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4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 제1장 고대의 무기와 무예
  • 2. 기마 전투의 성행과 마구·갑옷의 발달
  • 고구려의 기마용 찰갑과 말갑옷
김성태

[고구려의 기마용 찰갑과 말갑옷]31)송계현, 「환인과 집안의 고구려 갑주」, 『북방사 논총』 3, 고구려 연구 재단, 2005. 167∼169쪽 ; 장경숙, 「고구려 고분 벽화에 묘사된 갑주」, 『경주 문화 연구』 6, 경주 대학교 문화재 연구소, 2003, 125∼126쪽.

삼국시대 중기의 갑옷은 고구려 고분 벽화의 갑주 무사상(甲冑武士像)에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갑주가 그려진 벽화 고분은 감신총(龕神塚), 안악 3호분, 통구 제12호분, 마선구 1호분, 덕흥리 벽화 고분, 삼실총, 약수리 벽화 고분, 대안리 1호분, 쌍영총, 안악 2호분 등이다.

이들 그림을 분석해 보면 감신총 무사도의 갑옷은 횡선과 사선으로 표현되어 있어 가죽이나 누비갑옷일 가능성이 있다. 이 밖의 것은 대부분 실물로 출토되는 철제 갑옷편과 비슷한 모양의 찰편(札片)으로 만든 갑옷인 점으로 보아 철제 찰갑으로 판단된다. 고구려 찰갑의 생생한 모습은 삼실총 서벽의 갑주 무사도에서 찾을 수 있다. 기본 구성은 경갑(頸甲), 신갑(身甲), 상갑(裳甲), 대퇴갑(大腿甲), 경갑(脛甲), 상박갑(上膊甲), 굉갑(肱甲)으로 되어 있다. 신체의 곡률에 따라 만든 신체형 갑옷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전신을 무장한 전신(全身) 갑옷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신갑, 상갑, 태퇴갑, 경갑은 비늘 모양의 작은 찰편인 소찰(小札)로 표현되었으나, 상박갑과 굉갑은 소찰이 아닌 민무늬이다. 상박갑은 피혁으로 만들었으며 굉갑은 영남 지방 출토품으로 미루어 철판 두 매를 연결하여 만든 것일 가능성이 있다.

갑옷의 실물 자료는 소찰편만이 확인되어 전모를 알기는 어렵다. 현재 까지 천추총(千秋塚) 등의 대형 고분을 중심으로 소찰편이 출토되고 있다. 소찰의 기본적인 형태는 위쪽은 둥글고 아래쪽은 모난 상원하방(上圓下方)이며 연결 구멍인 현수공(懸垂孔)이 상부의 중앙에 위치한다. 한편 마선구 2100호분과 천추총에서는 금동(金銅)의 소찰도 확인되어 화려한 금동 갑옷도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32)吉林城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集安高句麗王陵』, 文物出版社,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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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주 개마 무사의 복원도
갑주 개마 무사의 복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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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갑과 짝을 이루는 철투구는 종장판주와 소찰주의 두 종류가 대표적이다. 종장판주는 감신총, 안악 3호분, 안악 2호분, 약수리 고분 벽화에서 확인되는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다. 윗부분이 좁고 아랫부분이 약간 넓은 좁고 긴 철판을 여러 개 이어서 몸통을 만들고 정수리 부분에 철사발 모양의 오목한 철판을 덮어씌워서 마무리하였다. 투구의 맨 윗부분에는 대롱 모양의 철봉을 붙이고 그 끝에 깃털 장식을 단 투구도 확인된다. 이 밖에도 통구 12호분, 삼실총, 쌍영총, 안악 2호분 등의 투구에는 뿔과 같은 것이 장식되어 있다. 투구 아래에는 볼을 보호하기 위한 볼가리개와 머리 뒷부분을 보호하기 위한 수미부(首尾部)를 덧붙였다. 소찰주의 기본적인 모양은 종장판주와 비슷하나 오각형이나 사각형의 작은 철판을 이어 붙여서 만들었다. 삼실총 2실 서벽의 무사와 통구 12호분의 무사가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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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 찰갑편
금동 찰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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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의 실물 자료는 대부분 가야 지역에서 확인되었다. 종장판주는 경산 임당 G5호분 출토품을 위시하여 가야 고분에서 다수 확인되나 소찰주는 비교적 드문 편으로 합천 반계제 고분군에서 출토된 것이 대 표적이다. 소찰주 중에는 출토지 미상이지만 금동 투구가 확인되어 금동 갑옷과 함께 금동 투구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상의 종장판주와 소찰주 이외에도 야구 모자 모양과 같이 챙이 달린 차양주(遮陽冑)도 확인되는데, 고령 지산동 1∼3호분과 김해 두곡 43호분 등에서만 확인되었다.33)부산 복천 박물관, 앞의 책, 54∼85쪽.

이런 찰갑과 투구는 중무장 기마 전투에 적합한 등자(鐙子)의 출현과 궤를 같이 하는 점으로 미루어 틀림없는 기마용 갑옷이다. 그리고 이런 갑옷을 입은 무사는 전사 집단(戰士集團)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 전사 집단은 온몸을 갑옷으로 중무장한 개마(鎧馬)를 타고 전장에 출전하였는데, 이를 문헌 속에서는 ‘철기(鐵騎)’라 일컬었으며, 이들 철기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활동하던 삼국시대 중기 전장(戰場)의 총아(寵兒)였다. 철기를 탄 갑주 무사의 생생한 모습은 삼실총의 공성도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찰갑과 함께 신는 전투용 신발이 있었는데, 이를 철정리(鐵釘履)라 부른다.34)김성태, 앞의 글, 2005, 127쪽. 현대 등산용 아이젠과 같은 쓰임새를 지닌 빙판용 신발이다. 이는 삼실총 제2실 서벽 갑주 무사도의 갑주 무사가 못이 달린 신발을 신고 있는 그림을 통해 입증된다. 이런 철정리는 환도산성,35)吉林城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丸都山城』, 文物出版社, 2004. 만보정 151호묘 등에서 출토되었으며, 발에 끈으로 묶어서 사용하는 겨울철의 산성용이었다고 파악된다. 신라·백제 고분에서 출토되는 금동식리(金銅飾履)는 철정리가 장식화·의기화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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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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