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4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 제3장 부국강병의 토대, 조선 전기의 무기와 무예
  • 3. 위기 속의 무기
  • 나는 새도 쏘아 떨어뜨리는 조총
  • 조선 수군의 연승
박재광

임진왜란 초기 육전에서 잇따라 패퇴한 것과는 달리 해전에서는 이순신을 중심으로 한 조선 수군이 연전연승을 구가하였다. 조선 수군이 연승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조선 전기에 지속적으로 발달해 온 대형 화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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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총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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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 수군이 운용하던 거북선(龜船)과 판옥선(板屋船)에는 천자총통·지자총통·현자총통·황자총통·별황자총통 등의 대형 화포가 장착되어 있었는데, 이들 화포의 우수한 성능은 해전에서의 조선 수군의 전술적인 우위로 나타났던 것이다. 당시 조선 수군이 활용한 화 포의 제원과 성능은 표 ‘임진왜란 당시 사용한 대형 화포’와 같다.

이들 화포는 대장군전·장군전 등과 같은 대형 화살(箭)을 사용하였고, 필요에 따라서는 조란탄(鳥卵彈, 새알처럼 조그마한 쇠구슬)을 다수 발사하여 산탄(散彈) 효과를 거두었다. 특히 별황자총통은 총통의 약실 뒤에 손잡이를 끼울 수 있도록 하였고, 총통의 중간 부위에 포이(砲耳)를 부착하여 삼각 다리 형태의 받침대에 거치시킬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는 배의 갑판 등에 고정하여 상하 좌우로 쉽게 운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이다.

당시 일본 수군은 중소형선과 조총을 중심으로 하여 배의 현(舷)을 적선에 붙이고 백병전(白兵戰)을 치르는 전술을 구사한 반면에 조선 수군은 대형 전함의 전후좌우에 장착된 각종 대형 화포를 이용한 함포 전술(艦砲戰術)을 구사하였다. 특히 조선군의 화포는 일본군의 조총에 비해 사거리가 월등히 길어 원거리에서도 적선을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육전과는 달리 조선 수군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표> 임진왜란 당시 사용한 대형 화포
화포 명칭 길이(㎝) 구경(㎜) 발사물(『화포식언해』) 사거리
천자총통 130∼136 118∼130 대장군전 1발
조란탄 100발
900보
10여 리
지자총통 89∼89.5 105 장군전 1발
조란탄 100발
800보
현자총통 79∼83.8 60∼75 차대전 1발
조란탄 100발
800보
1500보
황자총통 50.4 40 피령차중전 1발
조란탄 40발
1100보
별황자총통 88.8∼89.2 58∼59 피령목전 1발
조란탄 40발
1000보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한산도 해전이다. 1592년 7월 8일 이순신은 적 선 70여 척이 거제와 고성의 경계인 견내량에 머무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출전하였다. 당시 견내량에는 일본군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의 함대 73척이 정박하고 있었다. 이에 ‘견내량 지형이 매우 좁고, 또 암초가 많아 전투를 벌이기에 곤란하다.’고 판단한 이순신은 적선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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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총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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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군이 유인 작전에 넘어가 한산도 앞바다까지 쫓아오자 이순신은 함대를 급선회시켜 마치 학의 날개를 펼친 것 같이 전개하여 적선을 포위하는 이른바 학익진(鶴翼陣) 전술을 구사하였다. 이후 조선 수군은 먼저 거북선으로 적진에 돌입하여 공격하고, 모든 전선이 각기 지자총통·현자총통·승자총통 등 대형 화포와 화전을 발사하여 일본 수군을 궤멸시켰다.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와키자카의 휘하 전선 47척을 격파하였고 12척은 나포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렇듯 한산도 해전은 조선 수군의 대승리로서 끝이 났고, 이로써 조선 수군은 해상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전체 전황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한산대첩은 이순신의 탁월한 작전 지휘와 그 지휘를 받은 조선 수군의 눈부신 활약, 거북선·판옥선의 우수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형 화포의 성능이 어우러져 큰 위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이렇듯 조선의 대형 화포는 탁월한 성능으로 해전술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특히 한산대첩에서의 학익진 전법은 후에 영국의 넬슨이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에서 사용하였던 전법이나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이 러일 전쟁 때 대한 해협에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한 전법과 매우 유사한 전술로 서구의 전쟁사가인 발라드(G. A. Ballard)는 고도로 훈련된 정예 함대만이 펼칠 수 있는 것으로 그 기동성은 놀라운 것이었다고 극찬하기도 하였다.225)George Alexander Ballard,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 New York : E. P. Dutton, 1921, pp.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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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역해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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