전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보살핌과 감시 없이는 온전히 살아가기 어렵다고 여겼다. 사회와 남성의 걱정은 여성이 많이 배운다는 데 대한 두려움에 앞서 소녀들이 집을 떠나 이제까지 ‘특별한 감독자’였던 아버지와 오빠의 감독과 감시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연약한’ 소녀를 혼자 살게 내버려 둔다는 것은 결국 여성이 자유를 알게 됨을 의미하였고, 자유는 곧 유혹에 견디지 못하는 육체의 타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곁에 두고 감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차선책이 필요하였다. 차선책으로 강조된 것이 학교 기숙사였다.

남녀 학생의 풍긔 문제는 사회 문제가 되기 전에 먼저 가정 문제로서 각기 부형된 이들이 학생의 학교와 가정 이외의 시간을 감시하기에 게을르지 말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 지방의 부형들은 긔숙사가 업는 학교는 삼갈 것이요…… 충분한 인격자로서 능히 학생을 지도할 만한 권위와 성의가 잇는 이를 택해야만 할 것이다.

돌보아 줄 친척도 없이 올라온 지방의 소녀들을 하숙시키거나 혼자 생활하게 하면 반드시 폐해가 일어날 뿐 아니라 그것은 더 나아가 교육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현모양처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훈육을 받아 자연스럽게 체득하였지만, 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이러한 몫을 일정 정도 학교가 맡게 되었다. 혼자서 생활한다는 것은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일 뿐 아니라 결국 여성이 주체적으로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자립적이고 정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여성은 현모양처가 될 수 없었다. 집을 떠나 자신의 정체성 실현에 기뻐하였던 여학생과 아버지를 대신해 소녀들을 감시해야 하는 학교 사이에는 이미 갈등이 내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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