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4장 반비간에서 주방으로
  • 1. 부엌데기, 솥뚜껑 운전수, 주부
김춘수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가정주부 혹은 주부라는 용어는 은밀한 구석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전업 주부, 가정주부, 주부라는 용어를 쓰다가도 뒤돌아서면 부엌데기, 솥뚜껑 운전수라고 얕잡아 부른다. 주부는 사전적으로 가정의 살림을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을 의미한다. 반면에 후자는 전혀 그렇지 않은 비속어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주부라는 용어는 아주 최근에야 쓰기 시작하였다. 이 용어의 사용은 부엌이라는 여성 노동의 공간이 변화하고 부엌과 관련한 담론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되고 탄생하였다. 부엌에서 하는 노동의 내용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아주 먼 옛날 공동체 안의 서열에 따라 불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의 순서가 정해졌던 시기에, 부엌은 바로 불이 있는 곳이었다. 부엌은 다른 공간과 크게 구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생존 수단인 불과 열이 있는 부엌의 소유 여부가 공동체 안의 권력 소유 여부를 상징하였다. 계급·성의 분화는 불의 사용 공간인 부엌의 주인을 변화시켰다. 취사와 난방이 다른 공간과 구분되면서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노동과 노동의 담당자도 분화되었다. 이들은 낮은 신분이거나, 여성이기 쉬웠다. 부엌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의 담당자가 낮은 신분이거나 여성이라는 점은 부엌이 집의 중심에서 벗어난 외진 곳에 위치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부엌은 취사와 저장 노동을 하는 이들의 작업장 노릇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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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의 부엌
삼국 시대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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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은 물 길어 주는 사람, 떡 치는 사람, 불 지피는 사람, 장작 나르는 사람 들의 노동 공간이었다. 특히 전근대 사회에서 서민의 부엌은 여성이 취사 노동과 가내 노동을 하는 공간이었다. 매일의 식사 준비뿐만 아니라 계절마다 장 담그기, 젓갈 담그기, 김장 담그기 등의 저장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한 해의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일은 부엌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손을 보지 않은 먹을거리 재료를 보관하고 일차 손을 보는 일은 부엌 주변의 앞·뒷마당 혹은 창고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부엌은 불과 솥이 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창고나 장독대 등의 저장 시설까지 포함하였다. 더불어 부엌은 여성의 노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사 노동281)현대 산업 사회에서 가사 노동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일반 노동과 달리 가족원의 욕구 충족을 목적으로 하므로 사적인 노동으로서의 성격이 크다. 그러나 전통 사회에서는 사적인 성격과 조세 납부, 시장 교환 등의 공적인 성격이 혼합되어 있었다.의 장이었다.

여성의 노동 공간으로서 부엌은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 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부엌을 둘러싼 문화는 노동 주체의 변화, 설비와 연료의 변화, 주택 내의 위치 변화와 관련하여 시대마다 역사성을 갖는다. 근대 이후 반비간(飯備間)에서 현재와 같은 주방에 이르는 부엌 형태의 변화, 취사 노동을 포함한 가사 노동의 형태 변화, 부엌 노동의 담당 주체의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근대 이후 여성의 노동을 둘러싼 담론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여성이 자신의 노동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변화시켜 왔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또한 부엌의 변화는 도시화·산업화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근대 이후 부엌은 작업장이 아니라 사적인 공간으로, 주부의 공간으로 창조된다. 1960년대까지 도시의 중산층 가정에는 대부분 식모(食母)가 있었다.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가정부(식모)를 없애고 주부가 직접 부엌일을 하도록 권장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주부’는 어떠한 조력자도 없이 혼자 힘으로 부엌일을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였으며, 이 과정에서 부엌은 가정주부를 중심으로 한 근대 가족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과정과 짝을 이루었다. 근대 가족의 탄생에서 부엌은 어떻게 일컬어지고, 부엌에서 일어나는 여성의 노동은 어떻게 의미화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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