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4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 제1장 고대의 무기와 무예
  • 4. 고대에 틀을 다진 전통 무예
  • 도수 무예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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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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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무사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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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를 들지 않고 맨손으로 적과 대적하기 위한 기초 무예인 도수 무예(徒手武藝)로는 수박(手搏)과 씨름이 있었다. 수박은 주로 손을 써서 상대를 공격하는 도수 무예로, 기원전 1∼3세기경 중국에 권(拳)·박(搏)·권박(拳搏) 등으로 불리는 도수 무예가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적어도 기원 전후에 출현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수박도(手搏圖)가 있어, 4∼5세기경에 이미 수박이 성행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수박도는 안악 3호분, 무용총, 삼실총에서 확인되었다. 이들 수박도 중에서 무용총의 수박도가 가장 사실적으로, 두 사람이 겨루기를 하는 자세가 생생하게 그려져 흔히 태권도의 기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백제의 수박 관련 자료는 최근에 발굴된 백제 금동 대향로의 인물상에서 확인된다. 해당 인물은 향로 몸체의 연꽃잎 상단에 조각되어 있는데, 왼쪽 팔은 펴고 왼쪽 다리는 구부려 힘과 긴장감이 느끼어지는 역동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으며, 거의 벌거벗은 고구려 고분 벽화의 모습과는 달리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있다.

신라에서 수박 관련 자료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조정에서 건장한 장정에게 명령하여 백제 사신에게 상박(相搏)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상박이 고구려·백제·왜 등에서 널리 성행하였고,59)『일본서기(日本書紀)』, 황극천황(皇極天皇) 원년조. 신라 역시 수박희(手搏戲)가 있었을 개연성은 높다고 하겠다. 이런 추측은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로 편년되는 경주 용강동 고분에서 수박 자세를 취한 무사용(武士俑) 세 점이 출토되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 무사용은 진골 신분으로 추정되는 무덤 피장자의 호위 무사로 볼 수 있는데, 세 점 모두 각기 다른 대련 자세를 취하고 있어 수박의 단위 동작을 세심하게 표현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 무사용은 사실적인 입체상으로, 표현이 세밀하여 앞으로 도수 무예 연구에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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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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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에 관한 자료는 장천 1호분과 각저총에서만 확인되며, 문헌에도 특별한 언급은 없다. 이 두 자료 중에서 각저총의 씨름도가 비교적 형체가 뚜렷이 남아 있고 훨씬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선 각저총의 씨름도는 무덤 현실의 오른쪽 벽에 그려져 있는데 큰 나무 그늘 밑에서 두 장사가 씨름에 열중하는 장면을 그렸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장사 중에서 한 명은 고구려인의 보통 얼굴이나, 다른 한 사람은 눈이 크고 코가 높은 서역계 인물인 점이다. 또한 두 장사 모두 상체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이고, 하체에는 반바지류의 옷을 입고 있다. 두 장사 모두 허리와 다리에 오늘날과 같은 샅바를 걸쳐 매고 있으며, 두 손으로 이 샅바를 움켜쥐거나 감아쥐고 있다. 이런 씨름 모습은 오늘날의 씨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천 1호분의 씨름 그림 역시 두 장사가 서로 상대편 왼쪽 어깨에 머리를 대고 오른쪽 어깨는 상대의 왼쪽 갈빗대에 맞댄 채 두 손을 뻗어 상대 등 쪽의 바지 허리춤을 잡고 왼쪽 허벅지는 상대의 사타구니 아래에 이르게 한 자세로 씨름에 열중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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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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