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물시계는 고대부터 제작해서 사용하였음을 관련 사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신라는 718년(성덕왕 17)에 누각을 설치하고 담당 관원인 누각박사 여섯 명을 두었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그것이다. 즉, 신라에서 물시계를 운영하고 시보하던 전담 정부 부서가 독립적으로 설치되었음을 말해 준다. 비록 관련 기록은 없지만, 신라보다 선진국이었던 고구려와 백제에서도 국가 표준의 물시계를 두고 운영하였음은 자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이렇게 삼국시대에 사용하던 물시계는 당나라에서 쓰던 여재의 물시계였던 듯싶다.
세종 때에는 우리 역사에서 획기적인 물시계가 제작되었다. 바로 자격루가 그것이다.
조선은 건국 후 고려시대 때 사용해 오던 전통적인 물시계를 만들어 국가 표준 시계로 계속 사용하였다. 그런데 고대부터 물시계를 전담하는 부서를 설치하고, 많은 인력을 투입해서 관리·운영했던 데서 잘 알 수 있듯이 물시계의 관리와 운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년 365일, 24시간 밤낮없이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시각을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시계를 맡은 관원이 시각을 놓쳐 처벌을 받는 사례도 기록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정밀하고 복잡한 기계 장치를 가진 자격루는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고자 제작된 물시계였다. 즉, 자동으로 시각 을 알려 주어 관원이 시각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지녔던 것이다.
자격루의 부품
자격루의 부품
세종은 그러한 물시계의 제작을 당시 최고의 기계 기술자였던 장영실(蔣英實)에게 맡겼다. 천민 출신의 금속 제련 기술자였던 장영실은 이미 세종 초부터 천문과 산수에 밝은 재능으로 발탁되어, 세종대 천문 역산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혼천의(渾天儀) 등의 과학 기구를 제작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실제로 1425년(세종 7)에는 중국의 물시계와 수력으로 돌아가는 기계 장치를 갖춘 혼천의를 그대로 모방하여 복제하는 데 성공한 공로로 상의원 별좌(尙衣院別坐)라는 벼슬을 얻어 면천(免賤)하기까지 하였다. 아마도 이때 중국의 물시계와 혼천의 복제 작업을 통해 중국의 선진적인 시계와 천문 의기의 구조와 원리에 대한 기초 연구를 한 듯하다. 이러한 준비 작업을 토대로 1432년(세종 14)경부터 1438년(세종 20)까지 본격적인 천문 의기 제작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장영실이 자격루를 제작하였다. 자격루는 다른 천문 관측 기구와 달리 매우 복잡한 기계 장치를 갖춘 시계였지만, 이미 기초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 초기인 1433년(세종 15) 9월경에 시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시제품의 성공에 세종은 크게 기 뻐하며 장영실에게 2계급 특진하여 호군(護軍)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장영실의 자격루 제작에 세종이 얼마나 기뻐하고 의미를 부여하였는지 다음의 실록 기록은 잘 말해 주고 있다.
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工巧)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에 뛰어나서, 매양 강무할 때에는 나의 곁에 가까이 두고 내시를 대신하여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찌 이것을 공이라고 하겠는가. 이제 자격궁루(自擊宮漏)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만, 만약 이 사람이 아니더라면 아무래도 만들어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가 들으니, 원나라 순제(順帝) 때에 저절로 치는 물시계가 있었다 하나, 만듦새의 정교함이 아마도 영실의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만대에 이어 전할 기물을 능히 만들었으니, 그 공이 작지 아니하므로 호군의 관직을 더해 주고자 한다.80)『세종실록』 권61, 세종 15년 9월 을미.
자격루 복원도
이 시제품에 근거해서 완성품이 1년 만에 만들어져, 1434년(세종 16) 7월 1일부터 자격루는 조선의 공식 표준 시계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