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3장 무식하면 짐승과 같습니다
  • 5. 군사 훈련장으로 바뀐 운동장
  • 체육 교육의 시작
김정화

스포츠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이른바 애국 계몽 운동기에 부국강병과 민족 독립을 이루는 수단으로 국민 건강과 신체 단련이라는 명분 아래 장려되기도 하였지만 스포츠를 통해 조선 민중의 비판 의식을 약화시키려던 일제의 정책적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회적 규율을 익숙하게 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원칙과 규율을 통해 지배 방식을 재생산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용하였다. 즉 흩어져 있는 대중을 일사분란하게 지배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과정으로서 체육이 장려된 것이다.250)김진송, 『서울에 딴스홀을 허(許)하라』, 현실 문화 연구, 1999, 157쪽.

체육은 학교의 역사와 함께 발전하였고, 시대에 따라 학교 체육의 역할과 의미는 바뀌어 왔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팽배해 있던 제국주의 시대 체육은 신체의 단련과 정신적 건강을 도모하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운동 경기는 승리에 대한 의식을 잠재적으로 각인시키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세계열강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튼튼하고 건강한 신체를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화 학당에서 처음으로 손을 번쩍 들고 다리 가랑이를 벌리며, 뜀질을 시키는 체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체조는 당시 윤리 문제로까지 비약되어 큰 말썽이 되었다. 당시 반상(班常)의 구별이 심한 가문에서는 여자가 걸을 때 발꿈치를 발끝까지의 길이 이상 발을 떼어서는 상스럽다 하여 엄하게 걸음걸이를 다스렸던 판국에 체조 시간에 여학생이 다리 가랑이를 번쩍 든다는 것은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학부형은 하인을 시켜 딸을 업어 내오기에 바빴고 체조하는 딸 때문에 가문 망쳤다고 가족회의를 여는 일까지 일어났다.251)이화 70년사 편찬 위원회, 『이화 70년사』, 이화 70년사 편찬 위원회,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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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의 체육 활동
여학생의 체육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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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문화 충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완화되었고 학교에서는 정신적 개발뿐 아니라 육체적 발육도 균형 있게 키워야 한다는 관점에서 학생에게 체육 교육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여학교에서도 매년 운동회가 열리게 되었고 각종 체육 대회에 많은 여성이 참여하였다. 운동회에서는 달리기, 뜀뛰기, 공 던지기, 멀리뛰기를 실시하여 여성의 신체에 대한 보수적인 사고에 변화를 주었다.

근대 의식이 부족한 여성을 개화하고 계몽하는 데 역점을 둔 체육 활동은 근대 사회의 교육장 역할을 하였다. 여학생은 운동 경기를 통해 협동과 책임, 규칙을 준수하는 근대적 규율을 학습하였다. 더불어 여학생 체육 교육은 “단아전아(端雅典雅)한 자태 동작의 수련과 쾌활 명랑한 기품 및 인고지구(忍苦持久)의 체력 양성을 주안”252)진명 여자 중고등학교, 『진명 75년사』, 진명 여자 중고등학교, 1980, 126쪽.으로 이루어졌다. 체력은 국력이고 여성의 체력 향상은 곧 어머니의 체력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여학생의 체육 활동을 국가적으로 장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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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 응원
정구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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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수업 시간표를 통해 근대적 시간관념을 학습하듯이 체조를 통해 분절된 신체와 통일된 움직임 속에서 집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는 훈련을 받았다.253)이승원, 앞의 책, 198쪽. 학교끼리 시합을 할 때 선수는 물론 학생도 경쟁적으로 선배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응원하였다. 이런 체육 활동을 학교와 국가는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여성에 대한 체육 활동의 장려는 한편으로 민족주의적으로, 다른 한편으로 식민지 도구로 기능하였다. 여성의 건강한 신체에 대한 관심은 국민의 건강과 연결되어 사고되었다. 여성에게 있어 체육 활동은 건강한 국민 2세를 생산한다는 관점에서 더욱 강조되었다. 여성의 신체는 어려서부터 건강하도록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의 행복은 모성의 건강과 직접 관계가 있으며 여성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보건의 책임과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체육 문제를 부분적 선수 양성에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생활화해야…… 여자 체육 문제는 단 한 사람의 허약한 것을 행복케 하는 것이 아니고 일가(一家)의 번영과 일족(一族)의 소장(消長)을 돕는 것이다.254)김영애, 「여자와 체육」, 『신동아』 29호, 1934년 3월호 : 김경일, 앞의 책, 206쪽 재인용.

이러한 사고는 1930년대 후반 전시 체제에 들어서자 여성 동원이라는 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렴되었다. 여성의 건강한 신체는 곧 노동력이었으며, 건강한 일본 제국의 신민을 재생산해야 하는 존재였으므로 여성의 체위 향상과 보건을 위한 체육 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국가적 차원에서 강조되었다. 식민 통치자들은 체력 단련을 국력 배양의 지름길이라 하여 식민 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초 공사로 보고 있었다. 개인의 신체마저도 각 자의 사유가 아닌, 군대와 같이 일본 천황의 소유라고 인식하였기 때문에 그 관리에 힘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교육은 지식뿐 아니라 신체적 영역까지 훈육하는 것이었고, 여기에 체육 교육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었다. 체조를 중심으로 한 체육 교육은 반복적 훈련과 집단적 활동을 통해 권위와 규율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시키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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