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7권 천민 예인의 삶과 예술의 궤적
  • 제1장 기생의 삶과 생활
  • 3. 예술적 재능의 발현
  • 공연 종목
우인수

기생들의 춤과 노래가 쓰인 조선 전기의 정재를 보면 기생이 참여한 공연 종목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어 조선 전기에도 공연된 정재로는 헌선도(獻仙桃)·수연장(壽延長)·오양선(五羊仙)·포구락(抛毬樂)·연화대(蓮花臺)·아박(牙拍)·무고(舞鼓) 등이 있다. 크게 보면 당악(唐樂)을 반주 음악으로 쓰는 당악 정재와 우리나라의 향악(鄕樂)을 반주 음악으로 쓰는 향악 정재로 나누어지는데, 헌선도·수연장·오양선·포구락·연화대는 당악 정재이고, 아박과 무고는 향악 정재이다.

당악 정재는 죽간자(竹竿子) 두 사람이 춤추는 사람을 인도하여 입장하고 퇴장한다. 반면에 향악 정재는 이러한 인도가 없이 음악이 울리면 곧 춤이 시작되고 춤이 끝나면 꿇어앉아 큰절을 하고 일어나서 퇴장하는 자연스러운 형식을 취하였다. 또한, 당악 정재는 원칙적으로 앞뒤에 치어(致語)와 구호가 있는데, 향악 정재는 치어와 구호가 없었다. 그리고 당악 정재는 춤을 추다가 순한문으로 된 창사(唱詞)를 부르나, 향악 정재는 춤을 추다가 정읍사(井邑詞)나 동동 등의 그 춤과 관련이 있는 노래를 불렀다.39)장사훈, 『한국 전통 무용 연구』, 일지사, 1977, 124쪽. 이하 기생들의 공연 종목과 관련된 내용으로 따로 주가 없는 것은 이 책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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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진찬도병 제1폭 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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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정재 가운데 헌선도는 고려 문종 때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당악 정재의 하나이다. 정월 대보름날 군왕의 장수를 축원하려고 서왕모(西王母)가 선계(仙界)에서 내려와 선도(仙桃)를 준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고는 고려 때부터 전하는 향악 정재의 하나이다. 『고려사』 「악지(樂志)」에 따르면, 충렬왕 때 시중 이혼(李混)이 영해에 유배되었을 때 바닷가에서 물에 뜬 뗏목을 얻어 큰 북을 만들었더니 그 소리가 크고 웅장하여 북을 두드리며 춤춘 데서 기원하였다고 한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많은 공연 종목을 만들거나 복원하였다. 조선 전기에 새로 만든 공연 종목으로는 당악 정재로 몽금척(夢金尺)·수보록(受寶籙)·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하황은(荷皇恩)·하성명(賀聖明)·성택(聖澤)이 있고, 향악 정재로 보태평(保太平)·정대업(定大業)·봉래의(鳳來儀)·향발(響鈸)·학무(鶴舞)·처용무(處容舞)·문덕곡(文德曲)이 있다. 그런 데 조선 전기에 만든 것은 향악 정재라고 하더라도 한문 가사를 노래하거나 당악기를 혼합 편성하는 등 당악 정재와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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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진찬도병 제2폭 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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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당악 정재인 몽금척은 정도전(鄭道傳)이 태조의 공덕을 칭송하고자 만든 악장(樂章)을 춤으로 꾸민 것이다. 악장은 태조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꿈에 신령으로부터 금척(金尺)을 받은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향악 정재인 처용무는 신라 헌강왕 때의 처용 설화에서 비롯된 가면무이다. 원래 한 사람이 추던 것을 조선 초기에 다섯 사람이 추는 오방(五方) 처용무로 재구성하였다.

조선 후기 연향에서는 고려 이래 전승된 헌선도·수연장·오양선·포구락·연화대·무고·아박은 모두 여전히 공연되었으나, 조선 전기에 만들거나 재구성한 정재는 몽금척·하황은·향발·학무·처용무 같은 일부 만 공연되었고, 나머지는 공연되지 않았다.40)김종수, 앞의 책, 243∼244쪽.

그 대신 18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첨수무(尖袖舞)·검기무(劍器舞)·선유락(船遊樂)을 공연하였고,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춘앵전(春鶯囀)·보상무(寶相舞)·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향령무(響鈴舞)·무산향(無山香)·최화무(催花舞)·만수무(萬壽舞)·경풍도(慶豊圖)·첩승무(疊勝舞)·헌천화(獻天花)·침향춘(沈香春)·고구려무(高句麗舞)·박접무(撲蝶舞)·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제수창(帝壽昌)·사선무(四仙舞)·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등을 새롭게 만들어 공연하였다.41)김종수, 앞의 책, 244쪽. 이에 따라 기생의 공연 종목은 더욱 다양하고 다채로워졌다고 하겠다.

새롭게 만든 정재 가운데 첨수무는 조선 중기부터 전하는 향악 정재로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손바닥만 번복하며 추는 춤이다.

춘앵전은 순조의 아들 효명 세자가 화창한 봄날 아침에 버드나무 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에 감동하여 이를 무용화한 것이다. 길이 여섯 자로 된 화문석(花文席) 위에서 한없이 느리게 추는 우아한 독무(獨舞)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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