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6권 장시에서 마트까지 근현대 시장 경제의 변천
  • 제4장 근현대 서울의 상권과 상품 유통
  • 3. 전통 시장의 변화와 백화점의 등장
  • 충무로의 일본인 백화점
김세민

서울에 백화점이 처음 들어선 것은 1906년 일본인에 의한 미쓰코시 오복점(三越吳服店)이 시초이다. 오복점이란 우리의 포목점과 같은 것이다. 충무로 1가 현재의 사보이 호텔 건너편에 처음 자리를 잡은 미쓰코시 오복점은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의 서울 출장소로서, 처음부터 본격적인 백화점은 아니었고, 수출입을 주업으로 하면서 겸하여 소규모 잡화상을 경영하는 정도였다. 그 후 미쓰코시 오복점이 백화점의 면모를 갖춘 것은 1929년 서울 출장소가 지점으로 승격되면서부터이다. 1929년 경성부 청사가 있던 현재의 충무로 1가 진고개 입구에 지상 4층, 지하 1층, 종업원 360명으로 명실 공히 현대식 백화점다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오늘날의 신세계 백화점 본점 건물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240)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앞의 책, 2003, p.542.

미쓰코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영업이나 관리 형태에서 체계화된 근대적인 백화점이었다. 특히 조직적인 면에서는 체계화가 더욱 뚜렷하였다. 백화점의 총책임자로 지점장이 있었고 그 밑에 차장이 있었으며, 차장 밑에는 인사, 서무, 경리, 선전, 식품, 오복, 잡화, 의류, 조선 물산부 등 아홉 개 부서가 있었다. 그리고 서무와 경리부에는 별도로 영선계와 계산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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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코시 백화점
미쓰코시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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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인 기획 업무는 일본 본점 기획실에서 맡았으며, 또한 전체 매장의 운영은 직영 체제로 하고 관리가 곤란한 것, 귀금속이나 부패하기 쉬운 식품류는 임대 형식으로 운영하였다. 임대는 일정한 기준은 없었으나 수수료로 매출의 10% 정도를 적용하였다.

매장의 구성은 지하에 유리 그릇, 주방용품, 식료품 매장, 일반 잡화 코너와 손님용 간이식당이 있었고, 1층에는 약국, 여행 안내소, 단체 주문 상담실, 화장품 코너, 게다·조리 등 일본 신발 코너, 고급 식료품 매장 등이 있었다. 2층에는 주로 일본 옷인 오복을 팔았으며 맞춤복, 기성복이 골고루 있었다. 이곳의 주요 손님은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조선의 주단, 포목은 취급하지 않았다. 3층에는 신사 양복, 숙녀 양장 코너가 있었으며 매장 내에 재단사와 옷 만드는 공장이 있어 맞춤복의 봉제도 하였다. 그 밖에 신사용 모자, 구두 등 양품 코너도 있었다. 4층에는 귀금속, 가구 매장, 대형 홀, 커 피숍과 식당을 겸한 대형 식당도 있었다. 미쓰코시의 이러한 매장 구성은 1930년부터 1945년까지 15년간 거의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미쓰코시는 원칙적으로 정찰제 판매를 하였으나 특별한 경우에는 값을 깎아준 적도 있었다. 지금의 바겐세일이라고 할 수 있는 대매출 행사는 1년에 두 차례, 2월 말과 9월 말 정기적으로 실시하였는데, 이 기간에는 물건을 원가 수준으로 판매하였다.

미쓰코시 경성 지점의 운영 방식 중 또 하나의 특징은 고객 서비스였다. 판매원들은 손님이 드나들 때마다 일본인에게는 일본어로, 조선인에게는 조선어로 인사하였다.

미쓰코시 백화점의 개관은 한국 백화점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큰 상가이자 가장 다양한 상품을 파는 곳이었다. 미쓰코시는 비록 일본 자본으로 설립하였지만 한국 최초의 백화점이라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241) 신세계백화점, 앞의 책, pp.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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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야 백화점
조지야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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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9월에는 양복점을 경영하던 고바야시(小林)가 주식회사 조지야(丁子屋) 상점을 개점하였는데, 1934년 3월에 50만 원이었던 자본금이 1939 년에는 250만 원으로 증자되었고, 같은 해 9월에는 남대문로 2가에 현대식 대형 점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이후 조지야는 2002년까지 존속한 미도파 백화점으로 이어졌다.

1922년에는 포목점을 운영하던 나카에(中江)가 미쓰코시 백화점과 마주 보이는 진고개 입구에 미나카이 백화점(三中井百貨店)을 설립하였다. 미나카이 백화점도 오복점으로 출발하였으나 점차 잡화상으로 발전하였고, 1932년에는 서울의 본점 개축 공사를 단행하여 7층의 현대식 건물로 백화점을 세웠다. 이 미나카이 백화점은 한국 내에 13개, 일본에 3개와 중국의 창춘(長春), 선양(瀋陽) 등 주요 도시에 지점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1926년에는 충무로 1가에 히라다 백화점(平田百貨店)이 설립되었다. 이 백화점은 자본금이나 매장 면적이 미쓰코시나 미나카이 등과는 비교가 안 되는 작은 규모였지만, 젊은 여성들의 의상, 화장품, 가구 등의 매매가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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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거리
충무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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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코시, 조지야, 미나카이, 히라다 등 일본인이 경영하는 백화점은 모두 충무로 진고개 일대에 설립되었고, 자연히 이 지역은 일본인 상점이 즐비한 거리가 되었다.

이후 일본인 거리는 명동, 남대문, 을지로 일대까지 점차 확대되어 거대한 일본인 거리가 형성되었다. 반면 종로에는 김윤, 동아, 화신 등 한국인이 경영하는 백화점이 설립되어 충무로를 중심으로 한 일본인의 남촌 상가와 종로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북촌 상가가 대립하는 구도를 이루었다. 그러나 말이 대립이지 초기에는 번화함이나 화려함, 활기 등은 상대가 되지 못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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