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6권 장시에서 마트까지 근현대 시장 경제의 변천
  • 제1장 장시의 성립과 발전
  • 1. 장시의 성립과 농촌 경제의 변화
  • 장시 발달을 촉진시킨 요인들
김대길

장시가 각 지역으로 확산되어 정착하게 되는 것은 대동법(大同法) 실시와 더불어 더욱 탄력을 얻게 되었다. 대동법은 17세기 이후 조선 왕조의 재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던 부세 제도이다. 농민들은 대동법 시행 이후 봉건 국가에 바치던 현물의 공납(貢納) 대신에 지역의 특성에 따라 정해진 규정에 의해 미곡(米穀)이나 포목(布木) 또는 전화(錢貨)를 납부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쌀을 납부하도록 정해진 지역에서 미곡 생산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 농민들은 무명이나 기타의 생산물을 판매하여 미곡을 마련해야 하였다. 이와는 달리 포목을 납부하도록 정해진 지역에서 포목 생산이 어려울 경우에는 곡물이나 기타의 생산물을 판매하여 포목을 마련해야 하였다.7) 최완기, 「대동법 실시의 영향」, 『국사관논총』 12, 국사편찬위원회, 1990.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자연스럽게 유통 경제에 참여하게 되었고 각 지방의 장시 발달을 더욱 촉진시켰다.

대동법은 농업·수공업·광업 분야 등의 생산 활동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농업 분야에서는 이앙법의 보급, 농업 기술의 발달 등과 함께 생산력을 크게 증가시켰고, 곡물의 상품화도 촉진되었다. 면포나 마포 같은 작물은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일 뿐만 아니라 실물 화폐로 인정되어 장시에 서 유통성이 높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재배, 생산이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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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농민층 분해와 사회적 분업으로 도시 인구가 늘어나고, 수공업 및 광업이 발달하면서 임금 노동자가 많아짐에 따라 농산물의 수요를 증가시켰다. 농민들은 상품화를 위한 작물 재배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상업적 농업이 발달하였다. 상업적 농업은 대체로 도시 주변과 교통이 편리한 지역, 그리고 특정한 작물의 재배에 적합한 자연 조건을 갖춘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각 지방에서는 그 지역의 특산물을 판매하여 상업적 이득을 늘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으뜸을 차지하는 것은 미곡이었고, 이 밖에 채소·목면·연초·인삼·대나무·닥나무·생강 등의 재배와 생산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였다. 돈이 되는 작물의 재배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그리하여 특정 작물의 유명 생산지로 이름을 날리는 곳도 많이 나타났다. 즉 진안의 연초, 전주의 생강, 임천·한산의 저포, 개성·강계의 인삼, 한양을 비롯한 대도 시 부근의 채소 등과 같이 지역별로 특성화된 상품들이 생산되었다.8) 이중환(李重煥), 『택리지(擇里志)』 복거총론(卜居總論) 생리(生利).

17세기 이후 조선 사회의 변동은 수공업 분야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궁정이나 관아에 필요한 물품을 주로 생산하던 관영 수공업 체제가 점차 쇠퇴, 변화하여 민영 수공업이 점차 수공업 생산 분야를 주도하였다. 특히 관아가 필요한 물품을 장시에서 구매하면서 민영 수공업자들은 시장 판매를 위한 상품 생산과 판로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수공업 부문의 기술이 발전하고 농업 생산물의 상품화 과정이 촉진되었다. 이에 따라 자가 소비나 부업을 위해 생산하던 가내 수공업자들은 시장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생산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하였다. 이에 모시, 베, 명주 등은 자가 소비보다는 교환, 판매를 위해 생산되었다.

광업 분야 또한 크게 변화하였다. 화살촉·칼·창 등 각종 무기 제조와 일반 민중들의 생활과 밀접한 농기구·솥·놋그릇 등의 제조가 증가하면서 광산 개발이 활기를 띠었다. 조선 후기 광산업이 크게 활기를 띤 것은 금·은·동에 대한 사회적 수요의 증가와 수공업 분야의 급속한 발달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민중들의 생활과 밀접한 상품 생산의 증대와 유통의 활성화는 이 시기 각 지방에 개설되고 있던 장시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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