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5장 풍수지리와 정치
  • 1. 음양오행 사상과 풍수
  • 풍수지리에 대한 비판적 흐름
임종태

전통 풍수지리에 관한 개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전통시대에도 풍수지리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존재하였다는 사실이다. 풍수에 관한 믿음과 이를 이용해서 조상의 묘를 선택하는 행위가 사회에 널리 확산되면서 그에 대한 ‘합리적’ 비판의 흐름도 나타났던 것이다. 사실 앞서 『금낭경』의 저자가 음 택 풍수가 ‘미신’이 아니며, 조상의 유해와 후손 사이에 존재하는 ‘자연적 감응 현상’에 따르는 것이라고 강변한 사실 자체가 이미 당시에 음택 풍수를 불신하는 흐름이 있었음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시대에 제기된 풍수에 대한 비판을 현대 과학의 세계관에 근거한 오늘날의 비판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전통시대에 이루어진 비판의 논조가 아무리 급진적으로 보이는 경우라도 풍수의 근본적 원리 자체를 부인하는 데까지 나아간 사례는 드물었다는 것이다. 즉, 생기가 넘치는 땅에 조상의 유해를 묻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음덕이 후손에게 미치리라는 점에는 사람들이 대부분 동의하였다.

풍수에 대한 비판은 대개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조상의 유해를 좋은 땅에 장사 지내고자 하는 도덕적 동기에서 이루어져야 할 풍수가 후손의 복락(福樂)을 추구하는 이기적 욕심에 의해 타락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풍수는 효도를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간주해야 하며, 자손들에게 미칠 좋은 효과는 부수적 결과로만 보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시 사회에서 유행하던 풍수란 본말(本末)이 전도된 행위였다. 이러한 비판이 풍수의 도덕적 원리를 강조한 것이라면, 두 번째 비판은 풍수와 기대 효과 사이에 지나치게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설정하는 것에 대한 합리적 반발이었다. 조상의 유해를 좋은 땅에 장사 지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후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가? 나라의 도읍을 명당에 정하였다고 해서 그 나라가 자동적으로 번영한다고 볼 수 있을까? 비판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인간과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복잡한 요인을 무시한 단순한 견해로 간주하였다. 다시 말해 개인, 가문, 나라의 운명은 여러 복잡한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지, 조상 묘의 풍수나 자신의 사주 등에 의해 간단히 결정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개 풍수의 비판자들은 인간의 성공에는 조상의 묏자리보다는 각 개인의 윤리적 품성과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물론 이러한 비판이 풍수의 기본 원리를 아예 부인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풍수가 사회에 널리 확산되면서 일어난 여러 폐단에 대한 합리적 비판과 견제의 역할을 하였음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전통시대 풍수의 역사는 풍수에 대한 전반적인 믿음을 한편으로 하고 그에 대한 합리적 견제를 다른 한편으로 하여, 두 요소 사이의 긴장과 상호 견제를 통해 전개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이제부터 살펴볼 우리나라의 사례, 특히 고려시대의 풍수에서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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