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2장 시간의 측정과 보시
  • 2. 시제와 시보, 그리고 시간에 대한 통제
  • 야간 시제, 부정시법
문중양

하루를 12시로 나누어 시간을 표시하였지만, 그와 아울러 야간에는 ‘오경제(五更制)’ 또는 ‘경점제(更點制)’라는 부정시법(不定時法)을 별도로 썼다.62)유럽에서도 야간에는 부정시법을 사용하다가 기계식 시계가 보급되기 시작하는 14세기경부터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즉, 낮에는 12시 100각법(또는 96각법)에 따라서 시각을 표시하지만, 야간에는 경(更)과 점(點)으로 나누어 시각을 표시한 것이다.

밤은 태양이 지는 때인 혼(昏)으로부터 태양이 뜨는 때인 신(晨)까지이다. 일반적으로 일몰(日沒) 후 1등성(一等星)이 보이기 시작하기까지를 혼이라 하고, 일출(日出) 전 1등성의 별이 보이지 않게 되는 때를 신이라 하는데, 천문학적으로 정확하게는 일몰 후 2.5각을 혼, 일출 전 2.5각을 신이라 하였다.63)한대(漢代) 이전에는 일몰 후 3각, 일출 전 3각을 혼(昏)·단(旦)으로 하다가 한대부터 각각 2.5각으로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남문현, 앞의 책, 169쪽 참조. 이 총 5각의 신·혼을 뺀 나머지 밤 시간을 1경(更)부터 5경까지 다섯으로 나누었다. 또한, 매 경은 다섯 개의 점(點)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신·혼을 뺀 나머지 밤 시간을 5경과 5점으로 나누어 밤 시간을 표시하고 알리는 것이 바로 ‘경점제’였다.

그런데 해가 지는 때부터 해가 뜨는 때까지의 밤 시간은 절기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같은 경·점이라도 절기에 따라 100각법(또는 96각법) 하에서의 시각과는 달랐다. 밤이 길어 일찍 시작하는 겨울에는 밤이 짧은 여름보다 경·점이 요즘 시간으로 몇 시간씩 빠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동짓날에는 해 뜨는 시각이 진시 초각(오전 7시경)이었지만 하짓날에는 인시 정2각(오전 4시 25분경)에 벌써 해가 뜨기 시작하였다. 마찬가지로 동짓날에는 해 지는 시각이 신시 정2각(대략 오후 4시 25분경)이었지만 하짓날에는 술시 초1각(오후 7시경)이었다. 일출과 일몰 시간의 차이가 무려 2시간 30분 이상이었다. 밤 시간이 그만큼 차이가 난 것이다.

이같이 절기에 따라 시간 간격이 달라지는 경점제 하에서는 시계의 눈금도 달라야 했다. 결국 절기마다 시계 눈금(잣대)을 바꾸어 주면서 시간을 측정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물시계의 야전(夜箭)이다. 조선 전기 세종 때에 는 11개의 잣대를 썼고, 조선 후기 96각법 하에서는 24개 또는 37개의 잣대를 썼다. 물론 많은 잣대를 쓰면 그만큼 정확한 밤 시간을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경점의 시간표’는 세종대에 쓰던 제1전의 눈금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제1전은 동지 직후(정확하게는 동지 첫날부터 32일까지)와 직전(소설 전 4일부터 동지 전 1일까지)에 썼다. 그림에서 나타나듯이 동지 전후에는 밤 시간이 신·혼을 제외한 유시 초1각 4분(1경 1점)에 시작해서 묘시 정초각 1.8분(5경 5점)에 끝난다. 이와 달리 하지 전후에 썼던 제11전 눈금에 의하면, 밤 시간은 술시 초3각 2분(1경 1점)에 시작해서 인시 초3각 3.6분(5경 5점)에 끝난다.64)조선 초 세종대에 썼던 밤 시간의 경점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는 남문현, 앞의 책, 200∼201쪽에 자세히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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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점의 시간표
경점의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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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낮 시간은 1년 중 항상 12시로 균등하게 나누어 표시하면서 왜 밤에는 절기에 따라 시간 간격이 달라지는 부정시법을 사용하였을까?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일관성도 없고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 뜨면 일어나 생활하기 시작하고, 해가 지면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와 잘 준비를 해야 하는 전근대 일상적 삶 속에서는 낮 시간과 밤 시간을 나누어 표시하는 것이 훨씬 편리할 수 있다. 어차피 전근대 사람들의 생체 리듬과 생활이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이루어진다면, 시간의 표시와 통제가 그러한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편하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밤 시간은 낮 시간과 달리 지배자의 관점에서 특별히 관리·통제하여야 했다. 따라서 일몰에서 일출까지의 어두운 밤 시간을 별도로 표시하고 알리는 일 은 전근대 사회에서는 특히 중요하였다. 사실 하루 중의 시간을 알리는 시보는 낮 시간보다는 밤 시간에 집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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