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4장 땅의 표현과 기술
  • 1. 땅에 대한 다양한 관념
  • 전통적인 천지관, 천원지방
오상학

[1. 땅에 대한 다양한 관념]105)이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 『조선시대의 세계 지도와 세계 인식』의 제2장 제1절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혀 둔다.

인류가 태동한 이래로 인간은 자연 환경 속에서 생활하면서 세계에 대한 독특한 관념을 지녀 왔다. 이러한 관념은 여러 문화권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며 오랜 시일에 걸쳐 형성, 발전되어 왔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인간을 둘러싼 가장 큰 세계인 하늘과 땅에 대한 독특한 관념이 형성되어 이어져 내려왔다.

서양의 근대 과학이 수용되기 이전까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하늘과 땅에 대한 대표적인 관념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라는 천원지방은 천지에 대한 일종의 원형적(原型的) 사고이다. 원형은 어떤 형상이나 외관을 구성하는, 인간 심리의 깊은 곳에 내재하는 원초적인 관념이나 이미지로서 시간과 공간이 달라도 유사하게 나타날 수 있다. 원과 사각형으로 세계를 형상화하고 상징하는 것은 고대 중국에서만 존재하던 특이한 사고는 아니었다. 인간은 본래 사선보다도 수직선과 수평선을 선호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고대부터 하늘을 원형(圓形)으로, 땅을 직선과 관련된 형태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원형과 사각형은 인도의 만다라(曼陀羅)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고대 헤브루 사람들도 세계는 바다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땅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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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지방의 모식도
천원지방의 모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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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경우, 천원지방의 관념은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경험과 관찰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 ‘원(圓)’은 움직이는 하늘이고 ‘방(方)’은 정지해 있는 땅을 상징하는데,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는 항성(恒星)의 일주 운동을 보고 ‘천원(天圓)’이라 생각하였고, 태양 운행의 계절에 의한 변화를 보고 ‘지방(地方)’이라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천원지방의 관념은 천지에 대한 형태와 위치 관계를 나타내는 우주 구조론은 아니지만, 천지의 형태에 대한 원형적 관념에 해당한다.

천지의 형태로서 파악되는 천원지방의 관념에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 이상으로 구체적인 모습이 나타나 있지 않다. 특히, 원형인 하늘과 방형인 땅이 곡면인지 평면인지는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사물의 형태에 비유하는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연유로 일찍부터 천원지방의 천지 형태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공자(孔子)의 제자 증삼(曾參)이 천원지방에 대해 묻는 제자 단거리(單居離)의 질문에 답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여기에서 천지의 형태가 원형과 방형이라면 하늘이 네모진 땅을 가릴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천원지방을 형태적인 관점보다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106)『대대례(大戴禮)』, 증자천원(曾子天圓) 제58.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도 형이상학적 관점의 해석을 볼 수 있는데, 천도(天道)와 지도(地道)를 ‘원’과 ‘방’이라 하여 천지의 본질을 해석하기도 하였다.107)『여씨춘추(呂氏春秋)』, 원도(圓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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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도
천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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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일부 학자는 천원지방은 실제 천지의 모습이 아니라 대상의 성질에서 추출한 메타포(metaphor)라 이해하였다.108)海野一隆, 「古代中國人の地理的世界觀」, 『東方宗敎』 42, 日本道敎學會, 1973. 그러나 ‘둥글고 모난 것’은 형상을 묘사하는 단어인 점을 고려할 때, 천원지방이라는 개념이 천지의 형태와 무관하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일면을 부각시킨 것이라 판단된다. 오히려 천원지방이라는 개념은 천지의 형태를 기본적인 도형으로 추상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후 학자들이 형이상학적 해석을 덧붙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천원지방의 관념은 이후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을 비롯한 인근의 나라에서도 서양의 지구 구체설(地球球體說)이 수용되기 전까지 대표적인 천지관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렇게 정착된 천원지방의 관념은 천문과 관련된 서적뿐만 아니라 천문도(天文圖), 시문(詩文) 등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더 나아가 일상생활의 도구에서도 반영되어 있는데, 거울이나 접시, 심지어 벽돌 등에서도 천원지방의 관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동양의 석각 천문도로는 가장 오래된 소주(蘇州)의 천문도에도 천원지방의 사고가 나타나고 있다. 각종의 도상(圖像)이 실려 있는 대표적인 저술로 명대(明代) 왕기(王圻)의 『삼재도회(三才圖會)』(1609)나 장황(章潢)의 『도서편(圖書編)』에도 천원지방의 관념을 보여 주는 다양한 그림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원지방의 관념을 일찍이 수용하였는데, 지식인들의 저술뿐만 아니라 건축물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경주 첨성대는 천원지방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조선 후기 정지운(鄭之雲, 1509∼1561)이 작성하고 이황(李滉, 1501∼1570)이 증보한 천명도(天命圖)에도 이러한 관념이 반영되어 있다. 천원지방의 사고를 잘 보여 주는 지도도 조선에서 제작되었는데, 천지도(天地圖)가 그것이다.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현실 세계를 그렸고,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원에는 28수의 별자리를 배치시켜 놓았다. 천지가 분리되지 않고 같이 표현된 것을 통해 천지 상관적(天地相關的) 사고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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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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