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4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 제4장 부흥의 초석, 조선 후기의 무예와 무기
  • 3. 표준 무예의 보급
  •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인식
장필기

『무예도보통지』 등 조선 후기 무예 관련 서적은 전쟁 양상의 변화에 따라 새로 고안된 전법에 적합하게 군사를 훈련시키기 위한 군사 훈련용 병서이다.319)노영구, 「조선 후기 단병 전술의 추이와 『무예도보통지』의 성격」, 『진단학보』 91, 진단학회, 2001. 따라서 『무예도보통지』가 당시 통용되던 병법을 정리한 병서인 『병학통(兵學通)』등과 깊은 관련을 가졌음은 당연하다. 이러한 관계는 『무예도보통지』 「병기총서」에 다음과 같이 잘 나타고 있다.

이 책은 이미 여러 선대에서 찬집한 병서를 다 책머리에 실었는데 금상(今上)께서 몸소 편찬한 병서인 『병학통』, 『이진총방(肄陳總方)』과 같이 이미 간행 반포된 것 외에도 내부의 등본도 수십 종이 됩니다. 신들이 차례를 따라 편찬하였는데 상께서 그 일은 과장에 가깝다 하여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지극하도다 성상의 겸손한 덕이시여! 대개 병서에 관해 의논한다면 『병학통』은 진(陣)을 영위하는 강령이 되며, 『무예통지(武藝通志)』는 기격(技擊)의 추축(樞軸)이 됩니다. 대저 통(通)이란 명백하며 해박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체(體)와 용(用)이 서로 기다리며 본(本)과 말(末)이 서로 유지하는 것인데, 병법을 말하는 사람이 이 두 통(二通, 『병학통』과 『무예통지』)을 놓아두고 또한 무엇을 사용하겠습니까. 병법을 의술에 비유한다면 운기(運氣)를 징험하고 경맥(經脈)을 진찰하는 것은 진법(陣法)이요, 초목과 금석(金 石)은 기계이며 삶고, 굽고, 썰고, 가는 것은 치고 찌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320)『무예도보통지』, 병기총서.

『무예도보통지』는 “치고 찌르는 법이 더욱 증보되고 상세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금원(禁苑)에서 하는 훈련의 진정한 교본이 되고 있어 교외 훈련의 지침서가 되고 있는 『오위진병장도설(五衛陣兵將圖說)』321)오위진병장도설(五衛陣兵將圖說)은 1749년에 조관빈(趙觀彬)이 주도하여 편찬한 『속병장도설(續兵將圖說)』을 지칭한다. 과 함께 날줄과 씨줄이 되고 있다.”322)『무예도보통지』, 어제무예도보통지서(御製武藝圖譜通志序). 고 하여 기본적으로 『무예도보통지』는 찌르고, 찍고, 치는 세 가지로 나누어 무예를 서술하고 있다. 찌르는 무예에는 장창·죽장창(竹長槍)·기창·당파·낭선이, 찍는 무예에는 쌍수도·예도·왜검·왜검 교전·제독검(提督劍)·본국검(本國劍)·쌍검(雙劍)·마상쌍검(馬上雙劍)·월도·마상월도(馬上月刀)·협도·등패가, 치는 무예에는 권을 위시하여 곤방·편곤·마상편곤·격구·마상재의 무예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복장에 관한 설명 부분과 각 영(營)의 무예에 대한 차이를 기록한 고이표(考異表)로 되어 있다.

권1에는 장창·죽장창·기창(旗槍)·당파·기창(騎槍)·낭선 등 6기, 권2에는 상수도·예도·왜검·교전 등 4기, 권3에는 제독검·본국검·쌍검·마상쌍검·월도·마상월도·협도·등패 등 8기, 권4에는 권법·곤방·편곤·마상편곤·격구·마상재 등 6기를 싣고 있다.

『무예도보통지』에서 이를 교련하는 기법은 세와 보를 사용하고 있다.

세(勢)는 당순지(唐順之)의 『무편(武編)』에서 한 설명과 같이 “권법에는 세가 있어 그것으로 변화가 있다. 횡사(橫斜, 옆으로 기울이고), 측면기립(側面起立, 옆에서 일어서고), 주(走, 달리고), 복(伏, 엎드리고) 등 모두 울타리와 문이 있어 방어할 수 있고 공격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라 말한다.”323)唐順之, 『武編』, 中國解放軍出版社, 1989.고 하였다. 즉 세란 공격도 할 수 있고 방어도 할 수 있는, 변화하는 자세를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해진 세가 있지만, 사용할 때에는 정해진 세가 없다고 하였다. 이때 세란 단순한 자세가 아니라 공격이나 방어를 할 수 있는 기 술 체계를 말한다.324)김산·공미애, 「임진왜란 전후의 명의 무예서들과 조선의 무예서들과의 기술 방법에 대한 비교 연구」, 『체육사 학회지』 12, 한국 체육사 학회, 2003.

보(譜)는 같은 계통의 사람이나 사물을 차례대로 기재·표시한 목록이나 표, 견본, 본보기를 뜻한다. 실제 『무예제보』, 『무예제보번역속집』, 『무예도보통지』에서 보로 서술되어 있는 부분을 보면 세들의 순서가 적혀 있다. 또한 총보에는 모든 세의 순서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세의 명칭이 순서대로 그려져 있다. 『무예제보』, 『무예제보번역속집』, 『무예도보통지』 등 조선의 무예서에는 각각의 세에 대한 설명보다는 세의 연결성에 대한 서술이 더 많다.

『무예제보』부터 시작한 보 위주의 기술 방법은 『무예도보통지』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사용되었다. 보를 위주로 무예서를 만든 의도는 세에 대한 설명과 그림만 있는 『기효신서』에서는 보를 볼 수 없어서 흐름 전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장창의 경우 24가지의 세가 있는데 훈련 교사가 전수한 것은 그 중 12세뿐이었다. 1595년(선조 28)에 한교가 『살수제보』를 번역하면서 없어진 12세를 별보로 덧붙여 만들어 사졸들에게 수련하도록 하였는데,325)『무예제보』, 무예교전법. 이는 중국의 무술 교관들이 『기효신서』 외의 24가지 세 중 12세만을 가르쳤기 때문에 한교가 나머지 세로 장창후보를 만들었던 것이다.

『무예제보』 다음에 『권보』를 만들면서도 이를 실제에 응용할 수 있도록 보를 사용하였다. 훈련도감에서 각 지역의 군사 훈련에 대하여 논의하는 중에 “대개 이번에 온 교사들은 무예가 특별히 절묘한 사람은 없고 모두 왕대귀(王大貴)와 비등하였는데 혹은 그보다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절병(浙兵)의 각종 무예는 원래 손놀림과 발놀림을 익숙하게 하고 담력의 단련을 힘쓸 뿐이어서 특별한 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 건장한 사람은 잘 운용하여 보기에 좋았습니다. 지금 살수병 중 창선을 다루는 사람이 드물다고 하더라도 보를 아는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각 보를 정밀하게 가르쳐서 익숙하게 단련시키면 법식에 어긋나는 폐단은 자연히 없 어질 것입니다.”326)『선조실록』 권61, 선조 28년 3월 병신.라고 하였는데, 살수병에게 각 보를 정밀하게 가르쳐서 익숙하게 단련시키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이렇게 무예를 수용할 때부터 의도적으로 보를 통한 기법을 사용하고자 하였고, 또 실제 훈련에서도 보를 통한 수련 방법을 쓰기 위하여 『무예제보』에서부터 보 위주의 기술을 시작하였던 것이다.327)김산·공미애, 앞의 글.

<표> 각 무예서의 편찬 내용
무예서 편찬 연도 무예 내용 비고
무예제보 1598년
(선조 31)
곤방, 등패, 낭선, 장창, 당파, 장도 6기
무예제보번역속집 1610년
(광해군 2)
권법, 청룡언월도, 협도곤, 구겸, 왜검 6기
무예신보 1759년
(영조 35)
장창, 죽장창, 기창(旗槍), 당파, 낭선,
쌍수도, 예도, 왜검, 교전, 제독검,
본국검, 쌍검, 월도, 협도, 등패,
권법, 곤방, 편곤
18기
무예도보통지 1790년
(정조 14)
장창, 죽장창, 기창, 당파, 기창(騎槍),
낭선, 쌍수도, 예도, 왜검, 교전, 제독검,
본국검, 쌍검, 마상쌍검, 월도,
마상월도, 협도, 등패, 권법, 곤방,
편곤, 마상편곤, 격구, 마상재
24기
『무예신보』의 18기에
마상쌍검, 마상월도,
마상편곤, 격구, 마상재 등
6기를 더함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편찬된 『무예제보』, 『무예제보번역속집』, 『무예신보』의 성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무예제보』는 보병 중심의 전법을 구사하기 위한 무예로 구성되어 있고, 『무예제보번역속집』은 『무예제보』와는 달리 기병을 상대하기 위한 무예서이다. 이에 따라 한때 단병 무예의 쇠퇴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17세기 이후 화포 등 화약 무기의 발전으로 전쟁에서 전술이 변화하자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경기병(輕騎兵)이 효과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18세기 중후반에 편찬되는 『무예신보』와 『무예도보통지』는 이러한 전법의 변화에 따 른 것이었으며, 『무예도보통지』에 들어 있는 무예들은 이러한 전법상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다.328)최복규, 「무예도보통지 무예 분류의 특징과 그 의미」, 『한국 체육학회지』 44-4호, 한국 체육학회 2005, 50쪽.

또한 화약 무기의 등장에 따라 기존의 장·단병기에 대한 분류도 재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 이상 옛날의 장병기가 장병기 구실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무예도보통지』에서는 무기의 기준을 길고 짧은 것에서 벗어나 찌르고, 찍고, 치는 세 가지로 나누어 새롭게 분류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새로운 분류 체계의 수립에도 불구하고 이후 『무예도보통지』의 실전적 위치는 무예 보급이 날로 쇠퇴하는 시대적 분위기와 함께 저하되었다.

그러나 『무예도보통지』가 가지는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무예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조시대에 확립된 조선 왕조적인 전법 체계의 실제 구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329)노영구, 앞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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