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4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 제1장 고대의 무기와 무예
  • 3. 청야수성에 따른 공·수성용 무기
  • 신라의 공·수성 전문 부대
김성태

『삼국사기』 무관조에는 신라의 부대로서 사설당(四設幢)이 있으며, 이 부대에는 쇠뇌를 쏘는 부대인 노당(弩幢),47)김성태, 「한국 고대의 노(弩)」, 『석계(石溪) 황룡혼(黃龍渾) 교수 정년 기념 논총』, 간행 위원회, 1995. 성을 공격할 때 쓰는 긴 사다리 부대인 운제당(雲梯幢), 성벽을 공격하는 부대인 충당(衝幢), 돌을 발사하는 투석기를 다루는 투석 부대인 석투당(石投幢)으로 편제되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48)『삼국사기』 권40, 잡지9, 직관 하 무관. 소속 부대의 명칭으로 짐작컨대, 사설당은 공·수성 무기를 다루는 전문 부대임이 틀림이 없다. 이 부대의 정확한 설치 연대를 알 수는 없지만 558년(진흥왕 19)에 나마(奈麻) 신득(身得)으로 하여금 포와 노를 만들어 국원소경(國原小京)에 설치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볼 때,49)『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진흥왕 19년. 적어도 6세기 중엽에는 노당과 석투당이 창설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라와 백제가 국운을 건 전쟁을 수차례 치른 7세기 중엽에는 운제당과 충당을 설치하였을 개연성이 높다.

사설당으로 대표되는 공·수성 전문 부대는 고구려와 백제에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백제의 공·수성 전문 부대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661년(태종 무열왕 8)에 고구려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술천성(述川城)을 공격하다가 이기지 못하고 옮겨서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치는데 포차(抛車)를 벌려 놓고 돌을 쏘아대니 돌에 맞는 대로 성가퀴와 집이 무너져 내렸다는 『삼국사기』의 기사는 석투당의 존재를 분명히 보여 준다.50)『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8년. 그리고 고구려를 침공한 당 태종이 백암성(白岩城)을 공격할 때, 노의 화살에 맞은 장수 이사마(李思摩)가 흘리는 피를 빨아 주었다는 『자치통감(自治通鑑)』의 기록과51)『자치통감(自治通鑑)』 권197, 당기(唐紀). 고구려가 수나라의 대규모 침공에 대비하기 위하여 중국의 노 제작 기술자를 매수하여 병기를 수리하였다는 『구당서(舊唐書)』의 기록 등은 고구려에도 노당과 석투당이 운용되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52)『구당서(舊唐書)』 권197 하, 열전149, 동이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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