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3장 역과 역서
  • 6. 음력, 양력, 절기, 윤달
전용훈

이제 벽에 있는 달력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큰 글씨의 날짜 아래 조그만 글씨로 또 하나의 월일이 표기되어 있다. 또한, 우수니 경칩이니 춘분이니 하는 글씨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04년 3월의 달력을 예로 들어 보면, 1일 아래에 2월 11일이라고 조그맣게 표시되어 있고, 5일 아래에는 2월 15일, 20일에는 춘분, 21일에는 윤2월 1일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큰 글씨의 숫자는 양력(陽曆) 날짜이고, 조그만 글씨의 2월 11일, 2월 15일, 윤2월 1일 등은 음력(陰曆) 날짜이다.

‘윤2월 1일’이라는 날짜는 음력을 따를 때 나타나는 달과 날짜이다. 양력과 음력은 날짜 표기를 태양을 기준으로 하느냐, 달을 기준으로 하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양력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 365.2422일이므로 이 날수를 12개월로 나누어 배열한 것이다. 그래서 30일과 31일을 번갈아 주면서 1년의 총 날수가 365일이 되도록 맞추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남는 우수리 0.2422일은 맞출 수가 없어서 4년간 모았다가 그 해의 2월에 하루를 더해 준다. 이런 해는 총 날짜 수가 366일이 되며 이를 ‘윤년’이라고 부른다. 윤년은 음력이 아니라 양력에서 날짜가 366일인 해인 것이다. 그런데 실은 우수리가 0.25가 아니라 0.2422이므로 4년에 하 루를 더 주면 조금 남게 되어 100년째에는 하루를 더 주지 않는다. 이런 규칙은 유럽에서 1582년에 만든 그레고리력에서 채용한 것인데,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양력이 이 규칙을 이어받고 있다. 서양에서는 그레고리력 이전에 로마시대에 만든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을 써 왔다. 이 역법에서는 규칙적으로 4년에 한 번씩 윤년을 배치하였다. 이 역법에서는 1년을 365.25일로 보는 것이니 실제의 수치 365.2422일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래서 개력을 한 당시에는 태양의 운행과 상당히 잘 맞았다. 그러나 오랜 기간 사용하다 보니 0.2422일과 0.25일의 차이는 매년 쌓여서 실제 운행과 차이가 났다. 급기야 그레고리력으로 개력할 무렵에는 약 11일이나 차이가 나서 도저히 개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초승달에서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다시 그믐달로 변하는 주기를 날짜 표기에 사용한 것이다. 이 주기는 29.53일이므로 음력에서는 29일인 달과 30일인 달을 번갈아 두어 날짜와 달의 모양이 잘 맞도록 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우수리 0.03일이 남으므로 33개월간 이를 모았다가 하루가 쌓이면 29일인 달에 하루를 더 주어 30일을 만들어 주었다. 음력에서는 1년에 12달을 두는데, 총 날짜 수가 354일밖에 되지 않아 양력보다 약 11일 정도 짧다. 때문에 음력을 사용하는 이슬람교도는 33년이면 양력을 사용하는 사람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

음력과 양력 모두 사용하는 사람들의 편의에 맞게 날짜를 나타낸 것이므로 어느 것이 더 낫고, 어느 것이 더 못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농경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순수한 음력만 사용하면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없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매년 11일씩이나 양력과 차이가 나므로 시간이 흐르면 4월이 겨울이 되고, 12월이 여름이 되어 달의 이름과 계절이 뒤죽박죽된다. 이런 데 신경 쓰지 않고 음력을 지키려는 종교적 신념이나 문화의 뿌리가 깊은 이슬람권에서는 음력만을 쓰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달의 움직임을 달력에 반영시키면 서도 농사를 짓는 생활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였으므로 어떻게든 음력과 양력을 결합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때문에 고안된 것이 바로 윤달과 절기(節氣)이다.103)절기와 윤달의 관계, 그리고 윤달의 배치법에 대해서는 전용훈, 「17∼18세기 서양 과학의 도입과 갈등」, 『동방학지』 117,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2, 1∼50쪽 참조.

음력이 양력보다 약 11일이 적으므로 3년이면 33일이 모자란다. 이에 3년마다 한 번씩 윤달 하나를 두면 음력과 양력의 날짜가 거의 비슷해진다. 윤달을 둔 해는 한 달이 더 있으므로 13개월이 있고, 총 날짜 수는 383일(혹은 384일)이 된다. 원래 음력에서 한 해에는 12개의 달만 두기로 하였으므로 전통시대 사람들은 윤달은 덤으로 덧붙여진 달일 뿐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달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윤달에는 어떤 나쁜 운명이나 기운이 개입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윤달에 장례에 사용할 수의를 미리 만들어 두는 풍습은 윤달에 길흉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음력과 양력의 1년의 길이를 비교해서 약 11일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였지만, 좀 더 정확하게 음력과 양력을 일치시키려면 정교한 수학적 계산이 필요하다. 전통시대에 가장 편리하면서 널리 쓰인 방식이 19년에 7회의 윤달을 넣는 것으로, 이 주기는 고대부터 역법에 채용되어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윤달의 규칙이 되었다.

그렇다면 19년에 7회의 윤달을 만드는데, 과연 어느 달 뒤에 윤달을 넣어야 할까? 방법은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역법에 관한 지식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고, 절기라는 것도 확고하게 쓰이지 않았던 고대 중국에서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이전까지 음력으로 12개월을 모두 지낸 다음 12월의 뒤에 윤달을 두었다. 이런 방식의 윤달 배치 규칙을 그 해의 끝에 윤달을 둔다고 하여 ‘세종윤(歲終閏)’이라고 한다. 이것은 단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고 합의한 규칙일 뿐이므로 달리 약속을 하면 윤달을 매번 6월을 지내고 7월이 되기 전에 둘 수도 있고, 아니면 9월과 10월 사이에 두기로 약속할 수도 있다.

전국시대 이후부터 윤달을 두는 규칙이 새롭게 확립되었는데, 이것을 무중치윤법(無中置閏法)이라고 부른다. 이 규칙은 이십사절기라는, 태양의 운동에 따른 24개의 기준점이 확립되고 난 다음에 성립한 것이다. 흔히 입춘, 우수, 경칩 등 절기는 오랜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것이라서 음력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절기는 태양의 운동에 따른 기준점이므로 음력이 아니라 양력이다. 흔히 이십사절기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들은 표 ‘절기와 중기’에 나타낸 것처럼 12개의 절기와 12개의 중기(中氣)로 구성되어 있다. 절기를 생각해 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대체로 생활의 편리를 위해 태양의 운동에 따른 계절 변화의 패턴을 24개의 기준점으로 나타내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절기의 이름을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는데, 입춘(立春, 봄이 완전히 왔음), 우수(雨水, 눈이 녹아 물이 됨), 경칩(驚蟄, 겨울잠 자던 곤충들이 깨어남), 춘분(春分, 봄을 가르는 중간), 청명(淸明, 맑은 바람이 붐), 곡우(穀雨, 비가 와서 곡식을 파종함) 등의 계절 변화의 모습을 반영한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중치윤법에서 절기와 윤달의 관계가 맺어지는 출발점은 ‘달의 이름을 중기가 결정한다’는 원칙에 있다. 표 ‘절기와 중기’에 나타나 있듯이 전통시대의 역법에서는 우수가 있는 달을 1월, 춘분이 있는 달을 2월이라고 아예 규정하였다. 그러면 중기가 없는 달은 몇 월이라고 불러야 할까? 바로 이 달에는 중기가 없으니 이름을 붙일 수 없고, 그래서 ‘제대로 되지 않은 달’이란 뜻으로 ‘윤달’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절기는 1년에 24개를 두었으므로 1년의 길이를 24로 나누면 절기의 간격은 15.2일 정도 된다. 두 절기 간격을 합치면 30.4일이므로 음력의 한 달에는 대략 하나의 절기와 하나의 중기가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음력 한 달은 29일이나 30일이므로 두 절기의 간격이 이보다 조금 더 넓다. 이 차이가 33개월 동안 쌓인다면, 중기점의 위치가 전달의 맨 뒷부분과 한 달을 건너뛴 다음 달의 맨 앞부분에 위치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이 중간에 끼인 달은 ‘중기가 없는 달’, 즉 무중월(無中月)이 되는 것이다. 그 달을 몇 월로 불러야 하는지는 그 달의 중기에 의해 결정되므로 이 무중월은 ‘몇 월’이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것이 달의 이름을 제대로 규정할 수 없는 ‘윤달’이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윤달을 배치하는 것을 ‘중기가 없는 달로 윤달을 삼는다’는 뜻으로 ‘무중치윤법’이라고 부른다. 무중치윤법은 전국시대 이후 중국 역법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확립되었는데, 지금도 음력에서 윤달을 넣을 때는 이 원칙을 따르고 있다.

흔히 전통시대의 달력을 음력이라고 부르듯이 많은 사람이 우리 조상들이 쓰던 달력을 음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조상들이 쓰던 전통시대의 달력은 음력과 양력이 혼합된 태음태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날 태양력을 쓰면서도 각 날짜에 음력 날짜를 표기해 주어 음력도 함께 쓰는 방식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표> 절기와 중기
절기 중기
입춘(立春) 우수(雨水, 우수가 있는 달이 1월)
경칩(驚蟄) 춘분(春分, 춘분이 있는 달이 2월)
청명(淸明) 곡우(穀雨, 곡우가 있는 달이 3월)
입하(立夏) 소만(小滿, 소만이 있는 달이 4월)
망종(芒種) 하지(夏至, 하지가 있는 달이 5월)
소서(小暑) 대서(大暑, 대서가 있는 달이 6월)
입추(立秋) 처서(處暑, 처서가 있는 달이 7월)
백로(白露) 추분(秋分, 추분이 있는 달이 8월)
한로(寒露) 상강(霜降, 상강이 있는 달이 9월)
입동(立冬) 소설(小雪, 소설이 있는 달이 10월)
대설(大雪) 동지(冬至, 동지가 있는 달이 11월)
소한(小寒) 대한(大寒, 대한이 있는 달이 12월)

우리나라의 옛날 달력에서 날짜 표기는 모두 음력으로 하였으므로, 옛날 달력을 지금 양력 달력과 똑같은 구조로 만들면 음력 날짜는 크게 쓰고, 양력 날짜는 작은 글씨로 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 달력에서 큰 글씨의 음력 날짜 아래에 써넣은 작은 양력 날짜는 무엇일까? 바로 이십사절기이다. 이십사절기는 태양의 운동에 따른 계절의 변화를 지시하는 날짜들이므로 이것이 바로 전통시대의 달력에서 양력 날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전통시대의 달력에서는 음력 날짜를 써넣은 칸에 매일 매일 양력 날짜를 표기하는 대신 1년 중 24개의 양력 날짜만 표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예로 조선시대의 달력에 ‘갑신년 윤2월 15일’이라고 적힌 칸에 조그맣게 ‘청명’이라고 표기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원숭이해 윤달인 2월 15일이 양력으로 ‘청명(4월 4일)’에 해당한다는 것을 표시해 준 것이다. 물론 절기 날짜는 때에 따라 하루 정도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거의 양력 날짜에 고정되어 있다. 절기는 음력에 덧붙여 표기된 양력 날짜이다. 그러므로 전통시대에 썼던 달력은 음력이 아니라 양력과 음력 날짜가 동시에 표기된 태음태양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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