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4장 땅의 표현과 기술
  • 2. 세계 지도, 세계관의 표상
  • 성리학적 질서의 표현,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
오상학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이후 계속 수정·전사되면서 조선 전기 세계 지도의 일맥을 형성하였다. 한편, 성리학이 조선 사회의 운영 원리로 뿌리를 내리게 되는 16세기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계열의 세계 지도가 제작되었다. 이 지도는 아프리카·유럽까지 포괄하였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는 달리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일대로 지역 범위가 축소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처럼 여러 사본이 존재하여 조선 전기 세계 지도의 양대 산맥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현존하는 사본으로 고려대학교 인촌 기념관에 소장된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混一歷代國都疆理地圖)를 비롯하여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화동고지도(華東古地圖), 일본 묘우신지(妙心寺) 소장의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 일본 궁내청(宮內廳) 소장의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 미토(水戶)의 창고관(彰考館) 소장의 대명국지도(大明國地圖), 도쿄 한국 연구원(韓國硏究院) 소장본, 개인 소장본으로 모리야 코우죠우(守屋考藏) 소장본 등이 알려져 있다.

인촌 기념관에 소장된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는 원래 일본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최근에 구입한 것이다. 지도 상단에 전서(篆書)로 제목이 표기되어 있고, 그 밑에는 역대 제왕 국도(歷代帝王國都)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의 중심에 중국이 그려져 있고, 그 동쪽에 조선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처럼 확대되어 그려져 있으나 일본은 작은 원형의 섬에 일본이라고 표기된 정도이다. 지도 하단에는 명나라의 위소명(衛所名)이 실려 있고, 지도를 만들게 된 동기를 쓴 중국인 양자기(楊子器, 1458∼1513)의 발문과 범례가 수록되어 있으나 간기(刊記)가 있는 부분은 훼손되어 있다.117)이찬, 「조선 전기의 세계 지도」, 『학술원 논문집』 인문사회과학편 31, 대한민국 학술원, 1992.

지도에 수록된 내용을 토대로 제작 시기를 추정해 보면, 대략 양자기의 지도가 제작된 1526년(중종 21) 이후에서 경상 좌수영이 동래로 이전되는 1544년(중종 39) 이전으로 볼 수 있다. 지도 제작의 저본이 된 것은 양자기의 여지도(輿地圖)로, 여기에 조선 부분을 추가하여 제작하였다. 현재 중국 다롄시(大連市) 뤼순 박물관(旅順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 양자기의 여지도와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를 비교해 보면 전체적인 윤곽이 거의 유사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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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기념관 소장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
인촌 기념관 소장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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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시기의 추정과 전반적인 내용 등을 토대로 볼 때, 현존하는 사본 가운데 인촌 기념관 소장본이 규장각 소장본이나 묘우신지 소장본보다 비교적 원본에 가까운 지도로 보인다. 1544년 이전에 제작되었다는 것은 양자기의 지도가 제작된 얼마 뒤 바로 조선으로 유입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 지도를 누가 제작하였을까? 앞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제작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상세한 대형 세계 지도를 개인 혼자의 힘으로 제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중국에서 입수한 최신의 지도를 수차에 걸쳐 제작하였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도의 제목도 앞서 국가적 프로젝트로 제작되었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거의 유사한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라고 되어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가 표현하고 있는 지리적 세계의 범위는 동쪽으로 조선·일본, 중심에 중국, 남쪽으로 동남아시아, 서쪽으로 황하의 하원(河源)인 성수해(星宿海), 북쪽으로 만리장성과 위쪽의 사막(沙漠)에 이르고 있다. 앞서 제작되었던 조선 초기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는 커다란 차 이를 보이고 있다. 즉, 16세기 전반기 양자기의 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지도에는 15세기 초의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보이는 아라비아·아프리카·유럽 등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지리적 범위로만 보았을 때는 전통적인 직방 세계로 지리적 세계가 축소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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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기의 여지도
양자기의 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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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 지도에서는 아프리카·유럽 대륙이 사라졌을까? 이는 단순히 지도의 계보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고, 시대적인 변화와 관련지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조선에만 한정되지 않고, 중국 본토에서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임은 물론이다.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는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는데, 이 시기 이슬람 문화권과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서양의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을 계승한 이슬람의 선진 문명이 전파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의 객관적 실재를 알게 되었으며, 이는 세계 지도의 형태로도 표현되었다. 이러한 지도는 조선에도 유입되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로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인데, 당시 구대륙의 동단(東端)에 위치한 조선에서 전혀 교류가 없었던 유럽·아프리카가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1368년 명나라가 중원을 장악하면서 영토는 대폭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서역과의 교류도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원 제국 때 이루어졌던 광범위한 문화 교류는 명나라와 주변의 일부 조공국에 한정 되었다. 유럽·아프리카의 존재는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어, 서양 선교사들이 서구식 세계 지도를 소개하기 전까지 중국의 세계 지도에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15세기 이후 중국에서 제작된 대표적인 지도라 할 수 있는 1536년의 황명일통지리지도(皇明一統地理之圖), 황명여지지도(皇明輿地之圖), 1555년의 고금형승지도(古今形勝之圖) 등에서는 유럽·아프리카 지역은 전혀 볼 수 없고, 다만 나홍선(羅洪先)의 광여도(廣輿圖)의 서남해이도(西南海夷圖)에 아프리카 남단의 모습이 일부 그려져 있을 뿐이다. 양자기 발문의 지도도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제작된 것으로, 전통적인 직방 세계 중심으로 지리 인식이 축소된 것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양자기의 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도 직방 세계로 축소된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조선 부분만을 새로 추가하였을 뿐 일본이나 유구는 양자기 원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것은 조선 초기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다른 점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는 조선 부분만 아니라 일본, 후대 사본에서는 유구까지 새롭게 그려 넣어 대외 인식의 개방성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 지도에서는 일본과 유구가 조선에 비해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게 그려져 있다.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가 양자기의 지도를 필사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과 유구가 원도의 형태를 따랐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중국에서 들여온 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유구를 새롭게 추가하여 상세하게 그렸다. 이러한 점은 15세기 교린 관계에서 나타나는 개방적 대외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유구·일본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인정한 결과이다. 16세기 전반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가 보여 주고 있는 지리적 세계는 15세기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는 뚜렷한 차이가 난다. 이는 이 시기 대외 인식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을 지니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조선은 16세기를 거치면서 성리학이 체계적으로 정립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대외관도 하나의 논리 구조 속에서 파악되었다. 명나라에 대한 계서적(階序的) 인식도 확고하게 변하여 중화=명, 소중화=조선으로 파악되고 양자는 군신 관계로 규정되었다. 그뿐 아니라 사대 정책이 방편이 아니라 자체 목적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16세기의 소중화 의식은 명나라를 중화로 인정하고 그에 버금간다고 하는 면에서 15세기의 조선 중심적 관념보다는 후퇴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유교 문화의 발전에 따른 자존 의식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지도 상에서도 볼 수 있는데, 조선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의미를 지니는 곳은 오직 중국뿐이며 주변에 존재하는 이역의 나라들은 별다른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시기 조선에서 인식된 세계는 중국과 조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지역은 주변의 일부분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 초기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동쪽 해양에 그려졌던 많은 나라가 여기에서는 일본과 유구를 제외하고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듯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에서 표현된 지역은 중국의 직방 세계를 중심으로 훨씬 축소되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시기에 인식되었던 지역이 지도에 표현된 것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분명히 이보다 더 넓은 지역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지도 상에 그려 넣지 않았을 뿐이다. 이 시기 조선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던 지역은 중국과 그 주변의 일부 조공국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나머지 많은 지역은 선택적으로 생략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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