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5장 붓그러하면 큰 병이 생깁니다
  • 2. 근대적 신체와 월경
  • ‘처녀기’의 징조
김미현

월경에 대한 소개와 정보는 주로 신문의 가정란, 여성 잡지의 의학 상담란을 통해 제공되었다. 월경은 ‘여성의 임무’인 출산을 하게 하는 신비한 현상으로서 설명되었고, 여성 자신의 건강과 자손에게 영향을 준다는 관점에서 그 관리법이 소개되었다. 주의 대상은 여학생이나 처녀이기도 하였고, 자녀의 성적 변화에 주의해야 하는 부모이기도 하였으며, 남편과의 행복이나 임신을 걱정하는 부인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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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을 신경 쓰게 된 배경에는 기계론적 신체관에 근거해 여성의 경험과 몸을 파악하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었다. 여성의 생식기에서 모든 ‘여성성’이 연원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자연적으로 부인에게 부과하고 있는 생식 현상이 무엇에서 시작하여 어디서 끝난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상식을 갖추는 일”로 간주되었다. 난소, 나팔관, 자궁, 질은 임신과 관련한 기능을 중심으로 설명되었다. “란소에 나타나는 것은 전신적으로 여자의 특징을 표현하는 것이요. 고환으로부터 되는 것은 남자의 모든 특증을 나타내는 것이올시다.”라는 식의 기능 설명이었다.357)문인계(文仁桂), 「홀몬의 생리(生理)」, 『여성(女性)』 1권 1호, 1936년 4월. 28쪽. 남성과의 차이는 생식기를 중심으로 이해되었고, 여성 신체를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남성과 대비하여 파악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여성은 ‘월경’과 ‘출산’을 통해서 이해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성 생애를 생식 현상을 기준으로 나눈 시기 구분론도 등장하였다. 일본에서는 이미 1910년대에 ‘여성의 위생’ 차원에서 이런 시기론이 나오고 있었고 조선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 논자에 따라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유년기(소녀), 춘기 발동기(처녀), 생식 성숙기(부인), 갱년기(주부), 노년기(노파)로 나눴고, 각각의 시기가 갖는 특성을 규정하였다.

이러한 구별이 생기는 것은 생식선인 난소 기능에 좌우되는 바이요, 남자에 있어서는 이러한 구별을 볼 수가 없다. 이상에 말한 다섯 가지 시기 중에서 성 성숙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요. 이때에 여러 부인병도 많이 생기게 되는 것…….358)정근양(鄭槿陽), 「성 생리학 2」, 『여성』 1권 7호, 1936년 10월.

남자에게는 볼 수 없는, 여성의 ‘생식기’에 준거한 이러한 구분은 ‘자연적으로’ 여성에게 부과된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자연적’으로 부과된 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며, 이를 통하여 ‘여성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겼다.

특히 ‘처녀기(춘기 발동기, 파괴기, 사춘기)’는 여성의 생식과 관련하여 중요한 시기로 부각되었다. ‘처녀기’의 배란 기능, 성적 특징의 발달과 월경 개시를 이른바 3대 현상으로 설정하였다.359)태극(太極), 「처녀 시대의 위생」, 『동광』 22호, 1931. 따라서 이 시기의 여성은 성욕, 생활 태도, 정신 상태 등 모든 면에서 주의 깊게 통제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부인 인생의 회전기임으로 신체상에던지 정신상에던지 부인의 신상에 대변화가 기하나니…… 부인의게는 가장 중대한 시기인즉 기양친(其 兩親)되는 이는 기신체(其身體)와 정신에 비상한 주의를 가하야 보호 교도하지 안으면 일생에 불행을 주나니라.”360)우곡생(愚谷生), 「월경론(月經論)」, 『여자계(女子界)』 3호, 1918년 9월호, 48∼49쪽.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 ‘처녀기’는 당시 논자에 따라 연령이나 명칭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13∼14세에 시작된다고 보기도 하고, 17∼18세부터 20세 안팎의 시기라고 보기도 하였다.361)태극, 「처녀 시대의 위생」, 『동광』, 1931.6 ; 김승식, 「처녀 시대의 심리 2」, 『신여성(新女性)』, 1926.10. 이명선, 앞의 글, 111쪽 재인용.

남자에 있어서는 사춘기에 도달한 때의 표준되는 목표를 세우기가 곤란하나 여자에 있어서는 명백하게 그 시기를 도달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니 그 표준되는 목표는 곧 첫 월경이라고 할 수가 있음니다.362)김석환(金錫煥), 「사춘기(思春期)의 의학적 지식」, 『여성』 3권 5호, 1938년 5월.

앞과 같은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월경은 소녀가 처녀기로 들어가는 징조가 되었다. 이렇게 월경은 ‘여성성’을 가시적으로 증빙해 주는 주요 징표가 되었다. 월경이 시작되는 ‘처녀기’가 여자다움의 시초로, 반대로 완경은 여자다움의 끝으로 설명되었다. 월경의 시작을 ‘춘기 발동기’라는 이름으로 표현한 것처럼, 완경은 ‘월경 폐지기’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었다.

‘폐경기’라는 명칭 자체가 말해 주듯이, 이것은 “난소의 작용이 점차로 쇠약해지며 따라서 월경이 폐지되고 만” 시기로 정의되었다. 게다가 “성욕도 점차로 감퇴되고 기억력이 나뻐지고 감격성도 무디고 여자로서의 의의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며, 여성 몸의 ‘쇠퇴’이자 ‘여성성’의 상실로 선포하였다. 또한 “불면증도 오고, 소화도 불량해지며 변비증도 오게 된다. 정신상으로는 매우 신경질이 되고 히스테리성을 띠이게 되고 두통 요통이 온다. 질투심이 생기고 남을 의심하는 성질도 생기게 된다.”며 병리학적 현상으로 간주하였다.363)정근양, 「성 생리학 2」, 『여성』 1권 7호, 1936년 10월.

월경의 시작을 ‘여성성’의 시작으로 연결시킨 만큼 완경은 그 반대에 놓였다. “이거슨 생식선이 노쇠된 증거이올시다. 이 시기에는 정신이 과민하며 복통 요통 그 외에도 여러 증세가 잇슴니다. 월경이 전체 폐지되면 여 자다운 자세가 업고 남자갓든 점이 만흠니다.”364)여의사 길정희(吉貞嬉), 「월경(月經)과 위생(衛生)」, 『여성지우(女性之友)』 1권 2호, 1929년 2월, 106쪽.라고 하였다. 월경이 없어졌다는 것은 난소 기능의 쇠퇴로 이해되었고, 이러한 “생식선의 발육 부전(不全)과 불건(不健)은 청춘미의 대손상이 될 뿐 아니라 정신적 방면에도 다대한 악영향이 파급되어 남자는 남자다운 용감한 정신이 절무(絶無)되고 여자는 여자다운 우미의 성격이 소멸되는 것”이라는 이해 방식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365)의학 박사 경성 제대 강사 이갑수(李甲洙), 「청춘미 영구 보존법(靑春美永久保存法)」, 『여성』 4권 1호, 1939년 1월. 특히 완경에 대한 이러한 비유와 설명은 지금도 유통되는 ‘의학적 상식’의 어투와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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