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3장 무식하면 짐승과 같습니다
  • 4. 교육을 통한 신사임당 만들기
  • 생활관
김정화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배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 아이들은 학교 말고도 가정에서 따로 받아야 할 교육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점차 학교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정에서의 교육에 비해 높아져 가면서 특히 여성에게는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생활 교육을 이제는 학교에서 맡아 하였다. 이상적인 여성상은 여전히 가정주부라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그러한 생각은 학교 교육에 여실히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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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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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과 부덕이라는 특유의 역할을 담당할 여성을 양성하자는 교육 원칙은 도의 교육(오늘날 도덕 교육)과 맞물려 전개되었다. 6·25 전쟁 뒤 문교부는 ‘사회도덕의 타락과 학생 풍기의 문란’에 대처하여 도의 교육을 더욱 강화하였다. 도의 교육의 제창이 여성 교육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그 교육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그 제도의 실시 자체가 여학생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감시·통제하고 여성을 사회적 규제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 있었다. 여학생의 생활 지도를 위한 담당 장학사 회의에서는 “부박(浮薄)한 허영에 급급하여 여성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는 예가 허다함에 비추어 각 급 학교로 하여금 생활 지도관을 시설케 하고 부덕을 연마시키기 위한 방안”을 심의하였다. 그리고 각 학교에 여학생 생활관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부덕을 가르치기로 결정하였다.246)이임하, 앞의 책, 29∼30쪽.

이러한 인식을 몸에 익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 생활관이었다. 생활관을 만든 목적은 분명하였다. 생활관 실습을 통해 “작게는 바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슬기롭고 예절 바른 학생으로, 크게는 장차 2세 국민의 역군이 될 수 있는 참되고 알뜰한 현모양처”를 길러 내는 것이었다.

<표> 1965년 중앙 여자 중고등학교 생활관 일과표
일자 지도 내용 실습 내용
제1일 입주식, 가족 상호 간 예의 및 자기소개, 책임 분담 및 짐 정리, 이불깃 시치기 걸음걸이, 말씨, 문 여닫기
제2일 식단 짜기, 조리 시 주의점, 각 방의 사용법 양식탁 다루기
제3일 어머니께 편지 쓰기, 남녀 교제 문제 차 다루기
제4일 한복 입기 및 한식 예절 절 배우기
제5일 손님 초대법, 다과상 차리기 꽃꽂이
제6일 가정 관리(주택 미화, 정리 정돈의 습관화, 가계부 토의) 반상 다루기, 과일 다루기
제7일 식기 소독, 가정 오락 전기 용구 다루기
제8일 몸가짐 오버, 넥타이, 두루마기, 기타 물건 다루기
제9일 어머니 모시고 생활 발표 선물 포장
제10일 실습 반성과 평가, 퇴소식  
✽『중앙 60년사』(이임하, 『계집은 어떻게 여성이 되었나』, 서해문집, 2004, 36쪽 재인용).

생활관 교육은 5박 6일 정도의 일정으로 생활관에 입소하거나 낮에는 수업을 받고 저녁에는 실습을 하면서 생활관에서 잠도 자는 형태로 운영되었는데, 학생들은 생활관에서 의식주 생활 관리, 전통 예절 등을 실습하였다. 밥도 짓고, 한복을 입고 절하는 법도 배우며, 이불도 시치고, 꽃꽂이도 해보는 이른바 현모양처의 주부 수업이 내용의 주종을 이루었고, 가족의 역 할을 분담하여 아버지, 어머니, 언니, 동생 등의 역할과 식사 당번, 상 차리기, 장보기, 청소 당번 등으로 역할을 나누어 교대로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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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관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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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백합당에서의 실습은 추억에 남는다. 주부로서의 부덕을 배우기 위해 집을 떠나 직접 계획을 세워 생활하고 또 오랜만에 단체 생활을 하니 재미있기도 하였다. 너무 피곤해서 단잠을 자다가 부엌에 있는 솥의 물이 다 닳아 나무 솥뚜껑이 다 타던 일, 시장을 보러 가서 몰래 군것질을 하던 일, 자라는 시간에 안 자고 몰래 있다가 선생님께 혼나던 일, 밤에 운동장으로 빠져나가 밝고 둥근 달을 바라보며 낭만을 만끽하던 일…… 시어머 니처럼 무섭게 우리를 가르치시던 지도관 선생님 밑에서 토끼 모양 사과의 토끼 귀는 왜 그리 잘 부러지는지…… 지내 놓고 보니 소녀 시절의 추억들이라서 아름답기만 하다.247)서정임(40회), “때묻지 않은 소녀 시절의 추억”, 『경북 여고 70년사』, 경북 여자 고등학교, 1999, 442∼443쪽.

생활관 교육은 여학생이 미래의 주부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다. 생활관의 설립 목적에 대해 ‘가정교육의 미비점 보완’, ‘참된 생활인의 자질 함양을 위한 산교육을 위해’, ‘환경을 개척할 수 있는 생활의 창조자로서 현대적 의미의 여성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러나 결국 생활관 교육이 주력한 것은 앞으로 여학생이 삶을 영위할 곳이 가정이라는 전제 아래 미래의 주부로서의 역할을 원활히 수행하도록 가치관 확립을 돕고, 가정 실습을 해보도록 하는 가정생활 관리 교육이었다.

<표> 여수 여자 고등학교 생활관 일과표
시간
일자
15:30∼16:30 16:30∼17:30 17:30∼18:30 18:30∼19:00 19:00∼20:00 20:00∼21:00
제1일 가정 관리
(당번 활동)
식생활 실습 식사 예절
(중국식 조리)
명상의 시간
(정재순 효행)
충효 사상 슬라이드 교육
(육영수 여사 등)
제2일 가정 관리
(당번 활동)
식생활 실습 식사 예절
(서양 조리)
명상의 시간
(조이심 할머니 행적)
주부의 기능 슬라이드 영화
(생활 예절 겨레의 슬기)
제3일 가정 관리 식생활 실습 식사 예절
(한식 조리)
명상의 시간
(인정의 샘)
국난 극복사 영화 교육
(의지의 여인)
✽이양훤, 「생활관 운영의 실제」, 『교육 전남』 36, 1978, 52쪽.

이것은 남학교의 생활관이 전인 교육의 구현을 위한 하나의 장으로 설립이 추진되었던 점과는 대조를 이룬다. 1971년 설립된 경기 고등학교 생활관의 설립 목적은 “전인 교육의 구현을 위한 한 방책으로 학교들이 숙식을 같이 하는 공동생활을 영위케 함으로써 우의와 협동 정신을 북돋우는 한편 교과 이외의 각종 교양과 예절을 체득하게 하여 진정한 민주 시민, 훌륭 한 경기인으로서의 자질을 한층 높이고자 구상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248)한국 여성 개발원, 『한국 여성 교육의 변천 과정 연구』, 한국 여성 개발원, 2001, 331쪽. 여학교 생활관이 ‘가정에서의 생활인의 양성’을 목적으로 한 것과는 달리 남학교 생활관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일을 담당할 수 있는 시민 양성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현대적’ ‘새로운’ 의미의 현모양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성의 역할은 딸·아내·며느리로 한정되었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현모양처를 육성한다는 생활관의 교육 목표에 충효(忠孝) 교육이 더해졌다. ‘충효 교육’은 전통적인 충과 효를 근본으로 거기에 안보 교육을 통해 애국애족하는 국민정신 교육을 실현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공간으로 생활관이 활용되었다.

생활관에서는 음식 만들고 절하는 예법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충성하는’ 신사임당을 만들기 위한 심성 훈련을 강조하였다. 죽음으로 효도를 다한 정재순 군에 관한 녹음을 들으면서 스스로 효행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영화 ‘겨레의 슬기’를 보면서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꽃피어 난 충효 정신을 통해 ‘국적 있는 교육’249)한국 여성 개발원, 『한국 여성 교육의 변천 과정 연구』, 한국 여성 개발원, 2001, 331쪽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면서 국가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을 키워야 했다. 또한 육영수 여사가 소박하고 성실한 내조자로서 한국의 전통적 주부상에다 사랑과 봉사에 바친 충효 정신의 모델로 교육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항상 생활관 생활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여 교육의 목적을 스스로 내면화시키도록 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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