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4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 제3장 부국강병의 토대, 조선 전기의 무기와 무예
  • 1. 부국강병의 길
  • 군사 선발을 위한 무예
  • 씨름
박재광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씨름은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조선 왕조 실록』에서는 왕과 사신들이 씨름 구경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세종대에 씨름에 대한 기록이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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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쾌도(大快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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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년(세종 원년) 6월에 상왕인 태종과 세종이 저자도(楮子島)에 행차하여 중류에 배를 띄우고 종친과 더불어 주연(酒宴)을 베풀고 날이 저문 뒤 강변에서 씨름(角力戲)을 구경하였다.162)『세종실록』 권4, 세종 원년 6월 무자. 또 1431년(세종 13) 3월에는 세종이 경회루에 거둥하여 종친의 활 쏘는 재주를 구경하고 역사(力士) 안사의(安思義) 등으로 하여금 씨름을 하게 한 뒤 차등 있게 상을 주었고,163)『세종실록』 권51, 세종 13년 3월 병술. 같은 달에 모화관에 거둥하여 격구, 활쏘기, 말타기, 모구 등의 경기를 구경하고 그중에서 다섯 명을 뽑아서 씨름을 하게 하고 상을 주었다.164)『세종실록』 권51, 세종 13년 3월 임오. 1436년(세종 18) 2월에도 동교(東郊)에 거둥하여 매 사냥을 구경하고, 군사 중에서 힘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씨름을 하게 하여 이긴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는165)『세종실록』 권71, 세종 18년 2월 신해.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군사 훈련의 하나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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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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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조선시대에 씨름은 왕과 사신들이 즐겨 구경하였고 군사 훈련의 일환으로 활용되었으나, 수박과는 달리 조선 전기에 각종 무사 선발 시험 과목으로 채택되지는 못하였다. 씨름이 손과 몸을 맞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사들의 무예로는 적합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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