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6권 장시에서 마트까지 근현대 시장 경제의 변천
  • 제1장 장시의 성립과 발전
  • 4. 약령시와 우시장
  • 큰돈이 오고갔던 우시장
김대길

우시장은 쇠전 또는 소시장, 우전(牛廛)으로 불렸다. 이곳에서는 반드시 소만 거래하지 않고 돼지, 염소, 양 같은 가축을 거래하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가축 시장이라고 한다.

농촌에서 농우(農牛)는 개, 돼지, 고양이, 닭 등의 다른 가축과 질적으로 다른 대우를 받았다. 심지어 주인이 매일 건강 상태를 점검할 정도로 소중하게 다루어졌다. 사실 농우는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고, 논밭 다음가는 중요한 재산이었다. 농번기에는 사람이나 가축이나 잠시도 쉴 틈이 없는 때이지만 그 중에 소가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시기였다. 주인의 논밭은 말 할 것도 없고 이웃집은 물론 동네의 논밭을 모두 갈아야 하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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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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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기록을 보면 그런대로 농우의 수급이 원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중국으로 많은 농우를 수출하고 있음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태종대와 세종대에는 중국의 요청에 따라 대규모의 농우를 교역하고 있다. 물론 중국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농우 확보의 어려움과 실농(失農)의 우려를 호소하며 교역할 농우 수의 감축을 요구하였다. 1404년(태종 4)에는 10차례에 걸쳐 소 1만 마리를 중국과 교역하였고,41) 『태종실록』 권8, 태종 4년 11월 갑진. 1432년(세종 14)에는 여섯 차례에 걸쳐 소 6,000마리를 교역하고 있다.42) 『세종실록』 권57, 세종 14년 7월 정묘. 한 차례에 1,000마리씩 교역한 것이다. 태종대와 세종대에 교역된 소 값은 한 마리에 비단 1필과 베 4필로 거래되었다.

한 마리의 농우가 한 마을의 농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였다. 단종대의 기록에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소도 역시 농사에 크게 쓰이는 바인데 무릇 한 마을 안에 농우를 가진 자가 한두 집에 지나지 않으니 한 집의 소로써 한 마을의 농사를 의뢰하는 것이 반이 넘는다. 만약 한 마리의 소를 잃으면 이것은 한 마을의 사람이 모두 농사짓는 때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한 마리 소가 없는 것으로써 한 마을의 빈부가 관계되니 소의 쓰임은 진실로 크다.43) 『단종실록』 권7, 단종 원년 9월 무인.

한 마을의 농사가 농우의 있고 없음에 따라 풍흉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농우는 장정 대여섯 명, 많게는 열 명 정도의 힘을 대신하는 것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각 지방의 장시에는 일정한 장터에 크기와 종류 등은 다르지만 각종 좌판(坐板)이 나름대로의 구역을 정해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에는 곡물전, 포목전, 지전, 어물전, 과일전, 유기전, 철물전, 가마전, 갓전, 신전, 소쿠리전, 옹기전, 채소전, 약전, 쇠전, 돼지전, 닭전 등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그러니까 쇠전이라고 하면 장이 서는 날 소를 비롯한 가축들의 매매가 거래되는 곳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장시에는 쇠전이 있었다. 이 쇠전의 크고 작음은 곧바로 장세(場勢)의 크고 작음을 좌우하기도 하였다. 농우의 매매는 그 어떤 상품의 거래보다 많은 액수의 현금이 오갔기 때문이었다.

한편 우시장의 풍경에는 다른 전(廛)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 보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집 안에서 생산한 다양한 잉여 생산물을 거래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성들이 경제권을 행사 할 수 있지만 농우의 거래만큼은 남성들이 양보하지 않았다. 우시장의 모습을 담은 많은 사진을 들여다보면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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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 우시장
정주 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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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크게 누렁소와 검정소로 나눈다. 점이 있으면 얼룩소 또는 점배기라고 하며, 누렁소라도 붉은 색이 진한 황소는 대추황소, 뿌연색이 많으면 부엉소라고 부른다. 그런데 시장에서 거래되는 농우는 대부분 누렁소였다.

쇠전에서만 농우 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거래의 형태는 다양하였다. 즉 굳이 쇠전에 나오지 않고 안면이 있는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이런 형태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일단 거래 과정에서 부담해야 할 수수료 또는 구전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음으로는 쇠거간이라 불리는 중개인이 많은 수의 농우를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우사(牛舍)와 여물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소 장사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매매를 중개하는 형태이다. 이러한 매매 역시 장날이 아닌 날에도 이루어질 수 있는 이점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성행한 것은 아니었다. 이 때 쇠거간은 거래액의 100분의 1이나 2정도의 수수료를 받았는데, 수수료는 파는 사람이 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세 번째로는 시장에서의 거래인데, 가장 보편화되고 성행하던 방 식이다.

농우는 주로 논밭을 가는 일을 하였고, 물건을 운반하는 일 등에 부렸기 때문에 무엇보다 힘이 좋아야 상품 가치를 높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보통 힘센 황소는 100관의 짐을 싣고 70리 길을 걸었고, 암소는 80관을 싣고 같은 거리를 걷는다고 한다. 이와같이 농우의 외모를 통해 건강 상태나 나이를 확인하고 좋은 것을 고르는 방법은 여러 경험자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우선 나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강제로 소의 입을 열게 하여 이빨의 모양으로 판단하며, 암소는 유방을 주물럭거려 처녀인지, 유부녀인지, 또는 새끼를 낳은 지 어느 정도 되었는가를 따져 본다고 한다. 이와 함께 좋은 소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먼저 입이 짧고 넓어야 좋고, 배가 넓고 크고 처지지 않아야 좋고, 앞가슴이 환하게 열려야 좋고, 털이 짧고 윤기가 있고 부드러워야 좋고, 궁둥이가 처지지 않아야 좋고, 얼굴이나 배나 궁둥이에 흰 점이 없어야 좋고, 무엇보다 눈이 툭 불거져서 선명해야 좋다고 한다.

농우가 농가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기에 상품의 가치 또한 높았다. 이러한 요소가 농우의 불법 도살과 매매로 연결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 특히 강조되고 있는 삼금(三禁) 정책은 소와 술과 소나무에 대해 일정한 통제를 가한 것이다. 18세기 이후 각 지역의 장시가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는 가운데 우금(牛禁)이 실시되는 중에도 농우의 도살이 확산되는 추세였다.

정조대 대사간 임제원(林濟遠, 1737∼?)이 지적한 바에 의하면 소를 길러 번식시키는 일은 예전만 못하고 반면에 날마다 잡아먹는 일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큰 거리에 늘어선 가게에는 쇠고기 파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으며 쌓아 놓은 고기가 산더미처럼 많아 소 한 마리의 값이 거의 백금이나 된다고 우려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44) 『정조실록』 권38, 정조 17년 9월 신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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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적부(牛籍簿)
우적부(牛籍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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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이 농우를 도살하여 판매하면서 소도둑도 늘어났다. 소도둑이 소를 훔쳐 시장에서 팔아 버리거나 산곡 간에서 도살하여 판매하는 사례가 허다하였다. 순조대 『일성록(日省錄)』의 기록에는 우금이 해이되어 각 지역마다 포사(庖肆)가 설치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에는 푸줏간이라고 할 수 있는 포사를 설치한 곳이 아홉 곳이나 되고, 과천에 여섯 곳, 양주는 없는 면이 없을 정도이고, 그 나머지 읍들의 촌락 사이에도 도살이 낭자하다고 하였다.45) 『일성록』 순조 8년 12월 17일.

조선시대에 우시장은 몇 개나 되었을까? 아쉽게도 우시장에 관한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다. 다만 19세기 장시와 관련하여 많은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임원경제지』에는 대표적인 거래 물품이 소개되어 있어 이를 토대로 윤곽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다. 이 자료에 의하면 농우가 거래되고 있는 지역은 전체 1,052개의 장시 가운데 184개로 이들 장시에 쇠전이 형성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농우 거래가 가장 많았던 지역은 영남으로 55곳이었고, 다음으로 해서 23곳, 호남 18곳의 순이었다.

1918년 말 조사에 의하면 당시의 전국 가축 시장 수는 모두 655개소나 되었다. 이 시기는 조선시대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때라 독립된 가축 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경상북도가 91개소로 가장 많고, 강원도 67개소, 황해도 63개소, 전라남도 58개소, 충청남도 52개소, 경상남도 및 평안도 50개소, 경기도가 47개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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