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4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 제1장 고대의 무기와 무예
  • 1. 고대 무기의 기본
  • 선사시대의 싸움 도구와 전쟁의 초기 형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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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각종 무기
선사시대의 각종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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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유물 중에서 주먹도끼, 돌날, 돌화살촉, 돌도끼, 돌창, 간돌칼, 별모양 도끼 등이 원시적 무기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오로지 전투에 쓰기 위하여 만든 병사용 무기라고 할 수는 없다. 아직은 무기로 분화되지 못한 싸움 도구로 볼 수 있는데, 수렵 도구나 공구 겸용으로 사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실전에 적합하지 않은 비실용적 형태를 띠면서 매우 정교하게 만든 간돌칼·간돌화살촉 등은 벽사적·부장적 성격이 강한 의례용 유물인 의기(儀器)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1)국립 대구 박물관, 『사람과 돌』(특별전 도록),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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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간돌칼
각종 간돌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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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돌칼
선사시대 돌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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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알려진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초보적인 형태의 전쟁이 일어난 때는 대략 기원전 7∼6세기경인 청동기시대 중기쯤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한국식 동검으로 대표되는 청동 무기가 다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하고, 나지막한 구릉 정상에 집단 취락이 형성된 이른바 고지성 취락(高地性聚落)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취락의 방호 시설인 환호(環濠)와 목책(木柵) 유적이 종종 발굴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무덤에서 묘역의 규모가 무려 56m에 달하거나 무덤구덩이의 크기가 35평이나 되는 대형 무덤이 발생하는 등 강력한 계급의 발생을 시사하는 여러 징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돌화살촉의 속성 변화는 인마(人馬)를 살상하기에 적합한 무기의 등장을 보여 주는데, 화살촉의 머리가 납작하고 작은 삼각형에서 두텁고 슴베가 달린 버들잎 모양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진주 대평리 유적의 옥방 8지구 5호 석곽묘에서 출토된 간돌칼은 앞부분이 위로 향한 채 비스듬히 세워진 상태로 출토되어 죽은 사람의 몸에 박혔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를 통해 집단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초보적인 전쟁이 이미 있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진주 대평리 옥방 7지구 13호 석곽묘와 창원 덕천리 11호 석곽묘에서 확인된 머리가 잘린 인골과 앞부분이 부러진 채 출토되거나 비정상적인 출토 양상을 보이는 돌화살촉 등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2)이주헌, 「대평리형 석관묘고」, 『경북 대학교 고고인류학과 20주년 기념 논총』, 2000, 105∼107쪽.

이처럼 초보적인 수준이었던 선사시대의 전쟁은 사회 통합과 재편성의 과정이 급속하게 진행됨에 따라 발전을 거듭하여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멸망할 당시에는 동아시아 최강의 한(漢)나라 군대를 맞이하여 1년간이나 항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조선의 결정적인 멸망 원인이 내분 분열에 있었던 사실을 감안할 때, 기원전 2세기경의 전쟁 기술과 그를 뒷받침하는 병기 체제는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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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전기의 철제 무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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