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4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 제5장 국권 수호에 나선 무기와 무예
  • 2. 병서의 재발견
  • 『훈국신조군기도설』과 『훈국신조기계도설』
  • 『훈국신조기계도설』
강신엽

『훈국신조기계도설』(이하 『기계』로 약칭) 역시 신헌이 저술한 무기 관련 서적이다.399)『훈국신조기계도설』 관련 참고 서적은 다음과 같다.
연갑수, 「대원군 집권기 무기 개발과 외국 기술 도입-『훈국신조군기도설』과 『훈국신조기계도설』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학예지』 9(화약 병기 특집), 육군 박물관, 2002.
강신엽 역주, 『조선의 무기 Ⅰ』(훈국신조군기도설·훈국신조기계도설), 봉명, 2004.
철모, 불랑기동거, 거중기 등은 『해국도지』의 영향을 받아 조선에서 제조된 것이고, 무적죽장군(無敵竹將軍)과 육합총(六合銃)은 『무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 밖에 궐장노(蹶張弩), 장창(長槍), 요구창(撩鉤槍), 마상창(馬上槍), 조적등(照賊燈·照跡燈·照寂燈) 등은 전통적인 조선의 무기를 토대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기계』에 수록된 무기를 『무비지』와 『해국도지』에 수록된 무기 내용과 비교해 보면 표 ‘『훈국신조기계도설』·『무비지』·『해국도지』의 수록 무기 비교’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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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국신조기계도설』
『훈국신조기계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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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훈국신조기계도설』·『무비지』·『해국도지』의 수록 무기 비교
훈국신조기계도설 해국도지 무비지
철모  
무적죽장군  
육합총   ○(육합포)
수노기    
궐장노    
장창    
요구창    
마상창    
조적등    
불랑기 동거  
거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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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노기
수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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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장노
궐장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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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869년(고종 6) 철모의 제작은 흥선 대원군 정권의 화약 무기 개발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철모를 이용하여 제조한 화포의 형태는 조선의 주력 화포였던 불랑기와는 달랐다. 그리고 토모(土模)를 이용하였을 때에 비하여 화포의 주물도 훨씬 뛰어났을 것이다. 조선에서 제작된 철모는 『해국도지』의 그것과는 달리 대형 화포보다는 여전히 중소형 화포 위주로 제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계』에서는 『해국도지』의 설명을 요약하여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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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적등
조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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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죽장군은 대나무통을 이용하여 제작한 일회용 박격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화포치고는 가볍고 제작비도 저렴하므로 병사 한 명이 10여 개를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 병사 한 명당 10여 개의 무적죽장군을 휴대하여 층층이 정렬한 후 차례로 발사함으로써 적을 제압하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하였다.

육합총은 여섯 개의 실목(實木)을 조립하고 그 속에 자총(子銃)과 화약을 충전하여 약선(藥線)에 불을 붙여 폭발시키도록 고안된 화약 무기였다. 육지에서는 견고한 군영이나 성채를 공격하는 데 사용하며, 수상에서는 작은 배에 띄워 보내서 적선을 공격하는 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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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랑기
불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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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시류로는 쇠뇌를 제작하였는데, 수노기(手弩機)와 궐장노가 그것이다. 수노기는 화살 수십 시를 저장하였다가 차례로 연발할 수 있으면서도 부인이나 어린아이라도 쉽게 쓸 수 있고, 궐장노는 활이 크고 굳세어서 화살을 멀리까지 발사할 수 있는 쇠뇌이다. 창검류로는 장창, 요구창, 마상창을 제작하였는데, 이에 대한 도해와 제원을 설명하였다.

조적등은 현재 랜턴이나 후레쉬에 해당하는 것으로, 야간에 외출하거나 순라군(巡邏軍)들이 순라돌 때 사용하던 장비였다. 신헌은 이것을 야간에 적진을 기습하거나 도하하는 등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불랑기 동거는 『해국도지』의 마반포거를 응용한 포거이다. 불랑기 동거는 당시 조선의 주력 화포였던 불랑기의 운반이나 발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포거로 제작하였다. 불랑기는 모포(母砲)의 중간에 화약을 장전한 자포(子砲)를 교체하면서 발사할 수 있게 한 포로서 모포 한 좌당 자포 다섯 문를 배치한다. 불랑기 동거는 모포 속에 자포 한 문을 끼워 두고 활거(滑車) 좌우의 등자철(鐙子鐵)에 두 개씩의 자포를 놓아둠으로써 유사시 신속하게 자포를 교체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활거를 이용하여 포를 좌우로 쉽게 움직일 수 있게 함으로써 이전에 비해 불랑기의 활용도를 더욱 높였다.

『기계』에 수록된 거중기는 무기를 이동할 수 있는 장비이다. 신헌의 거중기는 정조 연간에 수원 화성을 건설할 때 정약용(丁若鏞)이 만든 거중기보다 제작이 단순하고 활용이 편리해서 부분도도 필요 없었던 듯하다. 이 거중기는 다섯 개의 도르래를 사용하여 한 곳에서만 작동할 수 있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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