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2장 시간의 측정과 보시
  • 2. 시제와 시보, 그리고 시간에 대한 통제
  • 12시 100각법
문중양

문화권마다 시각을 표시하는 시제(時制)는 다르다. 동아시아에서는 보통 하루를 크게는 12개로, 더 세부적으로는 100개로 나누었다.60)항상 하루를 100각으로 나눈 것은 아니며, 고대에는 120각 또는 108각으로 나눈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남문현, 『한국의 물시계』,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5, 191쪽을 참조할 것. 12시 100각법이 이것이다. 12시는 하루를 12등분해서 12지시의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로 각각 이름 붙였다. 요즘의 시간으로 자시는 밤 11시에서 1시, 축시는 새벽 1시에서 3시였다. 오시는 낮 11시에서 1시가 된다. 그런데 매 시를 둘로 나누어 초(初)와 정(正)으로 구분하였으니, 실제로는 하루를 자초(子初)부터 해정(亥正)까지 요즘처럼 24등분한 셈이다. 자초는 밤 11시에서 12시, 오정은 낮 12시에서 1시였다.

다시 매 초와 정은 다섯 개의 각(刻)으로 나누었다. 즉, 초초각, 초1각, 초2각, 초3각, 초4각, 그리고 정초각, 정1각, 정2각, 정3각, 정4각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다섯 번째 4각은 나머지 네 개의 각과는 시간 간격이 달라 6분의 1밖에 안 되었다. 엄밀히 말해서 매 초와 정은 4각과 6분의 1각이 배분된 셈이다. 결국 이 배분된 각을 모두 합하면 하루 전체는 정확히 100각 이 된다. 이 때문에 ‘12시 100각법’이라 하는 것이다. 세종 때의 100각법에 의거한 일반적인 시계의 눈금에는 매 1각을 여섯으로 나누어 6분으로 하였다. 초각, 1각, 2각, 3각은 각각 6개의 눈금(즉 6분)이 새겨진 대각(大刻)이고, 맨 끝의 4각은 1개의 눈금(즉 1분)인 소각(小刻)이었다. 결국 매 초와 정은 25분, 즉 25개의 눈금이 그어져 있었고, 하루 전체로는 600개의 등분 눈금이 새겨져 있었다.61)시계 눈금에는 이와 같이 1각을 6분으로, 하루 전체를 600분으로 나누었지만, 역법 계산을 할 때에는 1각을 100분으로 나누어 하루 전체를 10,000분으로 나누었다. 고려시대까지는 선명력에 의거해서 1각을 84분으로 나누다가, 『칠정산내편』에 이르러 수시력에 따라 하루를 1각 100분, 하루 10,000분으로 정하였다. 이렇게 하루를 10,000분으로 정하면서 역법 계산은 획기적으로 간편해지게 되었다. 모든 역 계산의 분모가 10,000으로 계산이 탁월하게 수월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시계에 이렇게 600개의 눈금이 새겨져 있지는 않았다. 일반 백성용 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에는 대략적인 시간만 알면 되기 때문에 96개의 대각과 24개의 소각 눈금만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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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100각법의 100각환 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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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12시 100각법을 현재의 시제로 환산하기는 쉽지 않다. 100각법의 1각이 현재의 14분 24초 정도로서 정수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에 비해 1653년(효종 4) 서양식 역법인 시헌력(時憲曆)으로 개력하면서 바꾼 12시 96각법은 현재의 시제와 정확히 정수로 맞아떨어진다. 100각법에서 24개의 소각이 빠지고 매 초와 정마다 4개의 대각만 있다. 즉, 초각, 1각, 2각, 3각이 모두 동일한 시간 길이로 현재의 15분과 같으며, 따라서 매 초와 정은 현재의 60분이 되어 정확히 현 재의 시제와 같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96각법에 의한 시각은 현재의 시각으로 바로 환산이 된다. 예를 들어 96각법 시제 하에서 1각을 15분으로 나눈 시계 눈금이라면 ‘오시 정3각 5분’은 현재의 시간으로 어떻게 될까? 오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사이이고, 정3각은 12시 45분에서 60분 사이를 말한다. 따라서 오시 정3각 5분은 정확히 ‘12시 50분’이 된다.

이렇게 17세기 이후 조선에서 사용되던 12시 96각법이 현재의 시제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흔히 조선 전기 때 사용하던 100각법에 비해 96각법이 더 과학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현재 시제와의 환산만을 고려한 기준일 뿐이다. 오히려 당시의 역법 체제와 시제 전체를 놓고 보면 반드시 100각법이 불합리하고 덜 과학적이라고 판단할 근거가 없다. 실제로 당시의 기준과 체제 하에서 보면 100각법이 더 편리하고 합리적인 측면이 많았다. 예를 들어 100각법 하에서의 세종대 시계 눈금은 1각을 6분 또는 12분으로 나누었는데, 6분으로 나누면 매시가 50분이 되고, 12분으로 나누면 100분이 된다. 계산이 간편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역법을 계산할 때의 간편함은 더욱 탁월하였다. 즉, 1각을 100분으로 나누고, 하루를 10,000분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정수로 떨어지지 않는 수많은 역법 계산을 할 때 분모가 10,000이 됨으로써 더할 수 없이 계산이 수월하였다. 이와 같이 100각법은 사용 용도에 따라 1각을 분으로 나누는 방법을 달리하면서 그 편리함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낮과 밤 시간을 구분해 야간의 시제를 따로 두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96각법은 오히려 매우 불편해진다. 100각법에서는 동지 때 낮의 길이가 38각이 되고, 밤의 길이가 62각이 된다. 하지 때는 그 반대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100각법에서는 절기마다 낮과 밤의 길이가 정수로 떨어진다. 그러나 96각법에서는 동지 때 낮의 길이가 37각 9분이 되고, 밤이 58각 6분이 되어 오히려 정수로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낮 시간과 밤 시간을 달리 사용하던 시제 하에서는 96각법이 더 불편하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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