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7권 천민 예인의 삶과 예술의 궤적
  • 제1장 기생의 삶과 생활
  • 3. 예술적 재능의 발현
  • 환궁 맞이 경축 공연
우인수

장악원 소속 기생들은 국왕이나 중전이 제사를 지내거나 온천욕을 위해 궁궐을 나갔다가 환궁할 때에 그들을 경축하여 맞이하는 자리에 동원되어 노래를 바치는 것이 상례였다. 이때는 대개 기생 100명이 동원되어45)『악학궤범(樂學軌範)』 권5, 교방가요(敎坊歌謠), 초입배열도(初入排列圖) 참고. 가요와 가사를 지어 바치며 송축하였다. 예컨대 충청도 온수현(溫水縣)의 온천에 머물다가 환궁하는 세종에게 기생들이 바친 가요와 가사는 각각 다음과 같았다.46)『세종실록』 권60, 세종 15년 4월 병오.

엎드려 난여(鑾輿)가 서울에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가사를 올리고 아울러 단인(短引)을 지어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임금이 되고 스승이 됨에는 신과 백성의 소망에 맞아야 하고, 백성을 편하게 하고 도와주어야 해가 뜨는 것과 같이 기뻐하여, 사녀(士女)들이 환영하고 산천도 감동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부모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였으니, 대가(大駕)가 한번 순행(巡幸)하자 집집마다 서로 경하하였는데, 하물며 화창한 시절에 온천에 목욕하고 모든 재액을 없애는 상서(祥瑞)를 맞았을 때이리오. 첩 등은 법부(法部)의 천한 공인(工人)으로 요지(瑤池)의 작은 재주나마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춤추고 노래 부릅니다.

햇볕이 밝으니 산천이 아름답고, 바람이 따뜻하니 만물이 새롭도다. 이처럼 좋은 때에 난여가 순행하니, 태평한 봄 시절을 다 함께 즐기도다. 임금의 수레가 가까이 돌아오자 도성 안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자주 축원하는 노래를 불렀네. 하늘이 우리 왕실을 보호하사 만세토록 우리 백성을 다스리게 하소서.

그리고 뒤이어 환궁하는 중전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가요와 가사로 송축을 드렸다.

중궁 전하께서 서울에 돌아오시니 경축하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가사를 드리고 아울러 단인을 지어 올립니다. 엎드려 아뢰옵건대, 옥연(玉輦)을 따라 온천에 목욕하시와 혈기가 화평하게 좋아지시니, 요함(瑤緘)을 받들고 선동(仙洞)에 나가 삼가 송축하는 글을 올리나이다. 변변치 못한 노래를 더럽다 마시고 받아들이옵소서.

아름다운 온천물도 맑은데, 화창하게 갠 날은 밝기도 하다. 빛나는 난로(鑾輅) 무사히 돌아오니, 초목도 또한 즐거워하네. 도성문 밖에는 비단이 휘날리고, 난연의 길 앞에는 젓대와 노랫소리, 이원(梨院)의 젊은이들 새 곡조 연주하며, 하늘같이 수하기를 축원하옵네.

국왕이나 중전이 환궁할 때에 가요와 가사를 바치며 송축하던 관례는 조선 전기에는 대체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장악원 기생 제도가 폐지되면서 이 관례 역시 유지될 수 없었다. 광해군대에 일시적으로 복구되었다가 인조대에 폐지된 뒤로는 다시 복구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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