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1장 천문의 관측과 기상의 측후
  • 1. ‘관상’, 천문 현상의 관측
  • ‘관상’의 대상
구만옥

‘관상’의 대상과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우리 조상들이 관측했던 천문 현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전통 사회의 천문 기록에는 당시 사람들의 천문에 대한 인식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통 천문학의 내용은 고려 중기에 정리된 『삼국사기(三國史記)』, 조선 초기에 편찬된 『고려사』, 그리고 조선 후기의 관찬(官撰) 자료인 『증보문헌비고 (增補文獻備考)』와 『서운관지(書雲觀志)』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삼국사기』에는 천문 현상에 관한 다양한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기존 연구 성과에 따르면 『삼국사기』 「본기(本紀)」 가운데 천재지변에 관한 기사는 정치 관련 기사 다음으로 많은 900여 회로 전체 본기 내용의 27.4%에 달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천문 현상에 속하는 것으로는 일식과 혜성·운성 등의 성변(星變), 가뭄·장마·태풍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천재지변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정치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을 비롯한 『삼국사기』의 편찬자들이 ‘상관적 사유’의 관점에서 천재지변과 인간의 정치적 행위의 상호 관련성을 중시하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고려사』 「천문지(天文志)」에 정리된 천문 현상은 다양하지만, 편찬자들은 그것을 크게 일박식(日薄食), 일훈(日暈), 일이(日珥), 일변(日變), 월오성능범(月五星凌犯), 성변(星變) 등으로 분류하였다. 「천문지」의 편찬자는 첫머리에서 “『주역』에서 말하기를, ‘하늘이 형상을 드리워 길흉(吉凶)을 나타내자 성인(聖人)이 이를 본받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노사(魯史)에 인하여 『춘추(春秋)』를 지으면서 일식과 성변을 모두 그대로 두고 삭제하지 않았으니, 이를 삼갔기 때문이다. 고려 475년 사이에 일식이 132회, 월오성능범과 여러 가지 성변이 또한 많았다. 이제 그 역사에 나타난 것을 채집하여 천문지를 만든다.”7)『고려사』 권47, 지1, 천문(天文)1.고 편찬 경위를 설명하였다. 이는 과거 천문 현상의 관측과 기록이 오늘날처럼 순수 과학적인 목적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배경에는 정치적·사상적 필요성이 짙게 깔려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18세기 초에 고려 왕조 475년간의 각종 천문 기록을 종합·정리한 최천벽(崔天璧)의 『천동상위고(天東象緯考)』(1708)에서도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최천벽은 고대 성왕들의 천문 관측이 ‘하늘을 공경하고 세상을 다 스리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자신이 이 책을 편찬하는 이유도 국왕의 ‘수성 격치(修省格致, 수양과 공부)’에 도움을 주고자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8)『천동상위고(天東象緯考)』 서(序). 이는 전통 사회 천문학의 유구한 전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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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상위고』
『천동상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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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문헌비고』 「상위고(象緯考)」에 정리된 역대의 천문 현상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9)『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4∼8, 상위고(象緯考)4∼8.

•일식(日食): 일식

•월엄범오위(月掩犯五緯): 달이 5행성을 가리거나 5행성에 근접하는 현상. ‘엄(掩)’은 한 천체가 다른 천체를 가리는 현상을, ‘범(犯)’은 한 천체가 다른 천체에 가까이 접근하여 황경(黃經)이 같아지는 경우를 말한다.

•오위엄범(五緯掩犯): 5행성이 서로 가리거나 접근하는 현상

•오위합취(五緯合聚): 5행성 가운데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행성이 서로 한곳에 모이는 현상

•오위엄범항성(五緯掩犯恒星): 5행성이 항성에 접근하거나 가리는 현상

•성주현(星晝見): 별이 낮에 보이는 현상. 대부분 금성이 낮에 보이는 경우이다.

•객성(客星): 객성이란 이름은 항성(恒星)과 비교해서 나온 것으로, 현대 천문학의 개념으로는 신성(新星)이나 변광성(變光星)을 뜻한다.

•혜패(彗孛): 혜성이나 패성은 모두 오늘날 천문학에서 말하는 혜성을 뜻하며, 꼬리의 모양에 따라 구분한다. ‘혜’는 꼬리가 한쪽으로 치우친 것, ‘패’는 꼬리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이다.

•천변(天變): 천둥, 번개, 비바람 등의 천변

•일월변(日月變): 태양 흑점의 출현 등 해와 달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

•훈적(暈適): 달무리와 햇무리. 해와 달의 주변에 나타나는 운기(雲氣)를 말한다.

•성변(星變): 별빛이 약해지거나, 색깔이 변하거나, 별빛이 동요하는 현상

•유운(流隕): 유성의 출현

•운기(雲氣): 하늘에 나타나는 이상한 기운. 예컨대 백기(白氣), 적기(赤氣), 흑기(黑氣) 등을 말한다.

한편, 『서운관지』는 1818년(순조 18) 성주덕(成周㥁)이 편찬한 책으로 서운관의 연혁과 기능을 정리한 것이다. 그 가운데 권1의 ‘번규(番規)’에는 서운관의 입직 근무 규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천문학의 경우 세 명이 한 조로 편성되어 밤낮으로 연이어 입직하였는데, 낮 시간과 밤 시간을 균등하게 나누어 관천대(觀天臺)에서 관측에 종사하였다.10)『서운관지』 권1, 번규(番規).

관측 과정에서 이상 현상을 발견하였을 때는 일종의 보고서인 단자(單子)를 기록하여 올렸다. 우리는 그 양식을 통해 당시 천문 관측의 대상을 확 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천문 현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11)『서운관지』 권1, 번규.

<표> 서운관의 입직 근무 규정
1일차(初日) 일출(日出)∼오전(午前) 오후(午後)∼초혼(初昏) 1경(更)∼2경 3경∼4경 5경∼매상(昧爽)
하번(下番) 중번(中番) 하번 상번(上番) 중번
2일차(中日) 일출∼오전 오후∼초혼 1경∼2경 3경 4경∼매상
상번 하번 중번 상번 하번
3일차(終日) 일출∼오전 오후∼초혼 1경 2경∼3경 4경∼매상
하번 중번 하번 상번 중번

•백홍관일(白虹貫日): 흰색 무지개의 기운이 해를 꿰뚫는 현상

•백홍관월(白虹貫月): 흰색 무지개의 기운이 달을 꿰뚫는 현상

•지동(地動)·지진(地震): 땅의 움직임이 급하고 빠른 것을 지동, 완만하고 느린 것을 지진이라 한다.

•객성(客星): 별의 형체가 항성과 다른 것

•혜성(彗星): 별에서 뻗어 나오는 빛의 꼬리가 한쪽으로 치우친 것

•패성(孛星): 별에서 뻗어 나오는 빛의 꼬리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

•치우기(蚩尤旗): 혜성과 비슷한데 뒤쪽이 깃발처럼 굽은 것

•영두성(營頭星): 낮에 떨어지는 별

이상과 같은 현상은 관측 즉시 보고해야만 하였다. 이 밖에 규정에 따라 서면으로 보고해야 할 천문 현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일월식(日月食): 일식과 월식

•일월적색(日月赤色): 해나 달이 뜨거나 질 때 색깔이 붉은 현상

•일월훈(日月暈): 무지개 같은 기운이 해나 달을 둘러싸고 있는데, 안쪽은 붉고 바깥쪽은 푸른 것

•이(珥): 해나 달의 곁에 기운이 귀고리처럼 둥글게 맺힌 것

•관(冠): 해나 달의 위에 기운이 있는데, ‘일(一)’ 자 모양이고 양 끝이 아래로 굽은 것

•배(背): 해나 달의 위에 기운이 있는데, ‘일(一)’ 자 모양이고 양 끝이 위로 굽은 것

•포(抱): 해나 달의 곁에 반훈형(半暈形)의 기운이 있는 것

•경(璚): 해나 달의 곁에 기운이 있는데, 이(珥)와 비슷하나 구멍이 있는 것

•극(戟): 해나 달의 아래에 세워 놓은 창(戟) 모양의 기운이 있는 것

•이(履): 해나 달의 아래에 ‘일(一)’ 자 모양의 기운이 있는 것

•일중흑자(日中黑子): 해 가운데 어둡고 검은 기운이 있는 것

•월오성범식입(月五星犯食入): 달과 5행성의 범(犯)·식(食)·입(入). 한 치 이내로 달과 5행성의 빛이 서로 미치는 것을 ‘범’, 5행성이 달 가운데로 들어갔으나 형체가 보이는 것을 ‘입’, 5행성이 달 가운데로 들어가 형체가 보이지 않는 것을 ‘식’이라 한다.

•태백주현(太白晝見): 금성이 낮에 보이는 현상

•유성(流星)·비성(飛星): 별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유성’,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비성’이라 한다.

•운기(雲氣): 날씨가 맑은 날 흰 구름이나 검은 구름의 너비가 한 자 남짓, 길이나 10여 길 되거나 하늘에 두루 퍼지는 현상

•화광(火光): 저녁이나 밤에 불과 같은 기운이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현상

•무지개(虹): ‘홍장불현(虹藏不見)’ 이후 ‘홍시현(虹始見)’ 사이의 기간에 나타나는 무지개

•천둥(雷動): ‘뇌시수성(雷始收省)’ 이후 ‘뇌내발성(雷乃發聲)’ 사이에 발생하는 천둥

•번개(電光): ‘뇌시수성(雷始收省)’ 이후 ‘시뇌(始雷)’ 사이에 발생하는 천둥

•우박(雹)

•안개(霧): 연기와 비슷하지만 연기가 아닌 것을 ‘무기(霧氣)’,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것을 ‘침무(沉霧)’라고 한다.

•서리(霜): 엷은 것을 ‘상기(霜氣: 서리 기운)’, 두터운 것을 ‘하상(下霜: 내리는 서리)’이라 한다.

•눈(雪): ‘입하(立夏)’ 이후부터 ‘소설(小雪)’ 이전까지 내리는 눈

•비(雨)

•흙비(土雨)

이상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역대의 천문 기록은 일상적인 천체의 운행 상황보다는 ‘천재지변’이라 표현할 수 있는 천체의 이상 현상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통적인 ‘관상’의 대상에는 정상적인 현상과 비정상적인 현상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유사 이래로 인간들은 천체의 규칙적인 운동을 관찰하여 시간의 단위를 추출해 냈고, 그것을 토대로 역법(曆法)을 만들었다. 농경의 시작과 함께 시간과 계절의 파악이 필수적인 요소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천체의 이상 현상을 관찰하여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인간 사회의 운영과 관련시켜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 배경에는 우주의 모든 영역들이 상호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상관적 사유’가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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