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5장 붓그러하면 큰 병이 생깁니다
  • 4. 생리 휴가가 상징하는 것
  • 전시 체제기 여성 노동자의 신체
김미현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고,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이 실시되는 등 전시 체제가 강화되면서 일제는 조선 여성을 여러 형태로 동원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남성 노동력을 대신하는 여성 노동력의 동원을 본격화하였고, 조선 여성에게 일본 여성의 ‘부덕(婦德)’을 본받아 ‘어머니’이자 ‘부인’으로서 전쟁에 협력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조선 여성이 각종 공장, 광산, 농촌에서 노동력을 동원당하였던 것과 달리 신문 지상을 통해 볼 수 있는 자본가나 남성 지식인의 논의에는 여전히 ‘국민을 낳는 모성’을 우선시하면서 여성이 모성을 파괴한다는 우려가 많았다.

화신 백화점 박흥식 : 여성 직업에 따른 여러 문제가 있으니, 보건 문제, 자녀 교양 문제, 풍기 문제이다. 여성을 사용하는 고용주가 보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근무 시간을 남자보다 단축하게 하고, 격렬한 노동을 피하게 하고 위생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원칙상 자녀 있는 여성의 직업 종사는 찬성할 수 없다. 제2 국민인 자녀 교양에는 어머니가 제일 필요한 것이다. 될 수 있는 한 어머니는 자녀에게 일신을 바쳐야 한다. 그리고 여자로서 직업에 종사하는 자존심과 자긍심을 가져 외부의 유혹을 방어하여 풍기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경성 부민 병원 윤태권 : 여성의 천직인 월경, 임신, 분만, 산욕이 아무리 여성의 생리적 현상이라 해도, 정신과 육체를 쓰고 있는 남자의 직업을 여자가 하게 되면 생리적 현상은 병적 현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여자가 자신의 직업에 따라 여러 자세를 강제적으로 취하게 되든지, 공장의 유독 가스, 버스, 승강기 속에서 일을 하면 골반 속에 있는 장기에 영향을 받아 자궁병, 유산, 조산, 이상 분만 등이 생기는 이유가 된다. 미성년 여자는 척추가 구부러지던지, 생식기 발육이 불완전하게 된다.415)『동아일보』 1936년 1월 14일자.

‘여성 직업의 재검토’라는 난을 통해 소개되는 이러한 내용을 보면, 여성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황국신민’으로서의 의무를 강요하는 현실의 한편으로, 노동 시장에서 여성을 쫓아내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 노동자의 신체론이 공존하였다.

전시 체제기 일본 내에서는 월경을 병리화하면서도 노동 현장에 노동 의학적인 감시와 보호가 필요하다는 노무 관리론이 나오고 있었다. 여성에게 노동력과 재생산력이라는 이중의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공장 내에서 관리와 보호를 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보호’와 ‘감시’의 맥락은 조선에서는 심각한 실태 정도로 소개되었다.

한 신문 기사는 공장의 장시간 노동으로 ‘전시무월경(戰時無月經)’처럼 ‘노동무월경’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회복하기도 어렵다는 노동 과학 연구소의 조사 발표를 인용하고 있다. 결국 덧붙이는 것은 여성이 중공업에 진출하기를 바라는 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하나의 우려뿐이다.416)『조선일보』 1940년 6월 1일자 ; 『만선일보』 1940년 6월 7일자.

전시 체제기 조선 내 신문을 보면 여성의 모성을 강조하면서 남성과의 차이를 강조하고 직업에도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논리가 유행하였다. 여성이 체력적으로 남성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을 키·체중·가슴둘레·폐활량 등의 수치 통계로 증명하였고, 유순·온량·인종·희생·모성애 등이 여성의 성격적 특성으로 설명되었다. 또한 버스 차장, 백화점 점원, 메리야스 공장의 여공 등 종일 서서 일하는 이들은 자궁 후굴, 자궁 하수증, 월경 불순, 월경 정지가 발생한다고 소개하였다.417)『동아일보』 1939년 8월 8일자.

전시 체제기 여성에게는 국가에 충성하는 모성이 강조되면서, 한편으로는 이와 상반되는 노동 동원이 전개되었다. 다산 장려와 연결된 모성 보호도 일본에서는 정책적 뒷받침이 있었던 것과 달리 조선에서는 구호로만 강조되었다. ‘건강한 몸으로 수태하여 건강한 제이 국민을 출생함은 여성의 귀한 천직이며 총후(銃後) 여성의 책무’라고 하는 가운데, 여성에게 알맞은 운동도 따로 설정되었다. 여성 노동자에게 월경은 작업 능력 감퇴증을 일으키며, 배구, 축구, 기계 체조 같은 운동은 피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운동은 여성에게 성욕 감퇴, 유산, 피로 등의 정신 긴장과 충동성을 유발시켜 임신 중절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곧 여성의 몸은 출산과 관련된 생식 문제만 주목받게 되고, 이를 중심으로 여성에게 적당한 것과 적당하지 않은 것이 규정되었다.418)『매일신보』 1942년 10월 2일자. 이전에도 여성에게 적당한 운동은 과격하지 않고 근육을 많이 쓰지 않는 종목이 추천되었다. 그러나 1931년경에는 운동이 복근을 강화하여 해산을 쉽게 한다고 설명되었던 것이,419)『동아일보』 1931년 11월 20일자. 근육 강화는 해산을 곤란하게 한다는 설명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모성 논의가 여성성을 새롭게 강조하는 만큼 여성 노동은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설명되기 일쑤였으나, 이는 조선 여성의 노동력이 각 방면에 동원되던 현실과는 유리된 것이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